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덕질을 하기에 좋기도 한편으로는 힘들기도 한 시대다
그럼 라이브 방송만 챙기면 되느냐, 거기서 끝이 아니다. 방송이 끝나면 그날 방송에서 있었던 재밌는 순간들이 팬들의 손을 거쳐서 다음날부터 실시간으로 편집돼 올라온다. 멤버들끼리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재밌는데, 거기에 팬심으로 공들여 만든 예능 자막과 효과음, 편집까지 추가되면 라이브 영상 컨텐츠의 재미는 배가 된다. 유튜브의 무시무시한 알고리즘이 이런 영상들을 꾸준히 추천하고, 눌러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데 어떻게 넘길 수가 있는가. 이건 못 본 거라서 재밌고, 이건 봤던 건데 웃겨서 또 보고 싶고 그런데. 그렇게 팬메이드 영상들을 보다 보면 1~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혹자는 '그럼 안 보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바로 내 눈 앞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이 담긴 재미있는 컨텐츠가 있는데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멤버들이 정기적으로 올려주는 커버곡 영상도 있다. 플레이브는 전 멤버가 정기적으로 돌아가면서 다른 가수들의 곡을 커버해 꾸준히 올려준다. 심지어 그 곡들이 모두 수준급이라 들을 맛이 난다. 어쩜 그렇게 자기들에게 찰떡 같은 곡들만 찾아서 커버곡을 올려주는지. 기존에 나왔던 앨범 뿐만 아니라 유튜브에 따로 올라온 커버곡, 라이브 방송에서 불렀던 커버곡까지 모두 합치면 족히 50개는 넘는다.
'버블'도 빼놓을 수 없다. 버블은 매달 구독료를 내고 멤버들과 다대일로 소통할 수 있는 앱이다. 카톡하고 비슷한데, 내가 특정 멤버의 버블을 구독하면 그 멤버가 팬들에게 보내는 시시콜콜한 메시지들을 받아볼 수 있다. 나도 멤버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그동안 '버블'의 존재는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만 있었는데 이런 시스템인 줄 몰랐다. 커뮤니티에서 하도 멤버들 버블 이야기를 하길래,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최애 멤버인 밤비의 버블 1인권을 구독했다. (실로 오랜만에 아이돌에게 돈을 쓴 사건이다. 자타공인 짠순이인 내가 얼마나 플레이브에 진심인 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버블을 구독하자마자 다들 이걸 왜 하는 지 너무나 알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과 유사 연애를 하는 느낌이 바로 들었다. 처음 켜자마자 최애 멤버에게 메시지를 보내라고 알림이 떴다. 뭐라고 보내지? 구독하는 팬이 수만명은 될 것 같은데, 그래서 내 메시지를 꼼꼼히 읽을 확률이 낮다는 걸 알면서도 메시지를 보내려니 굉장히 설렜다. 마치 오랜만에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것처럼.
얼마 전에는 플레이브의 앨범도 모두 샀다. CD 플레이어가 없어 CD는 못 듣지만, 그래도 멤버들 사진이 나와있으니까. 앨범을 사면 안에 포토카드라는 것이 들어있는데, 이건 멤버별 사진이 담겨있는 카드 사이즈의 굿즈다. 앨범마다 멤버들의 사진이 1~2명씩 랜덤으로 들어가 있다. 어떤 팬들은 모든 멤버들의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서(이걸 드래곤볼을 모은다, 그러니까 '드볼 한다'고도 표현한다) 앨범을 여러 장 사는 일도 불사한다고 하는데, 나는 차마 그렇게까지는 못하겠어서 포기했다. 최애 멤버가 있긴 하지만, 다른 멤버들이 나와도 그건 그 나름대로 좋기도 하고, 기념할만한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또 포토카드 만큼은 엔터 산업의 도 넘은 상술이라는 생각이고, 환경적으로도 죄책감이 느껴지는 행동이라 쉽사리 동참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오픈 채팅방을 통해 나는 플레이브가 메디힐과 콜라보 이벤트를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메디힐 팩을 사면 굿즈를 주는 이벤트인데, 안그래도 메디힐 제품을 애용하고 있던 나로서는 안 살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선착순 증정이었고 이벤트 오픈 시간은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0시였다. 그걸 몰랐던 나는 그냥 월요일에 널널하게 들어가서 결제하면 되겠지 싶었던 거다. 오픈 채팅방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뻘짓을 할 뻔했다. 밤 10시만 되면 취침에 들어가는 30대에게 너무 가혹한 이벤트였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자정까지 기다리다 들어가서 결제를 눌렀는데 대기 순번이 8천번째였다. 이게 실화냐.
그렇게 메디힐 이벤트까지 참여하고나자 내 일상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플레이브를 알기 전의 나는 출근하기 3시간 전에 일어나서 청소도 하고, 운동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는 소위 '갓생'의 삶을 살려고 노력해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일상이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물론 예전에 항상 일어나던 습관이 있어서 일찍 눈은 뜨지만 출근 준비 시간 직전에 직전까지 플레이브 영상을 보는 시간으로 쓴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거나 영어 단어를 외우는 대신에 플레이브의 영상을 본다. 물론 그렇게 시간을 쏟은 덕분에 이제 커뮤니티에서 팬들이 하는 이야기나 멤버들의 관계성과 캐릭터, 밈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얻은 게 더 많았던 14일이라고 기억하고 싶다. 하지만 원래 있던 일상도 잘 살아내야 플레이브를 오랫동안 꾸준히 좋아할 수 있는 법.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어야 또 플레이브 굿즈도 사고, 이벤트도 참여하고, 콘서트도 갈 수 있으니까. 앞으로는 스스로 조절하는 팬의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