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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Dec 12. 2023

학종이시절



나의 유년시절은 거의 부산의 재송동에서 80% 이루어졌다. 그곳에는 수많은 만화들과 시장 냄새 그리고 티코에 엄지 손가락을 올리던 작은 우리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 가도 여전히 존재할 것만 같은 그 시간들이 말이다. 드래곤볼과 뽑기 게임, 문방구 앞 작은 게임 기계들이 전부였던 우리들의 작은 영웅기쯤 될 것 같은 따위의 순간들.


어린애를 벗어나 내가 6살이 되던 해, 엄마와 아빠는 부산으로 이사와 ‘W**갈비’라는 갈빗집을 열었다. 옆 집에는 이미 정육점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둘째 이모네가 있었다. 우린 이모가 썰어 놓은 고기를 사 와 그걸 구워 팔았다. 공장처럼 어떤 시스템 같기도 했고, 가족들과 함께 자급자족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저녁은 두 식구가 마주 보고 앉아 식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꽤 대식구였는데 (엄마, 아빠, 이모, 이모부, 사촌동생 3명, 친동생 1명) 고기를 주 업으로 하다 보니 고기를 많이, 자주 먹었다. 먹을 게 항상 풍족했던 걸 보니 지금처럼 그때도 고기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었던 것 같다. 장사는 꽤나 잘 됐다. 이모 쪽이 좀 더 잘 나갔다.


나는 그전까지는 풀을 주식으로 해서 그런지 처음에 고기식단이 낯설었다. 이미 고기에 길들여진 사촌동생은 비계만 집어 먹으며 몇 개 빠진 이를 보이며 히- 웃었다. 그 모습이 예쁘고 귀엽기도 하고, 나도 한번 먹어볼까 구미가 당기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없어서 못 먹지만, 어찌 됐든 그땐 세상이든 먹는 거든 굉장히 경험이 부족한 6살 꼬맹이였을 뿐이다.


그 시장 골목에서 나는 많은 걸 경험했다. 사람과 싸움과 자동차 그리고 굴러가는 돈들. 배우지 않아도 될 것들도 함께 배워나갔다. 언제나 내 옆에는 나를 따르는 사촌 동생들과 동생이 있었다. 무서울 건 없었다.


가게가 번창하던 중, 넷째 이모가 합세했다. 긴 생머리에 귀여운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넷째 이모는 인기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꽃 같은 때였을 것 같다. 지금도 예쁘지만. 이모는 어느 날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학종이를 사 와 학을 계속 접기 시작했다. 낮과 저녁에는 둘째 이모와 우리 가게를 도와주고 밤에는 티브이를 보며, 간식을 먹으며 학을 접어나갔다. 그러다 우리도 합세했다. 우리도 이모처럼 티브이를 보며, 간식을 먹으며 학을 접어 나갔다. 왜 접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눈이 오지 않고 비가 내리는 부산의 겨울에 우리 넷은 따뜻하고 작은 이모 방에서 옹기종기 귤을 까먹으며 학을 접었다. 그 학이 소원을 이뤄 준다고 했던 것도 같다. 우린 아무것도 모른 채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며 무한한 학을 탄생시켰다. 나의 부산에서의 유년 시절 속 학 접기는 딸의 인생 중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해 나갔다. 옅은 소원을 이뤄준다는 희망을 믿으며 참 작은 허리를 구부려 열심히도 접었다. 그리고 드디어 만들어진 천마리의 학이 사라져 있던 날, 천 개의 학을 받은 그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졌을지 궁금해하는 밤을 보냈다. 그 소원이 무엇일까 상상하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 두 가게 앞 평상에 나와 동생, 사촌 동생들은 모여 앉아 일기를 썼던 순간들도 학 접기 만큼이나 우리들의 짧은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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