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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Jan 06. 2021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을까

우울을 두고 온 곳에 남편을 데려갔다 (6)


*2016.10.02. Sunday.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호프부르그 성당으로 향했다. 별다른 계획이 없다는 동행인들은 천주교 신자인 나를 따라 미사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빈 소년 합창단에 정식으로 합류하기 전의 아이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당 근처에 도착해 단체톡으로 연락을 하니 키가 큰 여자 한 명과 마른 남자 한 명이 입구에서 손을 흔들었다.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고, 남자애는 나와 동갑이었다.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늦지 않게 성당에 들어섰다.


성당 내부는 아담하고 따듯한 분위기였다. 바깥 날씨가 추워서인지 몸을 감싸는 공기가 더욱 포근하게 느껴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익숙한 순서로 미사가 진행되었고, 나는 오랜만에 기도를 했다. 제게 주신 것에 감사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거라고 믿지 못해서 죄송해요. 깜빡하고 이겨낼 힘을 주시는 걸 잊으신 것 같아 원망스러워서 죄송해요. 어떨 땐 죽고만 싶어서 죄송해요. 하지 말라는 건 다 하면서 기도를 드리려니 좀 찝찝했지만, 달리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혼자서 한국어로 중얼중얼, 순서를 따라가며 미사를 보고 나니 마지막 순서로 소년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뽀얀 피부에 밝은 눈동자를 가진 자그맣고 귀여운 아이들이 같은 옷을 입고 쪼르르 모여 서 있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졌다.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몇 번 소리를 맞추어본 아이들이 노래를 시작했다.


울고만 싶은 목소리였다. 화음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마음이 벅차올랐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어떤 소리를 두고 천상의 것이라고 하는지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동안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노래와 목소리를 들었지만 이처럼 마음으로 직접 와 닿는 소리라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깨끗하고 고운, 흠결 하나 없는 것 같은 아이들의 목소리. 세상의 그 어떤 일도 겪지 않은 듯한 투명하고 맑은 소리. 이들의 목소리는 또렷하면서도 부드럽게 나를 감싸 안았다. 이 소리가 영혼을 씻어 주었으면. 부족한 나를 채워 주었으면. 나를 온통 내맡긴 채 음악에 집중하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주변 사람들 모두가 나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소리가 주는 감동이란 과연 어마어마했다.


짧은 공연을 본 뒤엔 클림트의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벨베데레 궁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거쳐온 도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소개하며 슬슬 궁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 나는 갑작스레 멈춰섰다. 무언가 진득하게 흘러나오는 느낌과 함께 발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길이 덜 든 신발을 신고 오래도록 여행해 발톱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티 내지 않고 동행들을 따라 걸었지만 신발에 닿는 발가락이 쓰라렸다. 발톱 안으로 잡힌 물집이 터져 나온 것도 같았다. 원래 걷는 속도는 빠른 편이었지만 아픈 발을 끌고 남들처럼 걷기란 쉽지 않았다.


미술관에 도착해 표를 끊고, 각자 얼마쯤 시간을 보낸 뒤 미술관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 한 뒤 동행들과 흩어져서는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이거, 어째야 해? 모든 걸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은 나약함과 여기까지 왔으니, 그리고 동행까지 구했으니 오늘 하루는 꾹 참아야겠다는 책임감이 마음의 주인 자리를 두고 다투었다. 미술관 입구 앞에서 꽤 오랜 시간 고민한 나는 일단 클림트의 그림을 관람하기로 결정했다. 안내서에서 클림트의 그림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통로를 찾고, 그를 따라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관심을 두고 오래도록 감상했을 작품들을 그냥 지나쳐야 했지만 발가락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집에 가고 싶다. 작품에 대한 감상 대신 피로함을 떠올리며 걷다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 앞에 섰다. 생각보다 작네.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다. 이렇게 작다고? 그게 내 첫 감상이었다. 바글바글한 인파를 뚫고 겨우 모나리자를 눈에 담았을 때나, 아픈 발가락으로 뒤뚱거리며 걸어 클림트의 그림 앞에 섰을 때나 내 감상은 같았다. 아름다운데, 특별한데, 뭔가 다른 걸 알 것도 같은데 좀 작네. 루브르에서도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이라는 다비드의 초대형 작품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게 기억나 다른 그림은 없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처엔 그가 그린 풍경화들이 걸려있었는데, 역시나 그쪽이 내 취향에 가까웠다. 푸르름을 간직한 그의 풍경화들을 조금 둘러보다가, 점점 나빠지는 발가락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앉을 곳을 찾아 궁 밖으로 나왔다.


