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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선 Oct 31. 2020

이제야 사랑하는 딸이 애도하며, 아빠를 보냅니다.

.회복.

자유


작업은 계속되고 꽤 많이도 들어내 바닥이 보인다.

우울을 그저 내 속에 데리고 있어야 하나보다 체념하며 달래던 날들이 생각난다. 

들어내기 전 가득 차 있던 우물 아래를 내려가며, 보고 싶지 않았지만 내 것이니 봐줘야 하는구나, 차례로 마주하며 바닥에 닿던 날들이.

날은 지나갔고 이번에는 정말 시간이 약이 돼주려나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열심히, 부지런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어둠에 익숙해 있는 마음이, 또 그것에 잡혀 버리지 않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작업은 계속된다.


바닥이. 


드러난다.




드러난 그곳에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 죄.책.감.이 있다.


오락실의 끝판왕처럼 여유롭게 웃으며 날 기다린다. 여기까지는 용케 왔으나 자신을 이기지는 못할 거라 말하는, 악하고 교활한 악당이 저기 있다.

얼마나 오래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다른 고인 것들 거둬지는 날들에도, 저것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자기만은 들어내지 못할 거라고 자만하며.


네 아빠가 죽기 전날의 그 밤을,

다음날 죽어있는 네 아빠를 보았던, 만졌던 그날이 떠오르기만 해도 두려워 도망치던 너다.

10년 동안 독하게 잊었다, 생각하며 살았겠지만 난 여기 이 자리에 계속 머물고 있었는데.

몰랐다고는 하지 마라. 네가 날 더 꼭꼭 숨겨두겠다 하고는, 내 위에 돌을 올려놓았으니.

우물에 내려올 때마다 다른 것들은 다 봐주며, 달랜다 하면서, 날 차마 보지는 못하더라.

네가 작업이라 부르며 드러내고 거둬낸 많은 것들은, 금방 다시 채워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참 약해 빠져 이겨낸 줄, 괜찮아진 줄 알고는 좋아 웃다가도

조그만 일에 넘어져서는, 아예 어푸러져 더 진한 우울과 어둠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게 인간이니, 너무 애를 쓰지는 말아라.


우물로 내려가는 날에도 널 볼 순 없었지. 모른 척 10년 가까운 시간을.

네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고 나오지 못하게 막아버렸는데 , 오히려 내가 올려놓은 돌에 넌 더 단단해졌구나.

집요하고 끈질기게 아빠의 죽음에 날 연관시키며.

내가 살겠다고 노력한 모든 작업들을 우습게 보지 마라. 그 시간 동안 난, 시간과 빛을 내 편에 서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날 용감하게 만들었는지 보아라.


연약해 넘어져도, 털고 일어나면 된다. 다시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크게 넘어져, 상처가 많이 아프면, 시간을 들여 잠시 쉬다 일어나면 된다.


죄책감 위에 얹혀진 무거운 돌을 잡아 바닥에 내려놓는다.

넌 더 이상 나에게 힘.이. 없.다.




돌을 잡은 내 마음은 두려움이 아닌 확신이었다,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내 안에 죄책감은 이미 사라진 후였으니.

죄책감은 내가 나에게 쥐어주고 가둬둔 죄였다. 내 탓이 아니었고,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알게 됐으니 자유를 주어야 한다. 

나에게 자유를 준다.


아빠의 죽음이야 자식이니 슬퍼하며 기억할 수는 있다. 그것까지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아빠 생각이 나 눈물을 흘릴 날들도 있겠고, 안타까운 마음에 화도 낼 수도, 좋은 날들을 보면 보고 싶은 마음도 들겠지. 그 마음만 남았다. 그 마음만 가지고, 살려한다. 

대신, 많이 사랑했고 내 이름을 부를 적마다 달려갔으며, 진심으로 그가 행복하길 바랬다. 



10년이 지나, 이제야 사랑하는 딸이 애도하며 아빠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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