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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가비 Nov 15. 2024

[100-68] 아직도 가을가을해

 며칠 기운없이 지냈다. 오랜만에 감기에 걸렸고 머릿속이 복잡했고 여러가지 속상한 일들로 인해 힘이 안나서 가라앉은 채 지냈다. 운동을 갈 기운도, 기분도 아니어서 집에만 있었다. 우울한 공기가 주변 가득해서 무겁게 느껴지는 게 버겁고 싫었다. 정신을 차리자.


 약국약으로 버텼는데 이번 감기가 다들 심하다고 걱정을 많이 해서 오전에 병원을 다녀왔다. 주사도 놔달라고 해서 맞았더니 한결 반짝 기운이 난다. 그 옆이 헬스장이라 두 가지를 짧은 동선에서 해결해서 좋았다. 이번주 처음으로 헬스장에 갔는데 막상 운동을 하니 골반 통증과 불편감이 덜하다. 마음먹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쳐져있지 말자!


 한낮의 기온이 너무 따듯해서 덩달아 기분도 따끈해졌다. 앤전집 읽기 모임 진도를 부지런히 따라가려고 오늘치 분량을 읽는데 너무 심쿵심쿵하여 뒷이야기가 궁금한 나머지 다 읽어버렸다. 드디어 답답하고 속터지게  애를 태우던 앤과 길버트가 서로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고백하고 사랑을 확인했다!! 3권 완독해버려서 4권을 바로 주문하면서 든 생각. 이럴거면 처음부터 8권 전집을 사는게 저렴했을텐데. 그래도 한 권씩 완독하고 다음 권을 사는 이 재미도 꽤 괜찮다.

 마당 테이블에 앉아 등으로 쏟아지는 노곤노곤한 온기의 햇살을 받으며 좋아하는 드립커피에 곁들인 초코쿠키를 야곰야곰 먹었다. 입은 달콤하고 로맨스는 달달하고 이렇게 책을 읽는 순간을 호사롭게 누리는 것이 내겐 행복이다. 노후에는 책방을 하면서 더욱 느긋하고 평온하게 이런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이 좋은 가을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매일 누리자~ 후회하지 않게 즐기자~ 그러기위해 하교한 딸과 산책을 했다. 비온 후 맑아진 하늘은 말갛고 깨끗하지, 기온은 덥지도 춥지도 않지,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잎을 떨구어 눈부시게 빛나지, 내 딸과 함께 걷고 있지, 어느것 하나 좋지 않은 게 없다. 아직도 가을가을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동물과 교감  잘하는 내 아이는 오늘도 동네 개들을 만지고 쓰다듬고 안아주며 행복해한다. 생명이 있는 것들을 살피고 지저분해도 꺼리지 않고 기꺼이 다가가는 네가 참 신기하다. 물통에 물이 지저분하다고 갈아주고 싶어하고 시골개들은 목줄에 묶여 답답하게 있는게 안타까워서 산책 시켜주고 싶다고 애달아한다.


 평소에 극 F인데다 자주 감탄하고 많이 울고 감정기복이 심한 엄마가 보기에 눈물도 거의 없고 이성적인것 같은 딸이 메마른 아이가 아닐까 걱정될 때가 많았다. 그런데 동물을 돌보는걸 보면 놀란다. 아이 때문에 유기견 임시보호도 3번 했다. 그런걸 보면 전혀 메마르지 않았다. 감정에 휘둘리는 나보다 인생을 더 잘 살아나갈지도 모른다.


 사랑이 많은 아이로 자란 것 같아서 고맙다. 어젯밤에는 내가 먼저 잠들었는데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옥상에 올라가 돗자리펴고 누워서 별을 봤단다. 낭만을 아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요즘 가을을 느끼며 좋아하는 걸 보니 네 안에 감성도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과하게 걱정하지 말아야지. 잘 자랄 것이라고 믿어야지.


 너와 내가 여기서 함께 보낸 가을날들이 따듯하고 행복한 추억으로 오감에 저장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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