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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Dec 30. 2020

이유 없는 불안과 기쁨

우울을 두고 온 곳에 남편을 데려갔다 (5)


*2016.10.01. Saturday.

새벽에 차를 타고 빈으로 넘어오면서는 못 다 잔 잠을 잤다. 추운 데서 떨다가 따듯한 차 안으로 들어오니 꽉 쥐고 있던 긴장도 자연스레 풀어지고 잠이 쏟아졌는데,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 2시간여를 달리는 내내 기절한 듯 잠들어있느라 국경을 넘는 장면이라든지 풍경 같은 걸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어제와 같은 긴장으로 벌벌 떨지 않고 마음 편히 빈까지 오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빈 시내에 도착해 운전기사가 승객 각각의 호텔 위치를 확인하려고 말을 거는 바람에 겨우 눈을 떴다. 날씨는 쾌청했고, 밝은 크림색으로 빛나는 건물들이 도시를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목적지를 확인하고 잠시 창밖을 구경하고 있으니 몇 번이고 확인했던 익숙한 건물 외관이 보였다. 기사와 함께 짐을 내리고, 헤어짐의 악수를 나누고 나서 호텔로 들어서면서는 내 마음이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올랐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벨베데레 공원이 살짝 내려다 보이는 공원 바로 근처의 부티크 호텔이었는데, 이 곳에서 하루 종일 공원을 내려다보며 휴식의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다른 호텔로 넘어가 빈을 더 즐길 생각이었다. 굳이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었더라도 여행의 긴장과 불안 속에 컨디션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방이 비어있어 바로 체크인이 가능한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호텔 방에 들어선 나는 기대만큼 멋진 공원 뷰에 잠깐 감탄 뒤, 잠시간의 외출을 위해 밖으로 나섰다. 빈의 3대 카페라 불리는 카페 자허에 가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고, 간단히 장을 봐서 오후 내내 숙소에서 쉴 계획이었다.


날씨가 화창하게 맑아서일까, 거리를 걷기 시작하니 떨어졌던 기운과 기분이 조금 회복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피로하고 긴장이 됐지만 새로운 도시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프라하보다 깨끗하고 넓은 거리도 내가 느끼는 안정감에 한몫을 했다. 밝은 톤의 페인트로 칠해진 건물들, 로맨틱한 장식의 창들. 도시 곳곳에 펼쳐진 공원들. 얼핏 보기에도 넓고 큰 도시였는데 시에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게다가 자허라니. 지금 자허로 가고 있다니! 서울에서도 자허 토르테를 먹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어 가슴이 두근댔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도시의 아름다움에 취해 훨씬 가뿐해진 기분으로 걷다 보니 금방 자허 근처의 시내에 도착했다. 많은 관광객들 사이를 지나 도착한 카페 자허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곳엔 잘 가지 않지만 그래도 자허니까, 그 자허니까 살며시 대열에 합류했다. 사진을 찍고, 날씨를 즐기다 보니 금방 차례가 되어 자리를 안내받았다. 시그니처 메뉴인 자허 토르테와 따뜻한 라떼를 한 잔 주문하고, 뉴가 나오길 기다리며 짤막하게 일기를 썼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겪었던 일들과 일렁이는 내 감정의 파고에 대해서 몇 글자 적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영롱한 케이크가 내 앞에 놓였다. 음식에 별로 욕심이 없는 상태였지만 이것만큼은 달랐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포크를 들고 한 입 떠먹으니, 케이크는 역시 예쁜 모양만큼이나 맛도 좋았다.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그 맛은 어젯밤 고생을 위로해주는 듯했다. 맞아. 고생했어. 그리고 나름 적극적으로 이겨냈지. 난 이걸 먹을 자격이 있어. 감동적인 맛을 즐기며 최대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만, 슬쩍 내다본 창 밖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후다닥 케이크를 먹고, 라떼도 입 안에 털어 넣은 뒤 마트를 향해 길을 나섰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트는 넓고 깔끔했다. 체코화가 아닌 유로로 표기된 가격을 확인하며, 이제 유로를 쓰는 나라로 왔다는 걸 실감했다. 물가가 싸다는 체코와 비교해 봤을 때 대부분의 품목의 가격이 살짝 높은 것 같긴 했지만, 그간 여행했던 다른 유로를 사용하는 나라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것 같기도 했다. 방울토마토를 한 봉지, 프로슈토 한 개, 요거트 몇 개와 맥주, 물 등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방문을 닫고 들어서니 장을 본 비닐봉지를 들고 있던 갑자기 무겁게 느껴져 팔을 추욱, 늘어뜨렸다. 날씨와 자허 토르테 덕에 나아졌던 기분과 컨디션이 다시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쉬고 싶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씻고, 공원을 바라보고 앉아 일기를 썼다. 몇 자 쓰다 보니 맥주가 당겨 얼른 냉장고에서 프로슈토와 맥주를 꺼내와 같은 자리에 앉아 홀짝이기 시작했다. BGM으로는 Mayer Hawthorne의 Cosmic Love를 틀었다. 을이 깊어져야 마땅한 절기였지만 여전히 여름의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공원과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 기분이, 달라지고 있었다.