벤치에 걸터앉아 겨우 신발을 벗었을 땐 이미 발가락이 엉망진창이었다. 평소에도 발톱이 약해 자주 발톱 아래 물집이 잡히곤 했던 나는 양말을 벗지 않고도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큰일이 났군. 조금 고민을 하다가 동행인들과 만든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죄송한데, 저 발톱이 다 나가서 발가락이 너무 아파서 먼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어디 돌아다니기가 힘들 것 같아서요ㅠㅠ 같이 일정하시면 불편하실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ㅠㅠ 죄송합니다.]


동행인들은 당황하며 괜찮냐고, 천천히 걸어도 되는데 같이 다니고 싶으면 그냥 일정을 함께 하시면 어떠냐고 물었지만 나는 거절했다. 진짜로 발톱이 엉망이기도 했고, 그 엉망인 발톱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인지 점차 기분이 가라앉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낯선 사람들과 서로 맞추어가며 여행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 밥 먹는 동안 얘기하는 것도 좀 부담스럽지. 나는 일단은 숙소로 돌아가겠다고 답했다. 내가 함께하겠다고 쪽지를 보냈으면서 결국엔 도망치는 것을 선택 것이었다.


발을 질질 끌어가며 호텔에 도착해서는 망가진 발톱부터 돌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발톱 4개 아래 물집이 잡히고, 그 물집이 터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평소에 쓰는 방법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가져온 거즈와 작은 붕대로 발가락을 꽁꽁 싸맸다. 개구리 발가락 같네. 괜찮냐고, 숙소까지 잘 들어갔냐고 묻는 동행인들에게는 처치를 해 놓은 발가락 사진을 찍어 보냈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진짜 발가락이 아파서예요, 불편해서가 아니었어요, 라고 말하고 싶어서 보낸 인증 사진이었지만 아마 그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도 같았다. 굳어 있던 내 모습을.


내향적인 성격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사람들과의 만남을 겁내지는 않았다. 일로, 일상적으로 마주쳐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나름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울이 나를 지배하고 나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상처 받을 일을 미리 겁냈다. 누가 나를 싫어한다면? 내가 미워서 내게 상처를 준다면? 내가 마음을 준 사람이 나를 배신한다면? 관계가 조금만 깊어져도 애정보다 걱정이 먼저 커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불편했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잖아.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 내게 상처가 될지도 모르잖아. 누군가를 만나면 그런 생각부터 먼저 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얼굴만 봐도 알았다. 상처 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걸 다 알면서도 마음이 불편한 게 싫어 핑계를 대며 도망치듯 숙소로 돌아와 숨어버린 게 못내 속상했다. 별 것 아닌데. 그냥 추억이 될 사람들이었을 텐데. 왜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고 마는 걸까. 왜 잘못된 선택인 걸 알면서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걸까. 왜. 도대체 왜.


자꾸만 떨어지는 기분을 붙잡을 기력도 없었다. 나는 내내 내 생각의 흐름을 바라만 보았다. 추락의 추락을 거듭해 이제는 더 내려갈 곳이 없을 것 같은 때도 다시 한번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야 마는 나의 한심한 기분. 그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 마음이 아팠다. 내 기분인데 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걸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뭐가 있어.


또다시 우울에 조종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숨 막히도록 슬펐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지. 얘는 언제쯤 내 발목을 놓아줄 생각이지. 약을 얼마나 더 먹어야, 내가 얼마나 더 달라져야 얘를 떼어낼 수 있는 걸까. 우울과 불안이 사라지고 모든 게 선명하게 느껴졌던 며칠은 과거가 되고, 다시 우울이 덕지덕지 붙어 뭉툭해진 감정의 가지 끝으로 세상을 두들기는 날들이 시작된 것만 같았다. 멀리까지 떠나온 여기서, 굳이, 다시. 갑작스레 선예도가 높아진 듯 맑게 보이던 내 생각들이 뿌옇게 낀 우울을 피해 한 곳을 향해 흘렀다. 난 안 돼. 무서워. 어려워. 두려워. 못 해.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건 나였다.


