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2학년이 되자, 조교의 업무 강도가 점점 높아져 갔다. 우선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하는 ‘경영학 핸드북’의 회계학 분야 편집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당해야 했다. 회계학 전공서적을 출판하려는 교수님들의 원고정리도 만만치 않았다. 개인적인 업무로는 석사과정 졸업을 위한 학위논문을 시작해야 했고, 틈틈이 회계사 시험 준비도 해야만 했다. 게다가 졸업 후 진로가 불투명하여 토플(TOEFL)과 경영대학원 입학시험(GMAT) 등 유학 준비도 이미 시작한 상태였다.
대학 입학 때부터 학교 보건진료소에서 시작한 결핵치료는 이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다만 결핵균에 대한 내성 가능성으로 주사제는 스트렙토마이신에서 카나마이신으로 바뀌었다. 오랜 근육주사로 근육이 굳어지는 통에, 주사약이 흡수되지 않고 체외로 흘러나오는 부작용도 감수해야 했다.
또다시 학업과 치료, 게다가 조교 업무까지 병행해야 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강한 정신력이 필요했다.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나오는 ‘陽氣發處, 金石亦透, 精神一到 何事不成’(양기가 발한 곳은 쇠와 돌도 뚫으니,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어떤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 문구를 책상 위에 붙여 놓고 하루하루를 체크해 나갔다.
그 해 8월, 회계사 2차 시험이 시작되었다. 회계학 조교 업무 자체가 폭넓은 전공지식을 습득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회계학 과목은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시험을 앞두고 경영학과 교수님 두 분이 행방불명(?)이 된 것도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교수님들의 동태를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는 조교들이기에 이분들이 출제위원으로 들어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한 일이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두 교수님의 전공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하였다. 학습 범위가 넓은 경영학 과목의 경우, 회계학과 가장 가까운 재무관리에서 배점이 제일 높은 문제가 출제된 것도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이전까지의 시험은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통과해야만 했던 관문이었지만, 이번에는 큰 부담 없이 끝난 시험이었다.
대학원의 마지막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계사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합격이었지만, 이 분야는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합격의 기쁨은 반감되었다. 곧바로 출제위원이었던 회계학 교수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교수님 덕분에 이번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합격자 명단을 들고 있던 교수님은 놀란 듯,
“응? 자네 이번에 시험을 봤어?”
조교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것으로 비칠까 봐 아무도 모르게 시험에 응시했던 터라, 그분은 나의 합격사실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구마꽃의 꽃말 : 행운
공인회계사 자격시험에 대한 나의 도전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그 후로 이 자격증을 실무적으로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이 도전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또 하나의 목표 달성을 위한 훌륭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목표달성의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시되는 것이 우리가 처한 사회현상이다. 우리는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는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에게 환호하고 박수를 보낸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들이 정상에 서기까지의 과정은 대부분 무시되거나 잊힌다. 하지만, 목표달성 과정에서의 경험과 인간적 성장 역시 중요하다. ‘얻은 것은 이미 끝난 것이다. 기쁨의 본질은 그 과정에 있으므로(Things won are done; joy's soul lies in the doing)’라고 한 셰익스피어(W. Shakespeare)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회계사 시험이라는 장애물이 제거되고 나니 정신적, 시간적으로 한결 여유가 생겼다. 대학원 2학년 초부터 틈틈이 준비해 온 석사논문 작업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다음 해 2월, 나는 석사학위복을 입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입학, 졸업식장에는 응급환자 발생을 대비해서 보건진료소 구급차가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졸업식이 끝나자 구급차가 군중 사이를 뚫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차가 무사히 통과하도록 양팔을 들어 사람들의 진입을 막았다. 그 순간 구급차의 문이 열리더니 백의(白衣)의 간호사가 환한 얼굴로 나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나는 석사모를 벗고 머리 숙여 답례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들은 휴학기간을 포함한 7년 동안 나의 건강을 책임져 준 천사들이었다. 오늘날까지 나를 있게 해 준 보건진료소 의료진들에게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대학원 과정까지 끝나자, 남은 일은 조교업무와 유학준비뿐이었다. 2년의 조교 임기 중 아직까지 6개월이 남아 있어, 그때까지 특별한 길이 없으면 미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6월 어느 날, 석사 지도교수님께서 연구실로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부산 OO대학교에서 회계학 교수 추천이 들어왔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구먼”
갑작스러운 제의에 나는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유학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 하루만 생각할 기회를 주십시오”
“알았네”
즉석에서 거절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은 제안을 수락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이 의사결정에 있어서 제일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도 건강문제였다. 아직 완치되지도 않은 몸으로 머나먼 타국에서 학업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물론 다른 대안이 없었다면 아마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