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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 내 아기는 부채인가 자산인가

이사업체 점심값을 아는 어른이 되었다.

by 찬란


“고객님, 이사 시작하겠습니다!”

이사날이었다. 사다리차가 새벽 6시부터 우리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짐을 빼고 팔고 정리했는데도 짐이 많았다. 카카오 오픈채팅을 통해 소개 받은 이사회사에 예약했다. 아침부터 아저씨 한 분, 아주머니 두 분, 외국인 두 분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들은 척척 호흡이 맞았다. 마치 가족 같았다.

“고객님, 혹시 이 물건 따로 빼시는 건가요?”

“네 맞아요! 저 관리사무소 다녀올게요.”

이사센터에서 짐을 빼는 동안 물건이 다 나갔나 체크했다. 미처 발견 못 한 빌트인 수납장이 발견되기도 해 사장님께 알려드렸다. 점심 값 십오만원을 조심스레 드렸다. 어머니 얘기론 그 정도를 현금으로 따로 챙겨드리는 게 좋다고 했다.

“아이고 점심 값을 후하게 주시네, 고맙습니다 고객님. 점심 먹고 이동할게요~”

나는 이사갈 집으로 이동했다. 아직 짐이 들어오지 않은 새 집에 창문과 문을 열었다. 어저께 입주 청소를 끝낸 새 집은 반짝였다. 각 방문마다 가구 배치를 그려둔 종이를 붙였다. 이러면 가구 배치에 큰 문제가 없겠지.


“자 물건 들어가기 시작하겠습니다.”

외국인 두 분이 파란색 플라스틱 판대기를 깔아 집안 곳곳에 길을 냈다. 보양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길을 통해 커다란 상자가 수레에 실려 계속 들어왔다. 그동안 나는 이사온 동네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했다. 주민센터 담당자분은 웃으며 이사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기분이 좋았다.

아파트에 돌아와 단지 안 벤치에 잠시 앉아 스마트폰 우리은행 어플을 켰다.

“전세금…아침에 잘 들어왔지.”

나를 속썩였던 이 돈. 이제 이 돈을 아파트 잔금납부용 계좌에 이체해야했다. 혹시나 실수할까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숫자 하나 하나를 옮겨 타이핑했다.

”4…2…4…“

금액에 혹시나 0을 더 붙일까봐 손이 벌벌 떨렸다. 눈을 크게 뜨고 몇 차례 확인 한 후 ‘송금’을 눌렀다. 보안카드 숫자 입력까지 끝내자, 입금이 완료되었다. 혹시나 몰라 입금 완료된 어플 화면을 캡쳐까지 해 두었다.

”어? 용과 차장도 돈 보냈네.“

나에게 돈 천만 원을 빌린 용과 차장은 매 달 나에게 30만원씩 갚고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는 매 달 정해진 날짜에 돈을 입금하고 있었다. 내가 차용증을 공증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아직까지는 성실히 갚아나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체납하기만 하면 또 본때를 보여 줘야지. 그리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뭘 가입하라고 했는데…“

새 아파트는 전용 어플이 있다며 이것 저것 깔고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와이파이 이전서비스도 신청해둬야지. 공용현관 키 여러개를 잔뜩 묶은 꾸러미를 들고 나는 벤치에 앉아 한참을 스마트폰과 씨름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아내였다.

한참을 끙끙대던 내 입가에 크게 미소가 번졌다.

아내는 잘 쉬고 있을까.


이사 일주일 전이었다.

아내가 퇴근하고 같이 집에 가자며 우리 회사 근처에 와서 나를 기다렸다. 최근 며칠 아내의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기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퇴근하고 회사 앞 광장에 나가니 아내가 하얀색 코트를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예뻤다.