좋은 방향인 것만은 아니었다. 프라하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좋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오랜만에 우울이나 불안이 아닌 다른 감정이 선명하게 다가왔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아진 것 같아 행복했다. 그런데 어제의 그 일을 겪으면서는, 여행을 하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편함과 당황스러움을 해결해 나가면서는, 그것이 별 일이 아니고 내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며 실제로 최선을 다해, 나름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커다란 불안함에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숙소를 옮기고 오지 않는 셔틀을 기다리며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에 치여 잠시 잊고 있었지만 지금 방 안에 앉아 평화로운 벨베데레 공원을 바라보면서, 나는 알았다. 내 기분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어제의 일들을 해결하며, 그러니까 처음 호텔에 갔을 때의 당황스러움에 그저 주저앉아 울기보단 새 호텔을 예약하고, 직원에게 환불을 요구하며, 또 오지 않는 셔틀버스 회사에 이른 아침이라도 몇 번의 메일을 보내 상황을 알리고 다음 셔틀을 예약하며 나는 이제 이 정도 시련쯤은 혼자서 잘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마구 뛰고 손이 덜덜 떨렸지만 그건 그냥 긴장해서, 추워서라고 생각했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기분은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겪은 일'이라는 추를 달고 깊은 호수 아래로, 더 아래로 자꾸만 침잠했다.


지나왔으니 된 것 아닌가. 이제부터의 여행을 잘 꾸려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정말이지 잘 되질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우울증과 불안 장애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었으니까. 나 스스로도 어젯밤의 일에 얽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지금 그걸 계속 곱씹어 봤자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념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제는 잘 해결되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 같아. 억지로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 난 전혀 괜찮지 않은 것 같아. 어제의 일도 잘 해결한 게 아닌 것 같아. 남들이라면 피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 하루의 불편함쯤은 그냥 견딜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나처럼 대처했더라도 나만큼 떨진 않았을 거야. 나만큼 마음이 불편하진 않았을 거야. 난 아직 유약한 것 같아. 다 낫질 않은 것 같아. 혼자서 여행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어딘가 현실적이지 못한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 상담 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나 자신에게 'Stop!'을 외치고 반려견 보리를 안고 있는 상상을 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더 여행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많이 지친 것 같아.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는 생각은 점점 무거워졌다. 생각을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는 걸 깨닫자 더더욱 실망스러웠다. 여행을 와서 뭐해. 내가 낫질 않았는데. 이걸 견딜만한 마음 상태가 아닌데.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힘들면, 앞으로 남은 그 긴 일정은 어떻게 견뎌. 난 못 해. 못하겠어.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다 보니 불안해, 못하겠어 같은 말로 일기장 한 바닥을 가득 채웠다. 페이지를 넘겨 계속 쓰려다가, 그만두고 겨우 숨을 골랐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과 상비약을 들고 와 입에 털어 넣었다. 술과 약을 함께 먹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불안해. 불안함이 내 마음에 들어차고 있었다.


약을 먹고 나니 그제야 아무렇게나 휘갈긴 글씨들이 얼마나 멀리 나간 생각들인지 느껴졌다. 좋아지는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네. 한숨을 길게 쉬고 일기장을 덮었다. 이건 아닌 거 같아. 혼자서 계속 생각하면 상황을 점점 나쁘게 볼 뿐이야. 지금 내가 할 줄 아는 건, 아쉽게도 그것밖에 없으니까. 나는 휴대폰을 들어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힘들어.' 금방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며 침대로 뛰어들었다. 팔을 올려 눈을 가리고 누워 있으려니, 눈물이 났다. 아, 진짜. 힘들다. 뭐가 힘든지 모르겠는데 힘은 드니까 더 서럽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에 이렇게까지 힘들어 하진 않을 것 같은데, 나만 부족하고 모자라고 한심한 것 같아서 더 속상하다. 찔끔 새어 나오던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을 때쯤에 엄마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고, 나는 휴대폰을 엎어둔 채 전화를 받았다.


