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그때부터였다
일전에 D와 회전초밥집에 갔다. 그냥 일식집도 아니고 초밥집도 아닌 회. 전. 초밥집으로 간 이유는 둘 다 배가 너무 고파 많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곳은 그냥 회전초밥집도 아닌 무한회전초밥집이었다.
주말이라 그곳에는 이미 10명 넘게 줄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안 쪽에서 이미 먹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 지침, 가끔의 분노가 서려있었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배고픈 상태로 그곳에 거의 달려(그렇다.) 왔기 때문에 망연자실한 상태로 일단은 가장 뒤에 섰다. 그리고 심각한 토론을 시작했다. 이미 주말이라 어디든 많을 거다. 이곳은 한 시간의 제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빨리 빠질 거다. 하다가 우리가 딱 서 있는 곳에 쓰여 있는 ‘여기서부터 1시간’을 읽게 되자, 어느덧 옆에 있는 떡볶이 집으로 갈까로 이야기가 바뀌어있었다. 그때, 앞에 줄 서 있던 두 명이 들어가고, 두 명이 또 들어가고 뒤이어, 세 명이 들어가고, 네 명이 우르르 들어갔다. 그래서 30분도 안돼 우리 앞에는 2팀만 남아 있었다. 희망이 보였다. 우리도 저곳에 앉아 여유롭게 초밥을 한 접시 꺼내는 뒤태를 선보일 수 있다는.
곧 우리는 호명을 받고 가장 안 쪽 자리 (전에 D와 왔을 때는 줄 바로 앞자리를 안내받아 따갑다 못해 아픈 뒤통수를 느끼면서 열심히 먹어야 했다. 1시간 제한이 있기에 열심히 먹을 수밖에 없다.)에 안내받았다. 우리 둘은 자리 또한 너무나 맘에 들어 행복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큰 도넛 형태의 컨테이너 벨트를 중심으로 안 쪽에는 요리사분들이 우리에게 줄 일용할 초밥을 만들고, 바깥쪽에서는 전투적이게 눈과 손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초밥을 컨테이너 벨트에서 꺼내와 먹는다. 그 거대한 기계는 끊임없이 같은 속도로 돌며 회전초밥을 실어주며 요리사분들과 우리를 연결시켜주고 있었다. 먹는다는 단순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회전초밥집에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홀린 듯이 접시를 꺼내와 먹었고, 지난번 접시 수를 가뿐히 갱신했다. 푸. 파를 준비하는 건 아니었지만 말로 할 수 없는 뿌듯함은 무엇이었을까.
우린 더 이상 무언가를 넣으면 터질 것 같은 배와 함께 끊임없이 돌아가는 벨트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행복은 그때부터였다.
먹을 수는 없지만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부지런히 지나가는 자태를 보는 게 그렇게 만족스럽고 호화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손만 한 번 뻗으면 저 맛있는 초밥, 가끔 있는 과일, 후식으로 주는 케이크를 우리 앞의 식탁에 가져올 수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배고파 가져올 수는 없지만 이렇게 보고 있는 것이었다.
40분 동안 전투적인 식사를 마치고 10분 정도 그렇게 멍 때리며 음식들을 보다가 우린 나왔다. 그리고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너무나 배불러 터져 버릴 것 같은 포만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