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십 연재를 시작합니다.
“언니, 제 얘기 좀 들어봐요.”
“뭔데, 이상한 의뢰인 만났어?”
“전 변호사가 되면 힘든 사람을 도울 줄 알았어요. 낭만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의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웃음) 서두가 이리 거창해? 뭔 일이야?”
중소 로펌에 다니는 후배를 만났다.
‘바닥에서 시작하겠다’며 입사하던 날의 패기,
과로에도 반짝이던 눈빛.
그랬던 그녀가 말했다.
“언니, 저 진짜 현타 왔어요.”
입사한 로펌은 네이버 카페 하나를 운영 중이었다.
이름하여,
‘불륜하는 남녀들의 모임’.
당연히도 법적 조언이 절실한 이들이 넘쳐났고,
후배는 거기서 일을 시작했다.
“의뢰인은 80대 할아버지였어요. 아내 몰래, 또 다른 할머니와 외도 중이었죠.”
“헉…그래서?”
“근데 그 할머니가 헤어지자고 하니까, 할아버지가 스토킹하다가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대요.”
“허어어억…그래서?”
“그러더니, 조강지처였던 아내를 데려와선, 상간녀를 고소하겠다고 하더라고요.”
…………
할아버지는 조강지처 몰래 불륜을 저질렀다. 사랑인 줄 알았던 상간녀 할머니와 헤어졌다. 실연당한 할아버지는 화가 났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상간녀 할머니를 스토킹했다. 그러다가 법원에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뿔이 났다. 그리고 해외에 거주하고 있던 본처 할머니를 데리고 로펌에 방문했다. 본처 할머니 명의로 상간녀 할머니를 고소한 것이다. 본처 할머니는 눈물만 뚝뚝 흘리며 할아버지 뜻대로 하겠다고 했다.
“잠깐, 나 너무 어지러워.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의뢰인인 거잖아?”
“아직 얘기 시작도 안했어요.”
어질어질한 얘기는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상간녀 할머니와의 ‘외도’를 증명하기 위해, 할아버지는 자신의 증거자료를 로펌에 제공했다. 그간 상간녀 할머니와의 비밀스러운 만남 때마다 녹화했던 ‘비디오’였다. (!!!!) 내 후배는, 그 증거자료의 등장인물이었던 할아버지와 상간녀 할머니의 모습을 캡쳐하여 법원에 제출해야 했다. (오마이갓) 할아버지의 요구였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요청대로 해야 했다.
법원에. 그걸.
“언니… 판사님한테 한 소리 들었어요. 진짜 현타 왔어요.”
“……그랬겠다……”
“그래서 그만뒀어요. 인생 짧은데, 다른 일 하고 싶더라고요.”
“와…잘했어.”
그녀는 짧은 시간 안에 판단했고, 실행에 옮겼다.
그 결정이, 몹시 단단하고 멋져 보였다.
“그래, 정말 그 마음이 어땠겠어. 그동안 고생했고 좋은 곳으로 잘 이직했다니 그것도 축하해.”
“별 일 아니에요. 사람 사는 게 참 다양해요.”
헤어지는 그녀는 늘 그렇듯 반짝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멀리하는 것도 현실적인 자기 방어다.
그걸 아는 감각이, 나를 지키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것만큼,
뭘 싫어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이건 견딜 수 없이 싫은 일이니, 떠나야만 해.”
그녀는 아니라고 생각하자
바로 털고 일어나 훌훌 자리를 떴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하고
떠나는 것, 그것이 그녀를 그녀답게 만들었다.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것만큼 괴로운 게 있을까.”
그녀와 헤어지며
나의 견딜 수 없이 싫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도 바로 툭툭 털고 떠날 만큼 싫은 무언가가 있었고
결국 내 꽤 길었던 첫 회사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싫은 순간만 있던 건 아니었어.“
집에 가면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회사에 대한 글을 써봐야겠다.
좋은 기억도, 싫은 기억도 같이.
관계는 어떨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피하는 것.
그것이 또 다른 애정의 방식이 아닐까.
“결혼하면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안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던데.“
…그러니까,
애들이 질색하는 당근 라페 도시락은
이제 그만 싸야겠다.
남편도 애들도
정말 너무 싫어했는데
내가 어거지로 먹여왔었다.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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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찬란입니다!
“예전엔 잘 나가던 기획자였습니다만”은
주 2회(화/금) 연재 예정입니다.
그리고 화요일 연재분은 멤버십 콘텐츠로 연재하고자 합니다.
멤버십 연재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이번 시리즈 내용의 절반은
멤버십으로 연재해보자고 결정 했습니다.
이유는 다음 세 가지였습니다.
1. 근무했던 회사에 대한 여러 내용들이 있어 ‘지인 차단’이 필요했습니다.
2. 브런치에서 새로 제공하는 ‘멤버십’이라는 서비스를 저도 참여해 같이 한 번 해보자! 싶었습니다.
3.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새로운 연재를 망설이고 있을 때, 멤버십 글이 전무했음에도 “멤버십 구독”을 해 주신 독자분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칭찬 인정욕구...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ㅠ)
이왕 하기로 한 거,
멤버십 구독을 하신 분들에게 다음을 약속합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 값으로,
구독자님은 매주 아래 내용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대기업 기획실에 근무해야 알 수 있는 이야기들
(대기업 임원 고과, 의전의 세계 등)
2. 고과, 취업, 평판 관리 등 사내에서 살아내는 요령
(과거 직장에서 제가 얼마나 칭찬받고 싶어 애쓰고
난리부르스를 추며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3. 댓글로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내용을 알려주시면
그 다음화 주제로 삼아 다루어보겠습니다.
(내용 제한 없이 자유롭게 하겠습니다.)
저는 “돈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믿습니다.
결제하신 그 돈가치 이상을 돌려드리는 게 정말 일을 잘하는 프로입니다.
프로답게 하겠습니다.
찬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