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지병을 치료하는 일과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몸을 다스릴 수 있었다. 에탐부톨이나 리팜핀과 같이 새로 개발된 항결핵제도 보건진료소에서 무료로 탈 수 있어 경제적인 부담도 없었다. 진료와 약 처방을 위해 한두 달 간격으로 천리 길 보건진료소를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아들의 병마와 대학입시 문제로 침울했던 집안에 겨우 햇빛이 비치기 시작할 무렵, 행복의 신은 우리 집을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다. 뒤이어 불행의 신이 서서히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들의 마음을 전혀 알 길이 없는 나약한 인간들은 다가오는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난 지 두 달 정도 지난 4월 24일, 그날은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봄은 물고기들의 번식 시기이기도 하다. 산란을 위해 불어난 도랑을 거슬러 올라오는 어족들을 사냥하기 위해 아버지는 오전부터 족대를 꺼내 손질을 하셨다.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비가 그치지 않아, 나는 천렵을 포기하고 우리 집에서 다소 떨어진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오늘같이 비 오거나 추운 겨울날이면 고향 친구들이 모여 노는 일종의 아지트였다.
오후 3시쯤 되었을까,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다급한 이장의 목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OOO군, 빨리 집으로 가보기 바랍니다”
내 이름이 호명되는 것을 들은 나는 깜짝 놀라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아래채 사랑방에는 아버지가 힘없이 누워 계셨고, 어머니는 그 옆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아버지”하고 부르자, 힘겹게 눈을 뜨시더니 도로 눈을 감으셨다. 택시를 불러 빨리 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자전거를 집어타고 전속력으로 읍내로 향했다.
30여분 후에 시내 병원에 도착하여 아버지는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의사는 간단히 진찰을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고 매달렸지만, 그는 역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타고 온 택시에 아버지를 싣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내 얼굴은 빗물과 땀과 눈물로 얼룩졌다. 힘든 노동과 부족한 영양으로 쇠약해진 아버지는 손도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가족관계라는 끈은 질기고 강하다. 그 끈이 철사나 고무줄 같은 유형(有形)의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면 애저녁에 삭아서 끊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피로 이루어진 가족관계의 끈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사랑과 믿음이라는 끈끈한 접착제가 첨가된 끈은 더욱더 끊기가 힘든 것이다.
죽음은 영원한 이별을 의미한다. 시골집 주변이나 평소 왕래하는 도로변에는 영원한 이별의 산물인 무덤이 무수히 흩어져 있다. 각각의 무덤들이 혈육이나 지인들의 슬픔과 눈물로 이루어진 조형물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주역(周易)에 의하면 하늘(乾)은 아버지요, 땅(坤)은 어머니다. 무덤 속 주인공들이 하늘의 이불을 덮고 땅의 품에 안겨 따뜻하고 편안하게 잠들기를 기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낀다고 해서 천붕치통(天崩之痛)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가족을 보호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져 오신 아버지의 부재(不在)는 하늘같이 든든한 보호막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어머니와 상의하여 가정을 꾸려 나가야 했다. 내 위로는 형님, 누나가 있었지만 결혼하여 분가했고, 모두들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 우리 가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