우울해진 기분을 안고 침대 위에 늘어져 있는데 항공사에서 답변이 왔다. 원하는 대로 귀국 편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불편하고 어려운 일에서 도망친 나 자신이 바보 같아서 죽고만 싶었지만 여기 계속 혼자 있는 건 내게 좋지 않은 선택임을 잘 알았다. 내 생각의 흐름을 막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내 상태를 아는 누구라도 곁에 있어야 했고, 결국 귀국 편 변경을 요청했다. 이미 바닥을 친 기분은 항공사에 보낸 답장을 추처럼 달고 한번 더 닿지 않는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나는 또 우울에 지고 있었다.


눈물도 나지 않고 그저 멍했다. 며칠 사이에 도대체 왜 이렇게 기분이 달라진 거지. 왜 마음이 잘 걸을만하면 고꾸라져버리고 마는 걸까. 울 기운도 없어 잠시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땐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꽤 오래 잤나 보네.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동행인들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너무 힘든 게 아니면 나와서 같이 밥을 먹으면 어떻냐는 말이었다. 나는 그들을 거절하고 돌아왔지만 그들은 내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마치 지금 우울을 지워버리는 데 실패하고 바닥을 친 내 기분을 다 안다는 것처럼, 그러나 기회는 또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처럼. 참으로 다정한 제안이었다. 이미 도망친 마당에, 이런 기분으로 어딜 또 나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그와 동시에 어쩌면, 이게 어제오늘 끝을 모르고 침잠한 내 기분을 되돌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기. 우울을 이겨보겠다는 오기로 나는 지금 나가겠다고 답장했다. 발가락 때문에 슬리퍼를 신어도 창피해하지 말아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살살 비가 내리고 있어 카디건 위에 우비를 덧대어 입고, 발톱이 눌리지 않도록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동행인들과 다시 만나 적당한 곳에서 적당한 맛의 스테이크를 나누어 먹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걱정했던 것만큼 어색하지도 힘들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무거웠다. 확실히 오기였고, 무리한 도전이었다. 무엇엔가 발목을 붙잡힌 것 같은 나의 표정을 보고, 아마 그들도 느꼈을 것이다. 나조차 연유를 알 수 없고, 어찌할 수도 없는 내 우울과 불안을. 발목을 붙잡다 못해 다리에 엉겨 붙어 발을 다치게 하고야 마는 그 끔찍한 무언가의 질척임을.




*2019.10.08. Tuesday.

이른 체크아웃을 위해 부지런히 채비를 하고 지하철을 탔다. 지난 여행에선 가보지 못했던 쇤부른 궁전을 산책하러 가는 길이었다. 사실 쇤부른 궁전은 이번 일정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어제의 속성 관광으로 이미 너무 많은 곳을 둘러본 탓에 어젯밤 급히 결정한 코스였다. 당연히 가는 길 따위는 제대로 알아두지 않았고, 블로그에 적힌 대로 대충 따라가다 보니 쇤브룬 궁전으로 가는 것이 분명한 몇몇 여행객들을 마주쳤다. 저 사람들 따라가면 되겠네. 남편과의 여행은 늘 그렇듯, 그런 마음가짐이어도 괜찮았다.


지하철에 내려서도 사람들만 졸졸 쫓아갔다. 남편은 파리에서도 네가 베르사유는 볼 것도 없고 다리만 아프다고 안 데리고 가지 않았냐며, 여긴 당연히 안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나를 놀렸지만 나는 진짜로 알고 있었다. 남편이 궁전 내부를 구경하다가 어느 순간 말이 없어지고, 속으로 '어째 다 똑같네'라고 생각할 거라는 걸. 지루해서 걸으며 핸드폰만 들여다볼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우리는 자연스레 표를 사러 티켓 부스로 향하는 사람들 무리에서 멀어져 정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다. 조금 헤매다 궁전 옆쪽으로 난 정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정원이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작은 건물과 연못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언덕 아래를 천천히 걸으며 산책을 하고, 뒤이어 경치를 보기 위해 언덕을 올랐다. 이 즈음 남편과 나의 관심사는 이사였는데, 한참 어디로 이사를 갈 것인가, 어떤 형태로 다음 집을 구할 것인가를 논의하며 걷다 보니 어쩌다 내가 여행지에 와서까지 이렇게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행지에서 뿐 아니라 평소에도 현실적인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쓸데없는 망상과 같은 것들에 대해 고심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곤 하는 나였기에 이런 멋진 곳에서, 이런 멋진 경관을 보며 이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남편과의 대화는 항상 현실적인 것을 다루는 데 그쳤다. 동생들이나 친구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실제로는 어떻게 비치는 것 같은지, 그 사이의 괴리는 어디서 오는 것 같은지'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아이돌을 좋아해서 굿즈를 사는 마음과 BJ를 좋아해서 별풍선을 쏘는 마음의 근본은 같은가 다른가'에 대해 논의하는 것과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여행지에서는 이 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삶에서 닮고 싶은 점은 무엇인지, 먼 곳으로 떠나와 가지게 된 여유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사색을 즐기는 편인 내게 남편과의 이야기는 다소 딱딱했다.


