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딘이 May 07. 2024

메디힐 사태로 느낀 팬심의 무서움

아이돌을 내세운 마케팅을 할 때 팬심을 잘 헤아려야 하는 이유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 4월에 메디힐이라는 팩으로 유명한 화장품 업체에서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와 광고 계약을 맺었다. 플레이브(Plave) 데뷔 이후 첫 화장품 광고 모델 계약이었다. 팬들은 모두 들떴다. 그동안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악플을 받거나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메디힐 광고 계약이 팬들에게는 새로운 의미로도 다가왔을거다. 유명 화장품 회사인 메디힐이 우리 멤버들을 광고 모델로 선택했으니까! 플레이브가 진짜 대세가 됐다는 걸 대중적으로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것만 같아 멤버들이 대견했을 거고, 이 흥행에 일조한 팬들 스스로도 어느 정도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메디힐 공식 X에 올라왔던 플레이브와 콜라보 스포일러


플레이브의 첫 광고, 팬들은 얼마든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었다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인 플레이브를 선정한 메디힐의 선택은 정말 탁월했다. 지난 4월에 있었던 플레이브의 첫 콘서트 예매층을 보면 구매력을 갖고 있는 2030 여성들에 대거 몰려있었다. 메디힐의 주요 타깃층과도 완벽하게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나만 보더라도 플레이브를 좋아하면서, 메디힐의 패드와 팩을 자주 구매하던 충성 고객이었으니까 말이다.


메디힐의 이벤트 진행 방식은 이랬다. 트위터를 통해 메디힐의 새로운 광고 모델 스포일러와 신규 지점 오픈 소식을 알렸다. 신규 지점이 오픈되는 곳은 바로 플레이브의 세계관 속에 있는 아스테룸. 여기에 힌트로 but your idol(=버추얼아이돌)까지 함께 명시해 플레이브 팬들을 들뜨게 만들었다. 이벤트 미션은 이거였다. 28일(일)에서 29일(월)로 넘어가는 자정부터 선착순으로 올리브영에서 메디힐 이벤트 제품을 포함해 총 3만원 어치 이상을 구매하면, 플레이브 멤버들의 포토카드 랜덤 1종과 스티커를 증정하는 이벤트였다.


이벤트 공지 이후 팬들의 불만이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벤트가 시작되자 팬들의 불만이 조금씩 퍼져나왔다. 굿즈 구성이 너무 부실하다는 것. 이전에 타 아이돌과 콜라보 했을 때 증정했던 굿즈들과 비교해서 특히 그랬다. 이번 이벤트에서는 스티커와 포토카드 1종만 증정하지만, 이전에 했던 아이돌 이벤트에서는 여기에 헤어밴드나 증명사진까지 함께 증정하기도 했다고. 타 화장품 회사에서는 아예 해당 아이돌의 사진이 붙어있는 제품을 따로 출시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메디힐의 광고를 팬들이 환영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플레이브가 대세라는 걸 또 한번 알게 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메디힐에서 내는 플레이브와의 콜라보 광고에서는 플레이브 사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플레이브'라는 텍스트만 들어가 있었다. 광고 모델이 됐으면 이벤트 공지는 물론이고, 멤버들의 이미지도 대문짝만하게 나가야 하는 아니냐며 불만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버추얼 아이돌이라서 부끄럽냐! 차별하냐! 라는 강성(?) 반응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굿즈 이벤트를 참여조차 해본 적 없는 초짜 팬인 나는 이런 불만들이 있구나 정도로만 여겼다. 플레이브 기획사 블래스트도 처음부터 엔터 회사로 출발한 곳이 아니라 첫 모델 계약에 미흡한 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넣지 못하게 된 것도, 촉박하게 이벤트가 진행됐기 때문일 수도 있고, 블래스트와 손발이 잘 안 맞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업에 종사하진 않지만, 같은 직장인으로서 흐린 눈으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밤 12시부터 시작된 제품 구매 이벤트, 단 15초만에 매진되다


유야무야 그렇게 대망의 이벤트 당일. 월요일 아침 출근이나 등교를 앞두고 늦은 밤 12시에 들어간 팬들의 불만은 결국 극에 달해 터지고 말았다. 일단 메디힐에서 판매하는 이벤트 제품들의 가격이 0시를 기점으로 가격이 갑자기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벤트 가격으로 책정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오른 가격을 보니 속은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나는 결제할 때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선착순으로 굿즈가 증정된다는 말을 듣고, 미리부터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제품 가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새도 없이 바로 결제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12시 정각에 앱에 접속했는데, 앱이 순식간에 다운돼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12시까지 기다린 게 다 물거품이 되게 할 순 없었다. 어차피 팩을 구매해야하는데 굿즈까지 주는 이 혜자스러운 행사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초조해하며 제품 결제를 눌렀지만... 대기번호는 8천번대였다. (플레이브 팬들의 화력을 다시금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 대단한 사람들.)


