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두 번째 이야기
냉정하게 말하면 능력의 관점에서 봤을 때엔 회사 안에서 완전히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대신하게 될 거고 언젠가는 나 역시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채웁니다. 그럼에도 대체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예전에는 전문성이 곧 커리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이 사람보다 더 빨리 성장합니다 잘 아시겠지만요. 몇 년 쌓아온 노하우를 AI가 몇 분 만에 복제해 나가기도 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기도 하고 나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요즘의 스페셜리스트에게 필요한 건 전문성에 더해 변화에 적응하는 힘입니다. 한 분야의 깊이는 당연히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깊이를 다른 맥락으로도 적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이것밖에 못해요'가 아니라, '이걸 다른 방식으로 풀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죠.
한편, 제너럴리스트라도 역시 모두 대체 불가능 한건 아닙니다. 넓게만 알고 깊이가 없다면 그 또한 특별함은 없어집니다. 진짜 강한 제너럴리스트는 사고합니다. 단순히 일을 조율하는 게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정의하고 지금 혹은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죠. 조직의 판단 구조를 알고요.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이기에 커뮤니케이션도 잘할 수 있다면 좋습니다.
결국 다 해야 해요?
업무적으로는 잘하는 사람, 똑똑한 사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후배들은 계속해서 많아집니다.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요. 여기서 필요한 대체불가능한 사람은 일을 완성시키는 스페셜리스트와 활동성 있게 움직이며 완결하는 제너럴리스트의 밸런스를 아는 사람입니다.
맞아요 어렵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것을 아는 낄낄빠빠의 자세가 밸런스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으로 중심을 잡고 방향성을 알 수 있는 사람이요.
그리고 회사는 사람이 모여있는 공간이지요. 함께 하는 업무에서 개인에게 필요한 능력은 상한선이 있습니다. 모두 많은 노력을 해서 모여있으니 개인 간의 능률과 능력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정 대체하기 어려운 사람은 함께 일 할 때 기분 좋은 사람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그 사람과 함께 일하면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느냐는 거죠. 이 질문은 반드시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의) 사무적인 목적으로 만났지만 불편하지 않고 에너지가 공유되는 인재요.
그런 분 있으신가요? 내가 혹시라도 팀을 새롭게 꾸리게 되면 이 친구만큼은 정말 필요할 것 같다. 하는 사람이요 혹은 이런 제의를 받아보는 것도 감사한 일이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공감이 되실 테지만,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팀의 분위기를 살리고 나의 에너지를 높여주는 사람이 더 필요한 상황이 생깁니다. 일은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개인의 실력보다 함께가 모인 감정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능력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함께 일한 기억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다 지나고 나면, 힘들었던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치환이 되고 미화됩니다. 결국 프로젝트의 결과물 보다 사람이 남고, 함께 했던 시간은 추억이 되었어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공기와 분위기를 가볍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긴장된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죠. 어차피 모두 월급 받고 일하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라는 큰 맥락을 이해하고 함께 잘 만들어가면 된다는 여유로움을 장착한 분들이죠.
두 번째는 실수를 추궁하기보다 같이 풀 방법을 먼저 제안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고 나서 필요하다면 개인에 대한 개선점을 설명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입니다. 사소한 부분이더라도 거짓되지 않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어렵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네 번째는 자신의 전문성을 알면서도 협력의 가치를 믿고 함께 만들어가는 완성에 대한 방향성을 아는 사람입니다. 다섯 번째는 앞서 언급한 균형 잡기를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갖지 않고 누구나에게 동일하게 대하는 분들입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평판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커리어의 지속 가능성은 관계에서 결정된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커리어의 끝에는 '그 사람 덕분에 일할 맛이 났어'라고 마무리되기 때문이죠. 힘든 시기나 힘든 업무에도 좋은 동료가 있다는 것이 내 커리어의 가장 중요한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이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 가장 영향력 있는 과정이자 결과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전에 팀장님이 인턴 지원서를 공유하며 의견을 물어봐 주신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은 아주 고 스펙에 데이터와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던 친구들이 생각할 때에 똑똑한 과대오빠 느낌의 분이었고, 한 분은 업계에 대한 애정과 무엇이든 배워 열심히 하겠다는 애티튜드를 가진 분이었지요. 저희는 고민 없이 후자인 분을 선택했습니다. 회의실에서 말하기, 기획안 잘 쓰기 등 여러 갈래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있을 때 좋은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고 나의 기대치에 맞지 않더라도 분노의 감정을 연료로 쓰기보다는 피하고 연민의 마음을 가져봅니다. 저분도 호락호락하게 일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공감하고 나의 중요한 주변 동료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억지로 내 일이 아닌데 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지만 따뜻한 사람 혹은 따뜻하지만 단단한 사람. 그런 사람이 대체 불가능한 인재의 조건입니다.
원칙은 큰 일에만 적용할 것 작은 일에는 연민이면 충분하다. 알베르 카뮈
정리하다 보니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 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