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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선 Sep 04. 2020

나를 슬프게 하는 말.
그럴 수도 있지.

나를 슬프게 하는 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 있지 않나?



속상한 일이 있었어.

잘 만났다 너. 

내 얘기 한 번 들어봐.


한참을 이야기한다.

이래서 화가 났다고

이래서 그 사람이 이해가 안 된다고.

그 사람의 가벼움이 정말 경멸스럽다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의 가벼움이 전염된 것 같아 그것에 또 환멸을 느끼며.


며칠 전 일이었지만 말을 하자 작정한 나는 구체적인 상황부터 시작하여

도저히 이해 못 할 말과 행동을 한 그 특정인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비난을 더하기 위하여 살이 붙여진 것도 사실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는 여기 없는데.

큰 숨을 내쉬며 이야기는 끝이 나고, 동의를 구하기 위한 질문으로 이제 끝을 내려한다.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이런 식의  질문들.

상대방에게 들을 대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들. 이 정도로 퍼부은 나에게 당연히 해줘야 할 대답.


동의를 구하며 목을 빼고 듣는 이를 바라본다.

자 이제 너의 차례이다.

맘껏 맞장구를 치며 위로를 할 너의 차례.


제법 진지하게 나의 말을 듣던 네가 말한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 있지 않나? 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

.

.


뜻밖의 대답이다.

근데 너는 진심이구나.

왜 너는 이 상황에서 진심인 거야? 누가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분석해가며 심각하게 생각하라고 했냔 말이다.

그러니 나도, 이 상황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

아 그래, 그런가, 그럴 수 있나, 뭐 이딴 말들이나 하며 허공을 볼 뿐이다. 


쪽팔리다. 지금껏 당연히 너의 동의를 생각하며, 그것만을 바라고 말한 내가 참 쪽팔리다.


목을 빼고 기다리던 나는 서둘러 앞을 본다.


너는 스스로를 좋은 친구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여 경청하며

이 이야기의 타당성에 대하여 전후 사정을 생각하고 결론을 낸 것이다.


"글쎄, 이 정도로 화를 낼 일인가 싶어. 상대방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아무리 목을 빼고 나의 동의를 구해봤자 진정으로 너를 위하는 나는, 미안하지만, 무턱대고 동의를 할 수는  없네"

이런. 이따위 이상적이고도 분별력 있는 짓을 하는 건가.

융통성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이런, 지밖에 모르는 인간 같으니라고.

그런 게 나를 위한, 다른 이들을 위한 생각 같지? 아니다, 넌 너만 알기 때문에 너의 생각대로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넌 무조건 감정적이 되어 나의 편이 되었어야 했다.

내가 지금 꾹꾹 참고 있는 욕지거리를 대신 해주면서.

그러면 난, 

야 야 됐어. 뭐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아이 그만하라고. 됐다고. 아 왜 왜 쌍욕을 하고 그래.

이러면서, 이렇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차라리 

"넌 뭐 그런 걸로 상처를 받냐.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별 말 아닌 거 같은데 잊어버려. 말할 거리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열을 내. 할 일 없냐?'

그러면 난 

별게 아니야? 이게 별게 아니야? 내가 미친놈야? 괜히 그러게?  너 일 아니니까 별거 아닌 거 같지. 

이렇게 유치하게라도 지랄을 좀 하다 보면 또 풀릴 일인것을.


그런데 그럴 수도 있지 않냐니. 

웃으며 넘길 수도, 지랄하며 넘길 수도 없게 만들어 버렸다. 새끼.

날 빤히 쳐다보며 아직도 뭐라 뭐라 지껄이는 네 옆에서

나는 그저 계속 앞을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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