”왠일이야? 나 보고 싶어서 온거야?“

”응, 그럼~ 나 오늘 맛있는 거 사주라.“

”뭐 먹고 싶은데?“

”음, 나 부대찌개.“

”부대찌개? 그러자, 요 앞에 내가 아는 집 있는데…“

”응! 당분간 너무 자극적인 음식은 못 먹을 거 같아서~“

아내가 실실 웃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응? 왜 자극적인 음식을 못 먹는데?“

”음~ 왜냐하면…초기엔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하니까?“

”어? 초기…?“

어?

어…?

어??????

”당신…??? 당신…??? 설마?????“

아내가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지금까지도 손에 꼭 쥐고 있었는지 따뜻했다.

까맣고 하얀, 7주 된 작은 아기의 초음파 사진.

”실은, 나 오늘 심장 소리 듣고 왔어. 7주래.“

”어…어…어……!!!어!!!!!!! 정말이야???????????“

길거리 지나치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다.

”응, 여보. 우리 아기야…아기…“

”여보, 여보, 여보…!!!!!!!!!!!!!!!“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여보, 울어??“

”흐,흑……왜 말을 안했어…나한테 말 안하고…“

”나는…혹시나 해서…7주 되고 심장 소리 들으면 말하고 싶어서…여보 울지마…흑흑…“

”아씨 나 주변에 회사 사람 있을 수도 있는데…으흑…“

”아흑…크큭……뭐야 당신…아하하…”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었다. 누가 보면 영락없이 미친 사람들 같겠지.

“울지 마 여보…아하하학…흑흑흑…아하하…흑흑…”

한참을 난리를 다 피우고 나자 우리는 머쓱하게 웃었다.

“여보, 당신 이사 날 꼼짝 말고 친정에 가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그래도 괜찮겠어?”

“당연하지, 당신 절대 안정해야 해. 백걸음 이상 걸으면 혼나, 알았어?”

“하하…우리 남편 멋있네. 알았어…”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부대찌개 집으로 향했다.

잡은 아내의 손의 온기도

그 날의 내 마음도

세상에서 가장 뜨끈했다.


“고객님, 이사 다 끝났습니다. 확인 한 번 쭉 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체크리스트를 꺼내어 하나 하나 꼼꼼히 확인했다. 세탁기 호스는 잘 연결되어 있는지, 가구 배치는 정확하게 되어 있는지, 벽이나 바닥에 심한 찍힘이 생기진 않았는지… 이사업체는 프로답게 잘 마무리해 두었다.

“이사비는 입금 했고요, 여기는 조금 저녁값 하시라고 소소하게 넣었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럼 새 집에서 행복하십쇼.”

이사업체 사장님 입을 통해 ‘새 집’이라는 단어를 듣자 다시 한 번 웃음이 나왔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기뻤다.

대출 좀 있으면 어때, 이제 부터 갚아 나가면 되는거야.

이 집에서 내가 꾸린 가족과 함께 살아갈 거야.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내 아기…

아기는 ‘사치재’가 아니었다.

아기는 ‘부채’도, ‘자산’도 아니었다.

아기는 빛이었다.

나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삶을 이겨낼 힘을 주는,

빛.


이사팀에서 철수하고 나자 나는 걸레를 들고 그새 보얗게 앉은 먼지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아내가 임신한 걸 알게 된 본가에서 ’이사 후 정리업체‘를 선물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내일이면 그분들이 오셔서 짐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청소도 해 주실 것이다. 양가 부모님들은 모두 한 입으로 아내를 걱정했다.

“초기에 조심해야 한다. 움직이지 말고, 쉬면서 좋은 음식 많이 먹어라.”

핸드폰을 꺼냈다. 아내에게 카톡 보내야지.

<이사 잘 끝났어. 컨디션 괜찮지? 사진 보내줄게.>

사진을 보내는데 스마트폰 화면에 문자 알림이 떴다. 익숙한 회사명이 내 시선을 붙들었다.

<안녕하십니까, S생명 인사팀에서 안내드립니다…>

엇?

저번에 입사지원한 S생명…?

혹시…?



그동안 <대기업 신입사원 라임씨>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회는 에필로그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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