'아니, 근데 좀 재밌는 얘기를 해야 될 거 같아. 여행 와서의 감상 그런 건 없어? 같이 산다고 맨날 사는 얘기만 하나.'


언덕 꼭대기에 올라 쇤브룬 궁전과 그 뒤로 펼쳐진 빈 시내를 바라보며, 나는 조금 부루퉁하게 말했다. 남편은 어이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여행 와서 하루 종일 붙어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사색의 시간을 덜 줬구만. 쏘리.'


남편은 갑자기 쿡 찔러 넣은 공격에도 금방 속뜻을 알아채고, 잘못도 하지 않았으면서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다. 뭐, 그래. 그렇게 착하면 내가 더 화를 낼 수는 없고. 나는 뾰족 나왔던 입을 최대한 집어넣고 눈만 굴리며 눈치를 봤더니 남편이 덧붙였다.


'하나는 현실적이어야 땅에 발 붙이고 살지. 너 풍선처럼 날아가서 어딘가에서 뻥 터질까 봐 내가 너 붙들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해 좀 해주라. 그렇게 마친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날아가려는 나를 붙들고 있어서 내가 살았구나. 땅으로, 지하 깊숙한 곳으로 나를 끌어당기던 질척한 우울 대신 남편이 내 발목을 붙들고 나를 풍선처럼 들고 있구나. 바람에 실컷 흔들리고 적당히 부유할 수 있도록 잡고 있구나. 너무 멀리 가버리지 않도록 끈을 풀었다, 감았다 하며 나를 보고 있구나.


남편을 만나기 전에도 한 차례 약을 끊었던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먼저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다고, 기분이 좋다고, 다 나은 것 같다고 말하며 약을 줄여달라고 했다. 정말로 괜찮은 것 같았다. 무얼 하든 허우적거리며 가까스로 살아났다는 기분에서 벗어났고, 의욕이 솟았다. 이제 괜찮은 것 같아. 하나도 우울하지 않아. 그렇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많은 일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내겐 그 실패들을 견딜 힘이 없었다.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될 수는 없다는 걸 머리로는 다 알면서도 마음을 크게 다쳤다. 우울을 이겨낸 내게는 이제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는 과도하게 긍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망쳤다. 나는 다시 익숙한 곳으로 굴러 떨어졌고, 거기가 내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때 손을 내민 것이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를 구했다. 아예 떠밀어 죽여버릴 뻔했다가, 구했다. 연애시절,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걸 몰랐던 남편은 내 앞에서 우울증 같은 건 나약한 사람이나 앓는 병이라고 말했다. 그냥 하면 되는데, 그걸 못 해서 주저앉은 사람들이나 겪는 일이라고. 정신력으로 버티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소심한 나머지 별 것 아닌 일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나 우울증을 앓는 거라고, 성격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 주변의 의사 친구들은 다들 정신과에 오는 환자들을 어휴, 저런 머저리들, 하고 한심하게 본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들에게 환자들은 그냥 돈줄이고, 대충 얘기나 들어주면 되는 대상이라고도 했다. 나도 그의 면전에 대고 솔직하게 말했다. 나 우울증인데? 나 약 먹는데. 우울증은 그런 병 아닌데. 어디 가서 그렇게 말하면 오빠 못 배웠다고 욕먹어, 라고.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무지한 주제에 아무 말이나 떠드는 데에 화가 나기도 했고, 이 사람도 완벽히 착한 사람은 아니라는 데 조금 안심하기도 했다. 사색이 된 남편은 바로 내게 사과했다. '미안.' 약간 흥분한 나는 그의 사과에도 계속 입을 놀렸다. '나한테도 미안할 일이 맞긴 한데. 그런 편견은 좀 고쳐. 우울증 앓는 사람들이 성격을 고쳐야 되는 게 아니라 오빠 같은 사람들이 생각을 고쳐먹어야 돼. 그래야지 오빠 같은 사람들이 우리한테 상처를 안 주고, 나 같은 사람이 덜 생겨.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어색해진 분위기로 금방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앓고 있는 질병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실망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말이 되나. 온 세상이 우울증이 어떤 병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런 한심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그런 말을 하는 게, 말이 돼? 곱씹을수록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다. 정신과 선생님들이 모두 환자를 하찮게 본다는 말도 짜증이 났다. 내가 그토록 의지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그딴 쓰레기 같은 말 한마디로 깨부수면 다야? 어? 네가 그러고 사과를 하면 다냐고.


