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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얻어 낸 작은 승리

대기업, 성추행, 그리고 나 - 7

by 찬란


“나도 당했었어요, 그놈한테.”

추가 피해자였던 그분은, 선배로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회사에서 조사한다면, 기꺼이 증언할게요.”

“선배님, 감사해요. 우리 후배들을 위해 나서봐요.”


마음이 따뜻해졌다. 누구라도 옆에 있었으면 했는데, 다행이었다.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데, 작은 화롯불이 있는 걸 발견한 느낌이었다. 조금은 힘이 났다.


회사에 다시 이야기해야 했다. 이대로 넘길 일이 아니었다.

“저 이외에도 같은 가해자에게 추가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회사 내에 유출되고 있으니 보안유지를 다시금 부탁드립니다.“


내가 추가 피해자의 존재를 언급하자 회사의 태도는 ‘당혹’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어…저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예상을 못해서.. 좀 알아보고..연락드리겠습니다.”

​​​

그때부터였다.

회사를 믿고 기다리기만 하다간 일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던 게.

​​

​며칠 후,

가해자는 대기발령 및 면보직 발령이 났다.


갑자기 그가 보직에서 해임되자 사람들이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사건은 일파만파 사람들에게 더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사내게시판에서 발령 내용을 확인하고 쓰러지듯이 잠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이후 갈 길은 멀었​지만 처음으로 얻어낸 아주 작은 승리였다.

​​

인사팀은 자랑스럽게 내게 말했다.

“그렇게 빨리 발령 난 건 전례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도 ‘전례’라는 단어는 두고 두고 등장할 터였다.

내가 만든 전례가 있었기에 이후 터진 또다른 불행한 사내성범죄 사건에서도 또다른 가해자의 발령이 전보다 빠를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해 형사 절차를 시작해야 하나 막연히 고민하고 있었다. 내 안의 정체 모를 불안감이 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간 회사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서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느낌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차 강렬해졌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변호사와 상담하기 시작했고, 가해자를 형사 고소하기로 결정했다.

“변호사님, 결정 했습니다. 고소 할게요. 부탁드립니다.”


그 결정을 한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말한다.​​​

정말로, 정말로 잘했노라고.

​​​

“When you’re going through hell, keep going.” -Winston Churchill

지옥에 가거든 그저 견디며 걸어라.



*처음 이 시리즈를 접하신 분들께*

이 시리즈는 실제 사건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1화부터 정주행 추천드려요.

1화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aylagrace/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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