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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가비 Nov 14. 2024

[100-67] 나무가 주는 깨달음

 운전하면서 오가다보면 눈길을 끄는 것들을 유심히 본다. 자연현상에서 인사이트를 얻을 때도 있고 인간이 자연에 무언가 조치를 취한 것을 보고 생각이 많아질 때도 있다. 특히 나무에 관심이 많아서 계절의 흐름과 인생의 지혜를 나무를 관찰하면서 많이 느낀다. 나무를 주제로 한 그림책도 은근히 모으고 있는 이유다.


 보통 나무를 닮고 싶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나도 나무처럼, 나무같은 모습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곧게 쭉 뻗은 든든하고 멋진 수형의 모습인 나무를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그러나 나무는 생각보다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형태로 자라난다. 삼나무나 메타쉐콰이어같이 거대하고 쭉 뻗게 자라는 나무들의 위용도 멋지지만 한라산 등반을 하면서 정상 가까이에서 보았던 나무들도 신비로웠다. 바람과 추위때문인지 한쪽으로만 가지들이 쏠려 자란데다가 죽은 동물의 뼈같이 수피가 하얀 나무들의 모습도 나름으로 숭고해보였다.


 매일의 일상에서 나무를 보는 일은 수없이 많지만 나무의 형태가 몹시 독특하거나 기이하게 자란 경우를 보는 것은 흔치 않다. 어제는 절에 갔다가 나무가 자리잡은 위치도 신기하고 줄기 몸통 모양이 특이한 감나무를 만났다. 옆에서 보면 마치 여인이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있는듯한 모습이어서 이쪽에서도 보고 저쪽으로도 가서 봤는데 참으로 오묘한 형상이었다.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 사진을 찍어봤는데 마치 사람 한명이 나무 줄기에 등을 대고 붙어버린 모양같지 않은가. 앤서브 브라운의 그림책들에서 본 여러 가지가 엉키고 섞이거나 뭔가 숨어있는 듯한 모습의 나무들이 자꾸 연상이 되어서 소개해본다.

앤서니 브라운의 <터널>
<숲 속으로>                                                                                       <숨바꼭질>


 느낌이 비슷하지 않은가. 그림책속 기괴한 나무들은 숨기고 있는 비밀이 많은데 사찰에서 본 나무도 뭔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앤서니 브라운도 다양한 나무들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그렸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또 떠오르는 것이 캄보디아 타 프롬 사원의 스펑 나무들이다. 2005년에 여행을 갔었으니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건물과 벽돌을 휘감으며 용암이 흘러내린 듯한 형태의 나무를 직접 눈으로 보았던 그 광경은 뭐라 말할 수 없이 특별했다.


 사원의 나무들은 툼레이더 영화에 나와서 널리 알려졌다. 나무 줄기가 곡선으로 그렇게 유연하게 생겨날 수 있다는 것과 곡선은 부드럽고 유연함의 상징인데 실제 나무는 크고 두껍고 튼튼하게 뻗어나가서 사원을 잠식하며 자랐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나무의 매력과 생명력의 신비, 그 위대함은 어디까지일까.

 오늘 나무 이야기를 쓰고 싶게 만든 또 다른 나무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도로 한쪽에 조경수를 심어놓은 곳이 있는데 매일 오고가면서 보게 된다. 조경수는 어린 묘목일 때부터 키우면서 정원이나 가로수, 인테리어용으로 팔려나갈 나무를 멋진 형태로 키우기 위해 모양을 잘 잡아서 근사한 수형으로 만드는 일이다. 나무를 밧줄로 단단하고 팽팽하게 묶어서 이쪽저쪽에서 잡아당겨 놓은 광경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물론 나무의 종류와 특징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모양으로 자유롭게 자랄 수도 있는 나무를 인위적으로 잡아당기고 세워서 원하는 형태로 자라도록 하는 일이 육아와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차이가 있다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당기고 늘리고 붙잡아도 원하는대로 모양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

 부모는 아이가 삐뚤어지지 않도록, 편한 길로 가도록, 좋은 것만 경험하도록 이리저리 당기고 받쳐주고 근사한 모양새를 잡아보려 해도 아이는 이쪽으로 튀어나가려 하고 저쪽으로 휘어져보고도 싶어한다. 그렇게 하면 생채기 나고 다치고 모양도 안 이뻐질 것을 알기에 부모는 전전긍긍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본인이 직접 겪어보고 아파보고 느껴봐야만 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걸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부모가 되기전  그 시기를 지나왔으니.


 조금 굽어자라는 나무면 어떤가.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려 조금씩 몸을 낮추며 터득한 생존 방법인 것을. 조금 울퉁불퉁한 줄기를 가지면 뭐 어떤가. 그 옹이와 거친 모습에 새긴 경험치의 시간들이 단단하게 자리잡았을 것이므로.


 큰 아이는 실용음악을 전공할 예정이라 오늘 보는 수능에 사력을 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6년간 공부와는 거리가 아예 멀어진 생활을 해와서 마지못해 수능을 보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수고했노라, 애썼노라 다독인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나 자신과, 부모인 우리에게 하는 위로라고.


 그래도 중3인 둘째는 아직 공부를 놓지 않았으니 진로와 진학에 대해 기대를 하며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부모인 우리는 조경수를 묶고 있는 두껍고 탄탄한 밧줄처럼 아이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지만 아이의 모습이 어떻게 완성될지는 없어 계속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집 자식들과 비교하고 괴로워하는 일은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이제는 못하겠다. 안하련다. 그저 묵묵히 내 아이들만 바라보고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독하게 마음먹는 일이 요즘의 내 숙제다.


 우리 가족의 일상과 마음을 지키는 일, 내 아이들을 잘 길러내는 일에 애를 써야할 시기이다. 자꾸 결과를 바라고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에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부모의 일을 해야지. 일에는 더디고 오래 걸리더라도 아들 딸이 어떤 나무인지, 언제 어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지 기다려 주는 것까지 포함하는 거니까.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우며 나는 오늘도 한뼘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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