'딸. 괜찮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에 덤덤한 척하고 싶었지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엉엉, 소리를 내서 울며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일찍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엄마는 어떡하지, 돌아와, 일찍 돌아와, 어떻게 하지, 괜찮아, 울지 마, 엄마 울어, 하면서 정신없이 나를 달랬다.


휴대폰 건너의 엄마를 붙잡고 한참을 울고 나니 감정의 폭풍이 조금 잦아들었다.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표를 알아보겠다고 말했고, 그제야 엄마는 울었다. 우리 딸 어떡하니, 정말 어떡하니. 이번에는 내가 괜찮다는 말로 엄마를 조금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쉬는 게 맞았다.


돌아가는 비행기 일정을 당기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했다. 이미 숙소를 예약해 둔 빈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프라하에서 이틀 정도 머문 뒤 돌아가는 것이 지금 내 상황에 가장 알맞은 것 같아 그때로 비행기를 당길 수 있냐고 문의를 남겼다. 이게 맞는 건가. 이렇게 포기하고 돌아가는 게 맞는 건가. 막상 문의 글을 올리고 나니 과연 이게 잘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뭐 때문에 그렇게 감정이 격해졌었지. 뭐 때문에 그렇게 서럽게 울었지. 나 왜 힘들었지. 나는 왜 이렇게 뒤죽박죽이지.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가. 내 상태가 지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태인가. 이해할 수 없는 내 모습에 기운 없이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맥주와 약을 함께 먹어서 그런지 졸음이 몰려왔다. 항하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깼지만 술을 마셔서 그런지 컨디션은 더 다운된 것 같았다. 이불 밖으로 고개만 겨우 내밀고 앉아서 노트북을 꺼내 다운로드 온 드라마를 재생했다. '질투의 화신'을 틀어놓고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에 떨어뜨려 놔도 뽈뽈거리고 잘 돌아다녔던 나인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고 다운되지. 좀 힘들어. 친구들에게 속마음을 꺼내 보이면서는 또 눈물이 조금 났다. 나도 네 걱정이 많이 돼, 너무 멀리 있어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으니 더 걱정이야, 오늘 잘 쉬고 나면 내일은 좀 나아질 거야, 많이 힘들면 카페에서 동행이라도 구해보는 건 어때? 누구랑 같이 있으면 좀 나을 거야. 친구들의 위로와 조언에 소리 죽여 조금 울다가 진짜로 카페에 접속해 동행 구하는 글을 클릭했다. 내일 빈 여행 같이 하실 분 구해요, 하는 글에 댓글을 달고 메시지를 보냈다. 다섯 살 차이 나는 언니가 글의 주인이었는데, 이미 연락 온 사람이 하나 있다며 같이 다녀도 괜찮겠냐 묻길래 그러자고 했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날 지까지 정하고 나니 걱정이 됐다. 낯선 사람들이랑 잘 다닐 수 있을까. 성격이나 하고픈 게 잘 맞지 않으면 어쩌지. 그냥 취소할까. 고민했지만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서 취소하는 건 너무 바보 같고 모자란 일인 것 같아서 꾹 참고 다시 잠을 청했다. 내일은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낼 거야.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2019.10.07. Monday.

짧은 여정에 여러 곳을 둘러보려다 보니, 오늘도 이동 일정이 있었다. 빈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 잘츠부르크 성에 올라 잘츠부르크를 한 번 둘러보고 떠나기로 했다. 맑았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 잘츠부르크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든든히 챙겨 입고 산책을 나섰는데도 볕을 찾아볼 수 없는 잘츠부르크 공기에 뼛속까지 시렸다. 차가운 공기에 기분도 얼어붙은 듯 무거워졌지만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던 그제 밤 이후로 도시를 제대로 구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걸어야 했다. 팔짱을 끼고 각자의 주머니에 손을 쏙 집어넣고 도시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상점도 없고,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그런대로 분위기가 있었다. 춥다, 그래도 분위기 있다, 확실히 독일이 더 깔끔한 것 같아, 같은 대화를 나누며 한참을 걸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흐린 잘츠부르크 시내를 한 시간 정도 산책했지만, 아직도 케이블 카를 타려면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어제저녁을 거하게 먹어 배도 그다지 고프지 않았다. 고민하다 시간도 때우고 아침도 대신할 겸, 일찍부터 문을 여는 모차르트 카페에 가서 음료를 두 잔 시켰다. 듯한 음료를 마시니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우리 맨날 너무 일찍 일어나는 것 같아. 아침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난 그냥 걸어 다니기만 해도 좋은데. 방에서 늘어지게 자는 건 서울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그건 그래. 언제 또 여기 이렇게 걸어보겠어.'

