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었을까?
"예약 취소해야할 것 같아요. 손님이 없어서요."
"당분간 집에 사람이 오면 안될 것 같아서요."
그랬다. 코로나로 인해서 예약이 계속 취소가 들어왔다.
사업을 하면서 내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코로나 였다. 가끔 일을 가시는 분들이 약속을 안지켜서 거래처에 죄송하다 사과를 하고, 다시 사람을 찾고, 급하게 사람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와서 사람을 급하게 찾고 이런일들은 종종 발생이 된다.
그런데 코로나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당장 이 바이러스를 멈출수도, 손님이 안와서 힘들 거래처에 사람을 억지로 보낼 수도, 일이 없는데 희망고문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있으니 회비를 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은 언제든 일어 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했고, 나 혼자 버텨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인천점도 같이 버텨야 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런 기회를 통해 점프를 하기위해 스프링을 누르는 것처럼, 로켓이 발사되기 위해 연료를 태우는 것처럼, 그렇게 사업을 정비해야 했다.
더 벌 수 없다면, 줄여야 했다.
'사업비에서 무엇을 줄일 수 있을까?' 라고 생각을 했고, 마케팅비를 줄여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유료광고를 OFF시키고, 내 손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쁘지 않을 때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정부지원사업을 하고 싶었다.
교육을 들어 본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컨설팅을 받은 적도 없다. 그냥 무작정 작성을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히 건축설계사무실 다닐때 보고서와 도판작업을 했기에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은 자신이 있었다. 뭐라도 경험한 것은 쓸모가 있다는 것을 이때 깨달은 것 같다.
그렇게 작성한 첫번째 지원사업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포기를 모르는 성격이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나아가려는 사업의 방향과도 맞았고, 소상공인 교육갔을 때 알고 있었던 지원사업에 도전을 했다.
'상생협력 프랜차이즈 지원사업'을 도전했고, 1차 합격으로 프레젠테이션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원고까지 써서 외우고, 또 연습하고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을까, 그렇게 발표장에 갔을 때 외운대로 정말 열심히 발표했다. 그리고 질의 응답시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었다.
'몇개소를 운영하실 계획이신가요?'
이 질문이 불합격을 만든 질문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 대답은 지역마다 1개소씩 10개소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서울 1개소, 경기 1개소, 인천 1개소... 지금 생각해도 정말 몰랐던 것 같다. 나의 대답 후 돌아왔던 대답은 '10개소 오픈하면 사업성이 없어서 힘들지 않을까요?' 였다. 상생협력이라 나는 지역마다 1개소씩 상생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나중에 밋업행사에서 투자자들을 만나 자문을 받아보니 그때의 나는 정말 어린 사업가 였다. 더 많은 개소를 오픈하여 더 많은 사람들과 사업을 공유하고 상생을 하여야 했다. 그게 진정한 상생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렇게 불합격이 되고, 가을즈음 문자한통을 받았다.
추경이 나와 상생협력 프랜차이즈 지원사업이 한번 더 공고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때의 실패원인을 알았기에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2차 프레젠테이션때 받았던 질문들을 토대로 사업계획서를 보완했다. 이번에는 왠지 예감이 좋았다. 6개월전의 사업계획서를 쓰던 나와 추경지원사업을 쓸때의 나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1차 합격을 하고 2차 프레젠테이션을 하게되었다. 예상질문을 뽑아서 프레젠테이션에 표현을 했다. 그리고 심사위원분들의 질문에 당당하고 자신있게 답 할 수 있었다. 사업모델을 이제는 확실히 몸에 익혔고, 지원사업이 합격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렇게 사업을 진행 할 것이기 때문에 불합격되면 다음에 또 지원하면 된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지원사업에 합격을 하게 되었고, 프랜차이즈 법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준 선물은 무엇일까?
어떤 상황이 발생되더라도, 굴복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용기
지금의 상황에서 냉정하게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생각 할 수 있는 판단력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다라는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