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70프로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화이팅 하시고요!”
“네 미라클 모닝회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네, 저 근데 제가 내일부터 삼일간 불참 예정입니다. 해외출장 예정이어서요.“
”오~ 역시 부자워너비 424님 능력자~~“
”하하 뭘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도 건승하세요!“
보는 이 아무도 없었지만 혼자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해외 출장을 다녀와야 한다며 미라클 모닝을 3일간 스킵하는 나란 남자. 대기업 다니면서도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회계와 재무 공부를 하는 나님. 후후. 나 좀 괜찮은지도? 거울을 보며 은근슬쩍 멋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내는 아직 자고 있었다. 짐은 이따 퇴근 하고 와서 후루룩 싸야겠다. 뭐 가까운 중국이고, 3일간만이니까.
”라임씨, 내일 중국 출장 다녀오지?“
”네 맞습니다. 부장님!“
”회사 입사해서 첫 출장인가?“
”네 맞습니다. 부장님!“
”라임씨가 와줘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파인애플 대리가 주관하는 중국 VIP 고객 대상 행사에 깍두기로 따라가게 되었다. 우리 회사에서 연간 진행하는 큰 행사 중에 하나였다. 팀장님이 나같은 날라리를 해외 출장 보내주다니, 의외였다.
”가서 파인애플 대리도 돕고, 배우고 와.“
난 중국어도 못하는데. 어쨌든 해외출장이란 단어 자체만으로도 설레었다. 미라클 모닝을 삼일이나 스킵하게 되지만, 이렇게 나가서 배우는 게 분명 많겠지.
”캐리어는 큰 거 가져갈 필요 없어요. 괜히 짐 찾는 곳에서 윗분들 오래 기다리시게 하면 안 좋으니까. 그리고 면세점에서 뭐 살 거 있어요?“
”아, 아뇨. 명품 화장품은 잘 몰라서…”
“그럼 면세품 픽업도 안 해도 되고… 망고 부장님이 아시아나 다이아몬드 회원이라 인천공항 라운지에 한 명 데려갈 수 있다고 하시던데. 라임씨가 같이 가는 걸로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대리님.”
출장에는 별 별 신경써야 할 요소들이 많았다. 매번 누가 누구를 라운지에 데려가고 비행기 예약하고 호텔을 잡고, 어떻게 저렇게 세세하게 신경을 쓸까. 하다 못해 파인애플 대리는 출장자들의 호텔 층수와 공항에서 호텔까지 이동할 때의 밴 동원까지 챙기는 듯 했다. 숫자만 들여다 보던 나로서는 그저 신기한 세계였다.
“본사의 라임씨? 새로 입사했나보네, 만나서 반가워!”
중국의 주재원이었던 용과 차장은 나에게도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출장자들을 마중 나와있던 용과 차장은 익숙하게 모두와 인사를 나눈 뒤 나에게 중국 현지 직원들도 소개시켜 주었다.
“Hey, Mr.Lime, Nice to meet you!”
“Eric, Nice to meet you too! This is the first time to see you in person.”
영어로 인사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어를 평소에 열심히 연습해 둔 보람이 있었다.
미라클 모닝 만세.
”부장님, 일단 체크인 하고 식사부터 하시죠. 근방에 식당 예약해 두었습니다.“
”아 그 저번에 갔던 광저우 식당? 거기 맛 괜찮았어.“
”네, 제가 그 때 이후로 메뉴 개발을 더 했는데요…“
”어머, 차장님 신메뉴 또 발견하셨어요? 뭔데요?“
부장님과 차장님, 파인애플 대리를 헐레 벌레 따라갔다.
”주재원들은 출장자들이랑 많이 다니니까, 현지 맛집을 찾고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 파악해 놓는 게 중요한 일 중 하나에요. 잘 먹어야 일도 잘 하죠.“
파인애플 대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종종이며 다시 사라졌다. 한 쪽 겨드랑이에 두툼한 체크리스트를 끼운 채였다.
출장 와서 먹는 첫 중국 음식이었다. 주재원 용과차장은 메뉴를 꼼꼼히 살피며 중국어로 쏼라쏼라 주문했다. 젓가락이 떨어지거나 그릇이 필요할 때 파인애플 대리도 종업원을 불렀다. 이 곳은 아마 영어가 통하지 않겠지? 이제 중국어도 공부해야 하나.