운 좋게 성공한 포카 이벤트. 나한텐 예준이가 왔다!

그래도 운이 좋게 제품을 구매하고, 포토카드까지 받을 수 있었다. 결제를 끝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12시 8분. 커뮤니티에 들어가보니 물량 부족으로 인해 12시에 접속했음에도 구매에 실패한 사람들의 후기가 이어졌다. 서버가 터지는 바람에 굿즈를 제대로 구매할 수조차 없었다는 후기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며칠 뒤 중고거래 앱에서 메디힐 플레이브 포토카드는 프리미엄이 붙어 8만원까지 올랐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플레이브가 첫 콘서트를 열었을 때 3천석을 열었는데 3만명이 몰려서 많은 팬들이 온콘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처럼, 메디힐이나 올리브영 측에서도 플레이브 팬들의 화력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걸까. (카더라로 이날 올리브영은 마스크팩 첫 발주를 1천개 넣어두었는데, 이게 15초만에 끝나버렸다고 한다.) 안그래도 이벤트 진행 방식에도 불만이 많았던 팬들은 앞으로는 메디힐을 불매하겠다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팬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메디힐 측은 빠르게 사과문을 내놨다.


전무후무한 이력을 기록한 이벤트. 결국 사과문까지 올라오다


메디힐은 2차 앵콜 이벤트 진행 소식과 함께 "플리 분들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하며 이벤트를 준비했으나 예상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메디힐이 전개해온 마케팅 활동 중 전무후무한 이력을 기록하며 조기 소진되었습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역시나 플레이브 팬들의 화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메디힐도 예상치 못했던 폭주였던 것 같다. 메디힐은 앵콜 이벤트에 앞서 구매조건에 대한 혼선을 정정하고, 굿즈 증정 방식을 바꾸겠다고 했다. 랜덤으로 1종만 제공하려고 했던 포토카드를 멤버 전원 5종을 모두 증정하는 것으로 바꿨다. 나처럼 이미 1종만 랜덤으로 증정받았던 팬들에게도 모두 무료로 5종을 배송한다고도 했다. 1개만 받아도 좋았던 나로서는 5종을 모두 준다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메디힐은 또 '광고 모델인데 왜 플레이브의 얼굴이 보이질 않느냐'는 불만에 대해서 아주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메디힐공식 사이트에 뮤즈 칸을 만들어 플레이브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이후 진행하는 SNS 이벤트 공지나 올리브영 제품 페이지에도 플레이브 이미지를 넣기 시작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남은 강력한 방이 있었다. 메디힐 사옥에 엄청나게 커다란 플레이브 현수막을 걸어둔 것이다. 현수막 실물을 확인한 팬들은 "메디힐, 이제 제대로 하네"라고 반응했다. 불매하겠다던 팬들조차도 대체적으로 '이제 할만큼 했으니 넘어가자'는 식으로 바꼈다. 이벤트에 크게 불만이 없었던 나는 메디힐 사옥 거대한 현수막 이벤트를 보고는 앞으로도 메디힐의 충성 고객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메디힐 사옥에 걸려있는 플레이브의 거대 현수막


아이돌을 활용한 마케팅을 할 때는 팬심을 잘 헤아려야 한다


일련의 사태를 쭉 지켜보면서 팬심을 활용한 마케팅을 할 때는 굉장히 세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들은 언제든 자신의 아이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된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빠르게 돌아서 적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돌을 등에 업고 진행하는 마케팅 이벤트는 그래서 많은 고객들은 한 번에 끌고 올 수 있지만, 그만큼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 


만약 메디힐이 이번 단발성 이벤트를 끝으로 어영부영 사과하고 종료했다면, 많은 고객을 잃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후에 그들이 보여준 신속한 후속 조치가 팬들의 마음을 다행히 돌리게 만든 것 같다. 사옥에 올라온 거대한 현수막이나 올리브영에 올라온 플레이브 사진이나 굿즈 5종 재증정까지, 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확인해서 발빠르게 반영하면서 팬들의 마음을 진화했다. 


개인적으로는 플레이브의 화력에 새삼 놀라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비단 메디힐 뿐만이 아니라 최근에 밤비가 먹는다고 1초 등장했던 쫀드기 제품이 쿠팡에서 일시적으로 매진을 기록하거나, 은호가 맛집이라고 소개했던 바지락 칼국수 집이 이젠 줄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맛집이 돼 버렸다거나 하는 일화가 종종 들릴 때면 이제 플레이브는 이제 일순간 매진을 기록할 정도의 구매력을 가진 강력한 인플루언서가 됐다는 점이 새삼 느끼진다. 앞으로도 플레이브가 이렇게 든든한 팬덤을 등에 업고 더 많은 광고에 얼굴을 내밀 수 있기를, 나도 열정적인 팬으로서 거기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전 02화 저도 제가 이렇게 빠질 줄 몰랐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