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정말 할 말이 없네요…
내가 같이 일하자고 데려왔는데
회사가 힘들어져서 이렇게 내보내야 한다니…(한숨)
2022년 인터넷 기사에 나올 법한 일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이야. 왕복 3시간의 거리도 막지 못할 열정으로 제대로 일 좀 해보겠다고 다짐한 마음에 불길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나는 권고사직을 당했다.
나에게 먼저 같이 일하자고 손 내밀었던 대표님은 위와 같이 사과 멘트와 함께 고개를 들지 못하셨다.
‘암요. 대표님께서 조금이라도 양심이란 걸 갖고 계신다면 그런 태도가 맞으시지요. 저한테 죄송해하셔야죠!’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알게 모르게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슬쩍 비웃는 게 전부였다.
징크스가 있는 걸까?
내가 조금 괜찮다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느껴지는 곳이면 항상 위기가 찾아왔다.
방송 예능 막내 작가 시절, 작가 언니들도 모두 착하고 프로그램도 아이돌 프로그램이라 행복했었는데 하루아침에 PD가 작가를 모두 교체하겠다며 작가팀을 잘랐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해고라는 걸 당해봤다.
방송작가 하다 보면 이런 일은 빈번히 발생하는 일이라는데 그 빈번히 일어나는 일을 왜 내가 당해야 하냐며 집에서 우울감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귤을 까먹으며 나를 위로했었다. 차가운 사회생활에서의 첫 해고를 달래줄 수 있는 건 뜨끈한 전기장판뿐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겠지, 희망을 가지고 2년 후 다시 들어간 아이돌 프로그램. 이번엔 정말 작가 언니들이 너무 좋아서 막내였지만 제일 행복했다. 이런 언니들이라면 평생 이 한 몸 언니들을 위해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근데 출근하고 세 달 뒤,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다시 한번 사람들은 ‘이건 진짜 자주 일어나는 일이야’라고 위로했고, 그 자주가 왜 나에게만 더 자주 일어나는 건지 분노했다. 이번엔 마지막 회식 때 들고 온 교촌치킨을 뜯으며 속을 달랬다. 아마 이때 원영적 사고가 있었다면 “이제 미뤘던 친구들하고의 만남 할 수 있으니까 럭키비키잖아”라고 생각했겠지만 저 당시엔 이런 긍정적인 사고 따위는 없었다.
그저 매달 정기적으로 빠져나가는 것들을 어떻게 내야 하나 그 고민만 가득 안은 채 한숨만 푹푹 쉬며 잠들었다 깼다 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한 순간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일 따위는 다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프리랜서는 워낙 불안정한 직업이니 그럴 수 있다 백번 천 번 나를 위로하며 넘어갈 수 있었다.
프리랜서는 역시 위태로워 생각하며 정규직에 입사했는데 회사가 힘들어져서 권고사직을 해야 한단다. 뭔 팔자가 이렇게 떠돌아야만 하는지 이것도 경험이라며, 나중에 글로 쓸 소재 생긴 거라 생각하면 얼마나 좋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그땐 너무나 미웠다.
근데 지금 와서야 생각해 보니, 평온하지 않았던 20대를 보냈기에 20대의 언 해피 청춘시대를 기록할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 묻는다면 절대. 네버.
아직도 링크드인을 보거나, 사람들의 이직을 도와주거나, 직장인 브이로그 유튜브 영상을 보다 보면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대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늘이 무너진 거 같겠지만, 생각보다 하루하루 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다 보면 희망은 분명히 존재함을 잊지 않길 바란다.
나 역시 그땐 희망을 잃고 우울이란 감정에 빠졌었지만 그 시간은 아주 짧았다. 생각보다 주변엔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참 많다는 걸 기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