'모르지, 여보가 또 3년 만에 동유럽에 올지.'

'그럼 진짜 좋겠다.'


그땐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럼 이렇게 멀리는 못 오지.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여행을 떠나오기 얼마 전, 우리는 난임 판정을 받았다. 아이를 간절히 바라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딩크도 아니었다. 언젠간 우리에게도 아이가 찾아올 거라고 굳게 믿고 기다리고 있었던 우리에게 난임 판정은 충격이었다. 남편은 내게 더 없을 만큼 미안해했다. 내 쪽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데도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등 임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노력은 오로지 내 몫이라는 사실이 서러웠지만, 내가 배란유도제의 부작용으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걸 보고 남편이 미안하다고 울먹거릴 때마다, 우리가 이 시간을 함께 견뎌야 한다는 것이 훨씬 더 아팠다. 아이가 없으면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고생을 한다며 남편이 풀이 죽어있는 것이 안쓰러웠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남편은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말했지만, 인공수정과 같은 시술을 시도해 볼지, 계속 자연 임신을 시도하며 하늘의 뜻에 맡겨 볼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기왕에 아이를 낳을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낳는 것이 체력적으로 좋다고 하니 얼른 인공수정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반,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이 두려워 인위적인 방법은 사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이었다. 정확히 50:50. 확신이 없는 나는 결정을 계속 미루어뒀고, 우리는 한 달 정도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남편은 내게 미안해했고, 나는 자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남편에게 부담이 될까 두려워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봐 걱정이 되어서 깊이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떠나온 여행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가 있는 미래를 상상했다. 도전을 해봐야 하는 걸까. 그때 처음으로, 인공수정에 도전해볼까 하는 쪽의 마음이 51%가 되었다.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다가 케이블 카 시간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니 날씨는 더 궂어져 있었는데, 당장 폭우가 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직은 부슬비가 내렸다 말았다 하는 정도라서, 일단은 케이블 카를 타러 갔다. 가장 먼저 도착해서 가장 먼저 표를 끊고, 가장 먼저 케이블 카에 탑승했는데, 그때 딱, 진짜로 비다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올라가도 아무것도 안 보이겠는데?' 걱정스레 말하자 남편은 괜찮아, 했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잘츠부르크 성 안을 구경했다. 차근차근 둘러보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내리는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빨리했다. 부슬거리는 비를 맞으며 성 안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도, 이상하게 전혀 불쾌하지 않고 기분이 좋았다. 비를 맞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게 재밌기도 했고, 점점 젖어가는 남편의 비니 모자가 웃기기도 했다. 기분이 좋아 킬킬거리면서 걸으니 어리둥절하던 남편도 나를 따라 웃으면서 신나게 걸었다. 비가 오는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까불기도 하다가 더 오래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나겠다 싶어 다시 케이블 카를 타고 성 아래로 내려갔다.


비가 내리며 더욱 쌀쌀해진 날씨를 헤치며 숙소로 향했다. 손을 꼭 붙들고 함께 달달 떨며 도착한 숙소에서 대충 머리와 옷을 털어 말린 뒤 체크아웃을 했다. 할슈타트로 향하는 버스를 탔던 잘츠부르크 기차역에서 빈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남편을 맞은편에 두고 앉아 자리를 정리하고 있으니, 곧 기차가 흐린 날씨를 뚫고 출발했다. 기차로는 약 두 시간 반,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걱정이었다. 정은 짧은데 너무 욕심내서 많은 일정을 욱여넣어 이동만 하다가 집에 간다고 느끼는 건 아닌지, 하루에 한 번 꼴로 기차와 버스를 타고 돌아다녀야 해서 힘든 건 아닌지 싶어 조금 미안했다.


물끄러미 건너다본 남편은 여행 책자를 뒤지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오늘 오후와 내일 오전, 만 하루를 둘러보고 떠나야 하는 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아 보였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손 붙잡고 끝없이 걷고, 오랜 시간 기차와 버스를 타며 여러 나라를 돌아보는 여행을 언제 또 할 수 있을까. 계획이야 당장 내년에라도 세우면 그만이었지만 변수는 많았다. 이 여행이 우리 둘이 할 수 있는 여행의 마지막은 아닌 게 분명했지만, 지금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일정이 너무 빡빡하지 않아? 미안. 욕심 내서.'