헤어지기 전 이 무지몽매한 인간을 계몽이라도 시켜야겠다 싶어 장문의 메시지를 썼다. 요약하자면 정신 차려라, 그런 식으로 세상을 봐서는 안 된다, 소심한 게 아니라 섬세한 거고 그건 무디고 직선적인 너랑 다른 것뿐이다, 그딴 소리를 해서 주변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말아라, 너 같은 애들 때문에 피해자가 생긴다, 등등의 질타였다. 한참을 어떻게 하면 더 충격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공들여 메시지를 쓰고 있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심호흡을 하고 받은 전화 너머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집에 와서 찾아보고, 생각도 해봤어. 내가 완전히 틀렸어. 고칠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 그럴게. 미안해.' 빠른 사과에도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 써놓았던 메시지를 다다다다, 읽어주었다. 남편은 응, 맞아, 미안, 같은 말로 대답했다.


남편은 우리가 만나지 않은 며칠간 스스로 우울증에 대한 많은 글을 찾아 읽어 왔다. 그리고 내게 질문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티를 안 냈어?' 딱히 남편 앞에서 우울을 감추려고 노력했던 건 아니었기에 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난 진짜 몰랐네.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인 남편은 우울증이 하루 종일 울고 싶고, 죽고만 싶은 병이 아니라는 건 이해했지만 내가 우울증이라는 건 여전히 신기하다고 했다.


'가끔 네가 네 안을 너무 깊이 들여다볼 땐 좀 이상하긴 했지만.'

'내가 그래?'

'응. 아. 이상하다는 게 진짜 이상하다는 게 아니고. 난 잘 안 하니까.'

'오빤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런 생각은 왜 안 하는데? 난 안 하는 게 더 이상한데.'

'난 그냥 앞으로를 생각하는데. 뭘 해야 될지, 뭘 목표로 삼아야 할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그런 거.'


그 말을 듣고는 나도 놀랐다. 어떤 사람들은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난 연말연시나 되어야 그런 생각을 할까 말까인데.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온 내게 남편이 덤덤히 내일을 그리는 태도는 충격에 가까웠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앞을 볼 줄 몰라서, 자꾸 뭔가를 돌아봐서, 내 안을 들여다봐서 종종 멈춰버렸나. 내 속에 이는 바람이 어떻게 생기는지, 어디서부터 어디로 부는지, 어떻게 잠재우는지 들여다보는 건 모두가 하는 일이 아니었나. 우울의 원인은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심장은 덜컹했다. 남편은 내 손을 꼭 잡았다.


'섬세하게 너 자신을 그릴 줄 아는 네가 정말 예쁘고 좋은데, 그러느라 너무 힘들진 않았으면 좋겠어. 성격을 바꾸라는 말이 아니야. 가끔은 앞만 보는 것도 좋다는 거지. 얼마나 편한데.'

'난 그게 참 쉽지가 않은 것 같아. 나를 들여다보는 게 정말 나한테 해로운지도 모르겠고.'

'맞아. 내가 미안해. 이제 앞은 내가 볼게. 너무 애쓰지 마.'


남편이 아무리 예쁘게 말을 하고, 미안해하고 노력을 해도, 그의 말이 주었던 충격은 금방 가시지 않았다. 그가 자라온 환경이 어땠든,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든 그런 걸 핑계로 남편이 한 말을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명백한 잘못이었다. 나는 이어진 몇 번의 데이트 때마다 남편에게 설교를 했다. 우울증은 그런 병이 아니야, 알았어? 정신적으로 나약하네 어쩌네 그런 말도 쓰지 마,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더 좋거나 더 나쁜 성격은 없어, 알았어? 혹시 예전에 그런 말로 상처 줬던 사람이 있다면 꼭 사과해, 알았어 몰랐어? 문득문득 남편이 갖고 있던 끔찍한 편견이 떠오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고 헤어지고 싶었지만 남편은 그때마다 뜬금없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맞아, 내 생각이 틀렸어. 미안해. 애쓰지 않아도 돼. 남편은 나를 낭떠러지로 떠밀어 떨어뜨려 놓고, 그런 말들 내 팔을 잡고 나를 끌어올렸다. 실제로는 헤어지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시킨 합리화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런 그를 믿어보고 싶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몰랐던 거니까. 이제 노력하고 있으니까.


