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나는 못 하겠어.
난 프리랜서가 적성에 맞아.
그래서 예전에 했다가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관뒀던
헤드헌터를 다시 해보려고!
나도 연봉 1억 헤드헌터가 될 거야!
꿈은 야무졌고, 나는 연봉 2000만 원도 못한 젊은 헤드헌터가 되었다.
당차게 사직서를 작성하고 회사에 뛰쳐나왔는데 "앞으로 뭐 먹고살지?" 걱정이 앞섰다. 모르겠다. 일단 하루는 늦잠, 하루는 청소, 하루는 책만 읽어보자!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엔 "뭐 먹고살지?"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머리에 빛이 싹 - 스쳐 지나가듯 한 가지 직업이 떠올랐다. 몇 년 전, 한 번 시도해 봤다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관뒀던 헤드헌터! 당시 연봉 1억을 찍을 정도로 잘했던 젊은 헤드헌터 분들을 봐왔던 나는 그 기억 저편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롤모델 삼아 헤드헌터 세상에 퐁-당 빠져들었다.
다행히 나를 받아줄 서치펌은 금방 구할 수 있었다. 우연히 과거 서치펌에 다닐 때 같이 일했던 상무님을 지하철 신논현역 우동집에서 만났고, 상무님이 현재는 따로 독립해 나와 서치펌을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스르르르~ 상무님에게 연락해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다.
첫 출근! 이제 떳떳하고 당당한 커리어우먼!
능력 있는 헤드헌터로 거듭날 일만 남았어!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주문을 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금방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결코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내가 헤드헌터가 되자마자 채용 시장은 살얼음판을 걷기 시작했고 스타트업들은 줄줄이 권고사직, 희망퇴직 등을 외치며 사람들을 회사 밖으로 내쫓아내고 있었다.
나온 사람들은 많은데 채용하는 회사는 줄어들었다. 실력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도 우리 서치펌엔 그들이 들어갈 고객사는 없었다.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분명 면접 때 포지션이 많다고 들었는데...! 개발자 찾을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고 했는데...!
절벽에 끝에 서있는 순간에도 기회는 온다 했던가. 다행히 상무님은 광고대행사 고객사를 하나 가져왔고, 나는 온 에너지를 다 쏟아 후보자를 서칭하고 컨택해 한 달 만에 첫 석세스를 이뤄냈다. 정말 우연이었다. 근데 왜 내 어깨는 눈치도 없이 으쓱으쓱 거리는 것인가! 나대지 마라 어깨야.
어쩔 수 없이 입꼬리는 씰룩 씰룩 올라갔다. 그저 행복했다. 나 정말 능력 있는 것 같았고, 역시 난 뭐든지 잘한다는 자만심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뒤 나는 또 석세스를 이뤄냈다. 정말이지 세상을 살아가는 게 이리도 달콤한 것이었나. 매번 죽고 싶고 그만 살고 싶었던 이번 생이 처음으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너무 자만했던 걸까? 세상이 사악한 것일까? 내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던 걸까?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행복은 짧고 슬픔은 길었다. 그 후로 서류 탈락의 고배를 여러 잔 마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멘탈은 무너져 내렸다. 원래도 약한 멘탈이 정신력이 유리잔 깨지듯 산산조각 나는 기분. 매일이 아픈데 사정 봐주지 않는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
매달 월세를 내야 하는 날이 다가오면 심장이 쿵쾅거려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봉 1억을 꿈꿨지만 2,000만 원 벌기도 힘들었다. 매달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매일 줄줄이 빠져나가는 돈을 보면서도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어제와 똑같이 사람을 찾고 설득하고 추천하는 것밖에.
열심히 일해도 시급은 0원. 월급도 0원. 어디 가서 돈 어떻게 버냐는 말에 "성과가 없으면 0원이야."라고 말하기 너무 창피할 때도 많았다. 돈이 없어 약속을 못 나갈 거 같다고 말하기 너무 쪽팔려 괜히 바쁘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지금도 직장인들의 SNS를 보면 성공한 헤드헌터들의 이야기가 떠돈다. 얼마를 벌었다는 얘기, 이런 고객사를 갖고 있다는 얘기. 보다 보면 시기와 질투가 툭툭 튀어나오고, 점점 그 감정들은 우울함으로 나를 뒤덮었다. 매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매일 울었다. 불안해서 울고, 멘탈이 무너져서 울고, 내가 너무 못나보여서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쉬운 일은 우는 것. 홀로 감정을 표출하는 일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좀 괜찮냐고? 물어보신다면 이번 달 월세도 걱정해야 할 만큼 여전히 힘든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중간에 투잡도 뛰었다가 살인적인 일정에 관뒀는데 6개월 만에 다시 투잡을 알아보고 있다.
아침에 '새 응원댓글이 달렸습니다'라는 처음 받아보는 브런치 알림에 눈을 의심했다. 누군가 내 글에 만 원과 함께 응원 댓글을 달아줬다. 출근 전이라 펑펑 눈물을 쏟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만 원에도 감사하다며 연신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길거리에 앉아 있는 노숙자의 마음이 이런 마음일까? 왠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나는 몇 달째 수입 0원인 슬픈 젊은 헤드헌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