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성추행, 그리고 나 - 11
회사 징계 과정을 거치면서, 가해자의 주장과 논리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나에게 재심 결과를 안내하던 법무팀장이 가해자가 어떻게 주장했는지 간단하게마나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였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랬던 사실이 없다. 피해자가 날 음해한다.”
“추가 피해자도 다 거짓말이다. 둘이 짜고 날 음해해서 이득을 보려고 한다.”
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야 가해자는 CCTV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자신이 부인했던 사실의 증거를 눈 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자신이 내 몸에 더러운 손을 뻗어 했던 행동들을.
이제 자신이 했던 행동을 눈 앞에 들이밀었을 때,
가해자는 뭐라고 말할까?
그랬던 사실이 없다더니?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반성할까?
그렇게도 나는 순진무구했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으니, 부끄러움을 안다면 퇴사하고 진정어린 사과를 할 거라 생각했던 게.
아니, 그의 논리는 바뀌었다.
놀랄 만큼 진부하고 어리석게도.
그의 새로운 논리는 인사위원회가 끝나고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경찰서에서 봤던 여러 곳의 CCTV중 아주 일부를 가해자와 회사 법무팀장이 같이 봤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본 영상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향해 더러운 손을 뻗고 있었고 나는 몸을 뒤로 빼며 손을 뻗어 그것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그랬던 사실이 없다더니, 이젠 뭐라고 하던가요?”
내 말에 법무팀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게.. 그건 격려 차원에서 그랬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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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 is inveitable. Surrereing is optional.” -Haruki Murakami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머무를지는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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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시리즈를 접하신 분들께*
이 시리즈는 실제 사건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1화부터 정주행 추천드려요.
1화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aylagrace/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