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장인어른 왜 그러세요.
“아이, 장인어른 왜 그러세요.”
순풍 산부인과의 박영규(박영규)는 대표적인 소인배다. 까마득한 후배에게 밥 한 번 사는 일이 없고, 손해 볼 일엔 절대 나서지 않으며, 말을 옮겨 장인어른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한다. 보고 있으면 절로 ‘발암캐’라는 말이 떠오른다. 현실에서 저런 인물이 주변에 있다면, 장담컨대 나는 손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다. 시트콤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그의 주변 사람들은 늘 그를 욕하면서도 함께 어울린다. 냉장고를 털어먹어도, 질투하고 험담해도, 한바탕 싸우고는 웃으며 화해한다.
“야, 나는 너 하는 짓 흉내도 못 내겠어.”
박영규가 고향에서 온 간식상자를 침대 밑에 숨겨놓고 혼자 먹다 걸렸다. 생활비 한 푼 안 보태면서 장인어른 집에 얹혀사는 처지임에도, 졸렬하게 간식을 숨기는 박영규에게 장인어른은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곧 그와 바둑도 두고 골프도 친다. 욕하면서도 함께하는 것, 그건 뭘까.
나는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본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인 묘한 감정.
“축하해!! (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괄호 안 감정을 숨길 때가 있다.
또한 나는 가성비에 민감하다.
좋은 마음으로 호의를 베풀었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무심하거나 무례하다고 느껴지면 마음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지만, 안 그래야지 하다가도, 내 안엔 소심한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다.
“내가 이렇게 배려했는데, 너는 왜 그걸 몰라줘?”
그런데 이런 나에게도 너그러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릴 땐 선생님이, 어른이 된 후엔 선배와 어른들이.
내가 졸렬하고 치졸한 행동을 해도, 한 번쯤은 눈감아주고, 웃어줬다.
“하하 그럴 수도 있지.”
그 덕에 나도 그 행동을 배웠다.
내게 소인배처럼 구는 누군가를, 그냥 웃고 넘겨본 적이 있다.
박영규가 하는 일이 다 잘 안되어 침울하고 시무룩해 할때,
장인 오지명 원장은 그에게 말한다.
“살다 보면 널 알아봐 줄 사람은 다 있어.”
치졸한 소인배의 마음을 품어주는 건 ‘용서’보다 더 섬세한 감정이다.
뭐라 이름 붙여야 할까? 너그러움?
그걸 안다는 것.
그리고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품어준다면,
누군가 내가 부족해졌을 때 나를 웃으며 넘어가줄 수 있을 것이다.
박영규는 분리수거를 잘해 상을 받자 감격해 눈물을 흘리고, 장인어른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애교를 부리며 무릎까지 꿇는다. 지저분하고 졸렬하지만, 아내에겐 사랑꾼이고, 딸에게는 자상한 아빠다.
결국 그를 품어준 사람들 덕에, 그는 소인배지만 미워할 수 없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성추행 사건 후
나에게 말로, 행동으로 상처를 주는 이들이 있었다.
사실 그 중 대부분은 악인이 아니었다.
나를 미워하고 싫어해서가 아니라
‘내가 불편해 질까봐’ 라는 건조한 계산기,
‘난 안 겪어봐서 모르니까’라는 무심함이
그 말과 행동의 바탕이었다.
이후 법원 판결이 나고
법, 제도, 시스템, 여론이 모두 내 손을 들어주었을 때,
그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들을 향해 느꼈던 억울함과 서운함은 사라져 있었다.
우리 모두는 소인배였다.
그리고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매번 사위에게 욕하고 화내면서도 늘 품어주던 장인어른, 오지명 원장처럼.
“죄송합니다, 장인 어른. 이제 미달이한테 방귀총 안 쏘겠습니다…”
*브런치 북 [대기업, 성추행,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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