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와 피실자 모두 나라의 장래를 걱정했다.
민영환은 고종의 총애를 받는 신하였다. 그가 외숙 서상욱에게 군수 자리를 하나 달라고 여러 번 고종에게 아뢰었다. 고종은 “너의 외숙이 아직까지 고을살이 하나 하지 못했단 말이냐?”면서 곧 벼슬을 내릴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벼슬이 내려오지 않자, 민영환이 다시 임금에게 청했다. 임금은 광양군수 자리를 서상욱에게 하사했다. 민영환이 집에 돌아와 “오늘 임금이 외숙에게 군수 자리를 허락하셨으니, 천은이 감격스럽다”라고 했다. 그의 어머니가 실소하면서 “네가 이처럼 어리석고도 척리(戚里)란 말이냐? 임금이 한 자리도 은택으로 제수한 적이 있더냐? 어찌하여 너에게만 특별히 은덕이 미친단 말이냐? 내가 이미 5만 냥을 바쳤단다”라고 말했다. 매천 황현은 “관찰사 자리는 10만 냥~20만 냥이었고, 일등 수령자리는 적어도 5만 냥 이하를 내려가지 않았다.”면서 “부임하면 빚을 갚을 도리가 없어 다투어 공전(公錢)을 낚아내어 상환하였다”라고 했다. [57](이상 위키 백과)"
20세기의 세상은 약소국가가 살아남을 수 없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였다. 더구나 조선은 대국 청나라에 의존하여 나라의 국방을 유지해오던 나라였는 데 청나라가 서양 강대국에게 꼼작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이러한 시기에 왕과 왕비는 원자의 만수무강을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제사를 지내고 궁중에서 굿하는 데 국고를 탕진했다. 밤에는 거의 매일 잔치를 벌렸다. 정상적인 국가 예산으로 충당할 수가 없어서 관직을 팔아서 국가 예산 외에 자신이 쓸 수 있는 돈을 모았다. 여기에 민 씨 척족의 가렴주구는 안동 김 씨 시절보다 더욱 심 했다. 1800년 정조가 사망하고 대한제국이 1910년에 일본에게 합병될 때까지는 110년이다. 이 동안에 백성들은 기아선상에서 허덕였다.
분명히 민비와 고종은 탐관오리 보다 더 나쁜 왕과 왕비였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뉘앙스는 억울하고 불쌍한
왕과 왕비이다. 왕비를 명성황후라고 하지 않고 민비라고 해도 질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는 아름답고 현명한 왕비였는 데 악독한 일본 놈들이 죽였다고 생각한다.
일본과 협조해서 무슨 일을 한 사람들은 전부 친일파로 몰아 부처서 모두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끔 서술되어 있는 역사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사람들과 같이 일을 획책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한국보다 일본을 더 위한다고 단정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날 남북 협상을 하고 북과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고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민비와 민 씨 척족은 그 시대의 부패의 정점에 있던 무리들이었다. 개화파들은 나라를 위해서 일본의 명치유신과 같은 개혁을 해야 조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개혁의 걸림돌인 왕과 왕비의 권한을 제한하고 개혁을 단행하려고 일본의 도움을 받아서 갑신정변을 일으 켰다. 청나라의 방해로 불행히도 실패 했다. 고종은 그들의 보스였던 김옥균을 홍종우를 시켜서 살해했다. 프랑스 유학까지 한 홍종우는 개화에 대한 열의가 김옥균 못지않게 많았다. 김옥균이 암살자 홍종우를 믿게 된 것도 서로 말이 통했기 때문이었다.
우범선은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던 무렵 신식군대 교관이었다. 중인 출신이었지만 일본에서 교육을 받아서 개화사상을 충분히 이해했었을 것이다. 물론 훈련대 해산이라는 개인적인 이해타산이 깔려 있었지만 민비가 나라를 위해서 있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암살에 실패한 지운영도 중인 출신으로 개화사상을 열심히 배우던 인물이었다. 후에 암살에 성공 한 고영근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적극 참여하여 입헌군주제를 실시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말하자면 자객과 피살자 모두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객들은 군주에 대한 충성이라는 보수적인 이념에 충실 한 사람들이었고 피살자들은 보수적인 이념을 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려던 사람들이었다. 전통을 지키려는 보수와 새로운 제도를 만들려는 진보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쁜 사람은 자객도 피살자도 아니다. 바로 고종과 명성황후가 이들의 기구한 운명의 책임자들이다. 홍종우, 지운영, 고영근, 김옥균, 우범선 모두 훌륭한 인재들이었다. 그들의 안타까운 인생은 시대의 산물이다. 부디 흑백논리로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