정신없이 책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1초의 고민도 없이 아닌데,라고 대답했다. '내가 지난번에 왔을 때 기억에 남았던 데도 가고, 또 못 가본 곳도 가고 싶고. 그래서 좀 오버했나 봐. 미안.'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는 남편에게 그래도 미안하다고 한 번 더 말하자, 남편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엄청 좋아. 난 여보보다 체력이 훨씬 좋아서. 아직 안 힘들어. 여보가 피곤한가 본데? 괜찮아?' 도리어 돌아오는 내 걱정에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어, 피곤하지. 내가 피곤해서 오빠를 걱정했나 봐.


얼마쯤 달리고 나자, 차창 밖으로 무수히 솟은 풍력 발전기가 보였다. 여전히 여행 책자를 뒤지고 있는 남편을 부르고 차창 밖을 손 끝으로 콕콕 찍어 가리켰다. '오빠. 오빠가 좋아하는 거.' 남편은 뭐 대단히 신기한 거라도 본 듯, 오오오, 소리를 내더니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몇 장이나 촬영했다. 대박이네. 엄청 많아. 와, 진짜 많다, 이거 사진 찍어서 애들 보여줘야겠다. 연신 감탄하는 남편이 신기했다. 남편은 전력전자를 전공했는데, 평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송배전이라든지, 우리나라의 전력 상황이라든지, 전기 자동차라든지, 아무튼 전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기회만 있으면 신이 나서 이야기를 왕창 쏟아내곤 했다. 나야 아무것도 모르니 처음에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다가, 이제 대충 몇몇 단어들 익숙해진 것도 같은 수준 밖엔 되지 않았지만 남편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여전히 전기랑, 전자랑, 전력이 어떻게 다른 개념인지 잘 모르겠고, 자꾸 들어도 외워지지 않지만, 그래도 들었다. 계속 듣다 보면 그걸 언젠가 결국 이해할 날이 오겠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는 반면 풍력 발전기만 봐도 흥분할 정도로 저렇게 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빈에 도착해서는 트램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역에서 숙소 방향으로 가는 트램 정류장을 찾지 못해 몇 번을 캐리어를 끌고 왔다 갔다 한 끝에 겨우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3시였다. 약간 지치긴 했지만,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올라가서는 숙소의 컨디션에 신이 났다. 지난번 내가 빈에 왔을 때 묵었던 숙소였는데, 넓고 쾌적하고 위치도 좋아서 다시 한번 예약한 곳이었다. 남편도 숙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짐을 풀면서는 연신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잘 모르는, 신해철의 옛날 노래. 기분이 아주 좋을 때만 그가 부르는 노래로, 데리고 온 보람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성격뿐 아니라 취향도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부분 남편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남편은 미술이나, 책이나, 아이돌 같은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둘 다 관심을 가지는 분야였던 음악과 영화에 대해서도 취향이 극명히 갈렸다. 그럼에도 우리가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하나도 모르는 전기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남편도 내 관심사에 대해 귀를 기울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얼굴과 이름을 매치하려 애썼다. 백화점에 들를 때면 꼭 그 옆에 붙어 있는 서점 가보자고 먼저 말해주었다. 방해하지 않을 테니 여행 다니며 미술관을 가도 좋다고 말했다. 남편이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 링크들을 내게 보내주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티브이에 나오면 얼른 나를 불러준 그 시간 동안 나는 열심히 전력과 전기 자동차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려 애썼고, 알지 못했던 신해철 노래의 한 소절을 대충이라도 따라 흥얼거릴 수 있게 됐다. 힘이 들 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아직 시간은 남아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참 남편다운, 남편이 좋아하는 게 당연한 가사였다.


남편을 따라 흥얼거리며 짐을 대충 풀고, 추워질지도 모르는 저녁 날씨를 대비해 목도리와 모자를 챙겨 벨베데레 궁전으로 향했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직접 클림트의 그림을 관람했지만, 남편은 그런 데 그다지 흥미가 없으므로 굳이 들어가서 볼 것 없이 궁 정원만 산책하며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역시 모델 같은 남편은 모델 같이 나오고, 난쟁이 같은 나는 난쟁이처럼 나옴을 확인하며 잠깐 슬퍼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옥색 지붕과 화려한 듯 소담한 궁전과 정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겉핥기식 구경을 마친 뒤엔 성으로 시내 구경을 했다. 슈테판 성당을 슬쩍 보고 지나쳐, 호프부르크 궁전 앞까지 걸으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미리 알아둔 슈니첼 맛집에 가서 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마트에 들러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잘츠부르크를 떠나오며 맑아진 날씨처럼 맑아진 내 기분이 너무 만족스러워 맥주를 마시며 한참을 깔깔대며 웃다가 잠들었다. 남편과 함께라는 게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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