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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은 서른

by TheGrace Jan 08. 2025

요새 매일 아침에 일어나 2.5km씩 달리기를 한다. 누군가에게는 별 볼일 아닌 거리일 수 있으나,

운동이라는 것을 하지 않은 지 1년이 넘어가고, 체중이 100kg 가까이 나가는 나에게는 큰 도전이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한 겨울의 아침이지만 삐질삐질 땀이 흐르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당장이라도 그만 뛰고 싶은 욕구가 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다.


그래도 달린다. 이제 서른이 되어가는 나이 앞에서 더 이상 핑계만 대 가며 버틸 수는 없기에 발걸음을 떼 보기로 한다. 

피곤해서 더 자고 싶은 몸을 강제로 깨워 찬 바람 앞에 가져다 댄다. 

의도치 않게 내가 느끼는 것은 고양감이었다. 2.5km가량의 거리를 가까스로 뛰고,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사 들고 집으로 오는 길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며칠을 그렇게 뛰었다. 

오늘, 뛰지 않았다. 

무엇인가 비어 있었다.

 온몸에는 힘이 빠졌고, 그저 잠을 더 청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가 이렇게 달린다고 해서 누가 알아줄까. 

나는 어쩌면 조금씩 추해져 가는 백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채웠고, 나는 그저 피곤하다는 핑계로 머리를 다시 베개에 가져다 대었다.


아름답지 않은 서른의 시작이다. 서른이 시작되자마자 내가 맨 처음 한 일은 단절이었다. 

나를 소중히 대해주던 사람들과, 그 그룹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당연히 매 순간 고맙고, 눈물 나게 좋은 기억들이 많지만, 나에게는 현실의 문제가 더 커 보였다. 

(지금은 어느 정도 해결 되었지만) 매일 나에게 전화 오는 카드사와 은행의 연락이 그들의 사랑보다 더 커 보였을까, 나는 상당히 매몰차게 그들을 밀어내었다. 

좌절 가운데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 쉬는 존재는 나 하나면 족하니까.


수많은 사람들과 단절을 선언하고, 나는 방에 틀어박혔다. 

가끔 출근하는 작업실에 더 자주 출근하고, 더 오랜 시간 붙어있었다. 

단절의 고통을 창작으로 대체하고 싶었을까, 혹은 다른 관계에서 이 단절의 상처를 꿰매려 하였을까. 정확한 의도와 목적은 지금의 나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전보다 더 자주, 더 깊이 사유하고 창작하고 있다.


안정감 대신 고통을 사유한다. 안정감 대신 삶을 사유한다. 

안정감 대신 사랑을 사유한다. 이 수많은 생각들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미지수지만, 그 미지의 건들을 사유하고 탐닉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다시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지금의 내가 키보드 앞에 앉아 한 자 한 자 무엇인가를 적어 내려가는 과정이 그러하듯이. 


내가 서른이 되면서부터 가장 하고자 했던 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을 하고 싶었다. 

가장 마지막 사랑은 나를 부숴놓았지만, 서른이 되어 시작한 사랑은 아름답기를 소망했다. 

서로의 바닥을 바라보고도 그저 멋쩍게 웃으며 갈라진 손을 마주 대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사랑, 

어떤 모습과 어떤 상황일지라도 그저 그 모든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하며 다시 함께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사랑. 

그 사랑의 결말이 어떠하던 조금 더 성장했노라고 서로가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기를 소망했다.


침묵하는 밤과 고통스러운 낮이 각자의 살갗을 파고들지라도 둘이기에 괜찮은 사랑. 

모호하고 맞지 않는 문장 속에서 각자의 진심을 알아차리며 그 진심을 서로에게 속삭일 수 있는 사랑.

숨겨둔 어느 이야기 같은 사랑일지라도, 혹은 이상적인 그런 사랑일지라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현실을, 다른 사람이 한 사람의 현실을 함께 살아내주는 사랑, 

그런 사랑을 하기를 소망했다.


다시, 오늘 달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넘어와서, 

그런 사랑을 하기에 나의 모습이 상당히 못나다는 생각에 도달하며 나는 오늘 달리지 않았다. 

허탈했다. 

그래도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차와 좋은 집에 사는 동갑내기 누군가와는 다르게 나는 나의 삶조차도 제대로 만들어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칼이 되어 나의 폐부를 찔렀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던 사랑과, 서로를 부수어 놓았던 추억, 생각보다 더 추한 나의 과거는 밧줄이 되어 나의 손과 발을 묶었다. 

사랑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있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뇌었으며, 그 대답을 듣기 싫어 잠을 청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할 수 있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뇌었으며, 

그 대답을 듣기 싫어 베개로 나의 귀를 틀어막았다.


아름답지 않은 서른이다. 피 튀기는, 피 냄새가 나는 서른이다. 

어쩌면 서른에 다다르며, 나는 뚫린 나의 폐부를 메꾸어줄 누군가를, 나의 손과 발을 묶어둔 밧줄을 끊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 누군가를 기대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 기대와는 무색하게, 나의 여섯 평 방 안은 차갑다.

그 기대와는 무색하게, 나의 여섯 평 방 안에는 나 혼자 존재한다.

그 기대와는 무색하게, 나는 홀로 텅 빈 화면을 마주하며 숟가락을 든다.

그 기대와는 무색하게, 나는 여전히 못난 서른이다.


그럼에도 그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나를 태워서라도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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