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선 Sep 08. 2020

그 사람 보통 아니야.
내가 보통 아니라고 했잖아.

그 사람 보통 아니야. 내가 보통 아니라고 했잖아.




오늘 민서 아빠가 하는 말 들었어? 뭐 나보고 보통 아닌 사람이라고? 자기가 날 뭘 안다고 그래?

자기는 기분 안 나빴어? 


그랬었나?


그런데 민우 엄마는. 거기서 뭘 또 물어봐 물어보기는. 샘은 많아가지고. 남 보통 아니라는 거 까지도 샘을 내. 자기는 어떤 거 같냐고 물어보는거야. 민서 아빠가 민우 어머님은 보통이시죠 했더니 그 엄마는 별로 기분 안 좋은 거 같더라


민우 엄마가 그랬어? 안 그런 거 같던데.


자기가 뭘 알아. 암튼 그랬어.

당신도 보통이 아니야. 15년을 살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어 정말.

근데 자기는 사람 잘 못 봐. 그냥 보이는 게 다인 줄 알지. 나만 예민한 줄 안다니까. 자기가 못 보는 거면서.







아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다.


보통 이상으로 강하거나 영악하고 보통 이상으로 순진하며

보통 이상으로 자신을 숨기거나, 보통 이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

보통 이상으로 가난하거나 잘 사는 사람들.

보통 이상으로 잘 견디는 사람들, 보통 이상으로 아무것도 참지 못하는 사람들.

이 세상에는 보통이 아닌 일들과 보통이 아닌 사람들로 넘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보통이 아닌 사람이다. 사람을 잘 못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자면 난 보통이 아닌게 아니라 보통 이하라고 말해야하는게 맞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지금 아내는 다른 남자에게 보통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서 좋아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사실. 나는 아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은 것 까지도 알고 있는 보통이 아닌 남자다.

아내가 알고 있는 이유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아내는 지금처럼,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는 사람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도, 알고 있는 보통이 아닌 남편.


아내는 오늘 들은, 보통이 아니라는 말에 자기 자신이 결코 다른 이에게 만만히 보이지 않을 적당한 지성과 교양, 미모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니 저렇게 나에게 듣기만 해도 불편해 지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 저녁은 그녀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보통이 아닌 여자로 보이길 원하는 사실은 지극히 보통의 아내에게 말이다.


아내는 저녁 시간의 이야기들을 다시 되돌려와 이야기해준다.

말을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있어 듣다 보면 꽤나 재미가 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지하게 이야기하다 가도 적절히 농담을 섞어가면서, 

간혹 심한 수위의 야한 농담을 할 때도 있는데 결코 지저분해지지 않게 이야기하는 재주도 재주라면 재주 일 것이다.

그런데 말을 잘하다 보면 이쯤에 자신의 생각을 넣어 더 재미있게 해야지 이런 욕심을 부리게 된다. 

나도 분명 같이 있던 자리여서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도 아내는 그 상황을 좀 더 재미있게 그렇지만 자기에게 더 집중이 된 상황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이야기들을 바꾼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남편 앞에서, 마음껏 자신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며 말이다.

사실과, 그리고 아내에 의해 만들어진 부분의 틈을 정확히 알고 있는 나는 또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9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샀다는 아주 작은 통에 있는 크림을 꺼내어 정성스럽게 바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에 야금야금 살이 더 더해진다.

저 크림. 실은 아내가 말한  9만 원에 10을 더 더해야 하는 가격이지만 그냥 모른 척하기로 한다.

그런 걸 알은척하면 아내는 크게 화를 낼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산다고, 내가 오빠한테 이런 것까지 거짓말하며 사야 하냐고.

갑자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던 그녀는 어느 아침 드라마 세트장에서 연기될 법한 말들을 하면서 어쩌면 눈물을 보일 수도 있겠다. 

아. 그런 일들이 지금껏 얼마나 많았는지. 갑자기 머리카락이 곤두서도록 화가 나지만 참기로 한다.




19만 원 치고는 너무 작은 크기의 크림이 또 거슬리려 한다.

크림을 보지 않고 아내를 보려 노력한다.

우리의 가정은 이러한 나의 가상한 노력 위에 만들어 지는 것이다.

보통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보통의 아내.

아내가 집중하며 크림을 바르는 모습을 보니 화가 가라앉는다.


아내는 진심이다.

누구에게 항상 보여주는 삶을 사는 아내가 안쓰러울 지경인데,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내 앞에서도 가끔 자신을 꾸미는 아내이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아내는 온 힘을 다해 집중하며, 적은 용량의 저것을 넓게도 잘 펴 바르고 있다.

아내는 크림 앞에서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작정이다.

이 비싼 크림 앞에서 아내는 자신을 감추지 않고 온전히 드러내 보인다.

진심으로 또 간절히 아내는 이것이 자신에게 고운 피부와 눈에 띄게 안 보일 주름을 가져다줄 것을 신뢰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해 있는 아내를 보는 것이 즐겁다.

크림과 아내 사이에는 어떤 거짓의 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좀 전 작은 크기에 터무니 없이 비싸다며 언짢게 본 마음이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충.분.한. 값어치를 한 것이다.  크림. 넌.

9만원에 10만원을 더한 가격 이상의 값어치를.





Philipp Berndt - https://unsplash.com/photos/5i0GnoTTjSE


이전 06화 내 앞에서. 누가. 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