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샹들리에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당신’은 달빛 속에서 그 너머의 시인을 떠올립니다. 달빛 뿐일까요? 바닥을 구르는 돌멩이에서도 시인을 떠올렸을 것만 같네요. 사실 달도 햇빛을 반사하는 큰 돌멩이니까요. 온 세상의 초점이 대상에 맞춰지는 듯한 경험을 한 ‘당신‘은 어느새 사랑의 초입에 서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시인의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어둡던 산 아래 작은 마을을 밝혀주네요. ‘당신’의 전화에 화답하듯, 간절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보내는 시인.
‘세상에’!
당신이 강변에 비친 달빛이 곱다며 다시 전화를 주셨네요. 당신의 전화에 눈부신 달빛은 감미로운 노래로 부서져 강물 어디쯤을 졸졸 흘러갑니다.
달빛을 곱씹다보면, 빛살을 조각내며 반짝이고, 서로 부딪히는 유리 조각들처럼 섬세한 소리를 만드는 Sia가 떠오르네요. 하지만, 흔들리는 샹들리에에 매달려 춤을 추는 무용수를 떠올리게 하는 Sia의 <Chandllier>와 달리, 달빛에 비춰진 마을에서 관능의 그림자를 찾긴 어렵습니다. 강물에 부서진 시인의 언어는 맑고 청아한 편경(編磬) 소리로 가슴을 적십니다.
부서진 달빛들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조각은 2연의 4행입니다.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입니다. ‘시각의 청각화를 통해 공감각적으로 묘사한 달빛’ 정도로 짚고 넘어가기엔 제 감동을 표현하기엔 부족합니다.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를 읽으면, 시간이 느려지는 것만 같습니다. 달빛이 비추는 강물의 흐름을 시인이 가로막고 서 있습니다. 그러면 수백 테라 헤르츠의 진동수를 가진 가시광선의 진동도 점차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진동수만큼 낮아집니다.
보이저 1, 2호가 보내준 ‘우주의 이중주’와 같은 장엄함 속에, 달빛의 서정을 담은 시인의 노래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초연을 빛내준 브루노 펠티에의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Lune(act 2, song 15)] 같습니다.
다음 에세이에서는 흘러넘쳐 벅차오르는 사랑의 감정, 그에 대한 서정적인 표현 등에 대해 다룬 작품들과 연관된 기억에 대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공감각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피아노 선율이 부드러운 파란색 물결처럼 흐르고, 바이올린 소리는 날카로운 은빛 섬광이 되어 번뜩였다.“라거나, ”그녀의 웃음소리는 노란 햇살처럼 따스하게 퍼져 나갔다.“처럼요. 청각의 시각화에 국한될 것도 없이 “레몬을 베어 무는 순간, 날카로운 피아노 음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처럼 다른 감각이 연관되기도 한다네요.
듣진 못했지만, 부서진 달빛이 제게 선사한 새로운 차원의 경험처럼, 벅찬 사랑은 이내 부서져 성숙의 자양분이 되어주곤 합니다. 여러분은 강물에 부서진 달빛의 소리가 들리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