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걸레질을 시작한다.
오래된 수건을 잘라 만든 걸레를
손안에 꼭 맞게 움켜쥐고
청소기가 닿지 않는 구석구석을 닦는다.
난 책인지 잡지인지를 누워 읽으며
가끔 엄마에게
엄마. 이 노래 좋지? 엄마 좋아하는 노래 틀어줄까?
간간히 이런 대화들을 나누는 한가로이 들뜬 날이다.
그러다 엄마를 봤는데
엄마는 걸레질을 하다 한 참을 한 곳만 동그라미 그리듯 닦으며 보고 있다.
엄마는 분명 여기에 나와 같이 있는데
엄마는 또 여기 현실을 너. 머. 저.기.에 가 있다.
난 그때 그걸 알.아.차.린.거다.
엄마와 나는 지금, 이 집에 같이 있지만
동시에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난 꼭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겁이 났다. 엄마는 지금 여기 나와 같이 있는데도
처음 온 낯선 곳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엄마를 부르는 것뿐이다.
엄마를 불러야지.
엄마.
엄마.
어. 왜? 딸.
나 배고파.
그래. 배고프겠다. 얼른 밥 차려줄게.
엄마는 금세 돌아왔다.
좀 전 느껴졌던 그 낯.섬.이 무안할 정도로 빨리.
엄마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엄마의 움직임은 나에게 안정을 준다.
움직이지 않는 엄마가 나에게 불안하듯이.
엄마와 나는 다시 여기. 이 곳에 함께 한다.
나도 가끔 걸레질을 한다.
엄마가 그랬듯이 오래된 수건을 반으로 접어 잘라 한 손에 움켜쥐고.
그리고 나도 엄마처럼
현.실. 을 너머 가끔, 어딘가에 다녀온다.
그곳에서 나는 며칠 전 마음이 상했던 그날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릴 적 친구들이 생각나 보고픈 마음에 전화를 할까 생각도 하며.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기도 한다.
어린날의 나처럼 우리 아이들은 날 부르지 않는다.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않고도
나는 금세 현실로 돌아온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그때 알았다면 난 엄마를 부르지 않았을 텐데.
잠시 그곳에 있다, 분명 우리 엄마도 나에게 돌아왔을 텐데.
예민한 딸은 그걸 알아차리고
엄마의 잠깐, 온전한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걸레질을 하며 그곳에 갈까.
이제 60이 넘은 우리 엄마는 그곳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