”이건 피딴두부, 오리알을 두부에 올린 건데 맛있어. 그리고 이건 꽁바우지딩, 닭고기를 토막내 튀겨서 땅콩이랑 볶았는데 한국인 입맛에 제격이야. 그리고 이건 생선을 튀겨서…“
용과 차장은 신입사원인 나에게까지 친절하게 메뉴 설명을 해 주었다. 대단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음식도 다 입맛에 맞았지만 워낙 긴장을 하고 있었던 탓에 많이 먹지 못했다. 그런데 깜짝 놀랄 만한 순간은 계산을 할 때였다.
”푸우위엔, 마이딴~(종업원 계산서요)“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져왔다. 용과 차장은 꼼꼼히 영수증을 확인한 후 핸드폰을 꺼냈다. “신용 카드를 핸드폰 지갑에 넣어다니나?” 생각하던 찰나 용과 차장은 핸드폰 화면에 큐알 코드를 띄웠다. 종업원은 그 큐알 코드를 찍었다. 삑! 결제 완료.
”우와! 여기는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지 않나요??“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었다. 원탁에 둘러앉아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래, 중국은 다들 큐알코드로 결제해. 신용카드 꺼내면, 외국인인가 할 걸?“
용과 차장이 빙긋 웃었다.
”용과 차장, 요즘 중국 시장 좀 어때? 이제 좀 저점 아닐까, 슬슬 반등하는 것 같아서.“
”하락세가 멈추긴 했는데, 아직은 좀 위험하지 않나 싶어요 부장님. 항셍 지수도 들썩이기는 한데.“
“중국 본토 A주 투자해? 어떤 통로로 하는데?”
“재작년에 알리바바 상장 했잖아요. 열심히 노려만 보죠.”
“작년에 상해 시장이 너무 휘몰아쳤잖아…”
밴 맨 뒷자리에 앉아 앞자리에 앉은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다. 중국은 여전히 성장 중이었지만 성장률이 두 자리 수에서 한 자리 수로 내려갔다. 6~7퍼센트의 성장. 하지만 여전히 고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심천의 창 밖 풍경은 꽤나 살풍경했다. 뿌연 회색빛 스모그 속 넓게 펼쳐져 있는 도로. 그리고 빠르게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차들. 여기 저기 공사 중인 아파트들이 꽤 많이 보였다.
아까 호텔에서 체크인 하면서 봤던 도심 풍경도 퍽 대단했다. 거리는 인파로 가득했고 다들 바쁘게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중국은 여전히 성장하는 것 같았다. 차장님 따라 잠깐 들른 편의점에서 로봇 강아지 같은 것도 봤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은, 해외 주식 이야기에 심취해 있었다. 미국 주식, 중국 주식…
안 하면 뒤쳐지는 것 같았다. 남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텐센트? 알리바바? 그 회사들 재무제표는 어떻게 볼 수 있지? 아까 식당에서 큐알코드로 결제한 게 알리바바 기술이지?
”예전에 투자 카페에서 누가 키움증권이 해외 주식 하기 좋다고 추천해줬던 것 같은데.“
그 때 계좌까지만 만들어 놓고 까먹었었다. 어플도 깔았던 것 같은데. 부랴부랴 한국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아직 어플이 남아 있다. 들어가봤다.
잔고 삼만원.
내가 언제 삼만원을 넣어놨대? 엇.. 들여다보니..
십만원에서 마이너스 70프로.
.....
...그래도 계좌는 만들어 놨네.
괜찮아 괜찮아.
다음 달이면 회사에서 보너스가 나온다. 나에게도 총알이 몇 백만원 생기겠지. 나도, 다시 해볼까. 포트폴리오를 다변화 해보는거야.
”해 보자. 아내한테 명품도 사주고, 집 대출도 갚고.“
일단 십만원 정도만 해 볼까.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본인인증을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신분증을 주섬주섬 꺼냈다. 옆에 앉아 있던 파인애플 대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민망해서 웃음이 나왔다.
”아니…저 저번에 만들었던 해외 주식 계좌...신분증을 다시 인증해야 해서요.“
”어머 그래요? 라임씨 재무제표 볼 줄 알죠? 나도 종목 하나 추천해 주면 안 될까요?“
파인애플 대리나 나나 오십보 백보지만 잘난 척을 해 보자.
”저도 잘 모르는데, 회사 마다 PER 랑 PBR을 일단 봐야 할 것 같아요. BEP 에 도달했는지랑...“
”오…대단해 보이는데요… 우리 다음 달에 보너스 나오는데, 나도 한 번 해볼까.“
회사원들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