이상하게도,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좀 편해졌다. 단순히 남자 친구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아서가 아니었다. 그가 우울증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를 위해 노력해주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어쩌면 앞을 보는 사람만큼이나 안을 보는 사람도 많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내게 가장 박한 건 나였다. 왜 이렇게 흔들릴까, 왜 이렇게 못났을까, 왜 자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나는 그런 나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내 안의 심연을 들여다 보는 게 잘못은 아니라고,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그랬다. 그에게 몇 번이고 토해내고 나서야 나 역시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지.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아주 지겹도록 나를 들여다보는 사람이지. 그걸 아주 멈출 수는 없는 사람이지. 그러니 휙, 하고 한순간 마음에 분 바람을 오래 관찰했던 거야. 그 바람이 만든 차가움에 오래 골몰했던 것뿐이야.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현상만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다른 사람들은 딛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상처에 나는 왜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인지 궁금해하지 않아도 됐다. 나는 오래도록, 아주 꼼꼼하게 나를 살피는 사람이었다.


내면의 것들로부터 멀어져야만 한다는 생각. 감정의 속박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 절대로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것들에 대한 들을 걷어내고 나니 마음이 편안했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여전히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되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튜브는 꼭 챙겼다. 벗어날 필요 없어. 계속 떠다니면 돼. 고점에서 저점으로, 저점에서 또 고점으로. 풍랑이 일면 뒤집혀도 줬다가, 다시 튜브를 끼고 앉으면 되는 거야. 여유를 가지니 흔들리는 것도 괜찮았다. 안 돼, 빨리 이 생각에서 벗어나야만 해, 하며 발버둥 쳤던 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내 감정에 몰입하면 좀 어때. 빨려 들어갈 듯 그것만 들여다봐도 좀 어때. 아프지 않을 때까지만 하면 되지. 여전히 떠나지 않고 내 곁에 머무는 네가 앞을 보는 동안 나는 나를 보고, 서로 그게 편하면 그러면 되지. 그게 참 좋았다.


남편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앞은 자기가 보겠다는 그 말도 아주 굳게 지키고 있었고, 우울증에서 벗어난 나는 그걸 믿고 풍선처럼 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세상도 깊이 들여다봤다. 아이돌이랑 BJ를 좋아하는 마음의 본질이 같은지 다른지 왜 생각하냐고 물어도 '궁금하니까' 말고는 달리 대답할 말이 없었지만 그런 걸 골몰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모아 틈틈이 글을 쓰고 작가를 꿈꿨다. 우울증에서 끌어올린 인간이 풍선이 될 줄은 몰랐겠지. 안타깝지만 오빠의 운명이 그런 모양이니 받아들여. 농담처럼 건네니 남편이 푸스스 웃었다. '진심인데. MBTI 성격 유형 별 소득 평균 보니까 오빠가 2등이고 나는 16등이더라. 참고로 성격 유형은 16개야.' 덧붙였는데도 그냥 웃고 마는 남편이 고마웠다. 쉬이 깨지지 않을 단단한 웃음이었다.


쇤부른을 떠나서는 카페 자허로 향했다. 바로 근처에 2호점까지 생긴 모양이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아 대기를 해야 했다. 기왕 온 김에 제대로 된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오랜 시간 대기를 한 후 자리를 안내받았다. 남편은 케이크를 2개 시키고 싶어 했지만, 점심을 거나하게 먹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딱 잘라 거절했다. 자허 토르테 하나와 나를 위한 핫초코를, 남편을 위한 커피를 시켰다. 파리에서도 에끌레어도 안 사주고 치폴레도 안 사주더니, 또. 툴툴거리는 남편을 에끌레어는 너무 달아 맛이 없어, 치폴레는 뉴욕에 가면 사줄게, 하며 달래는 사이에 주문한 음료와 케이크가 나왔다. 케이크의 맛은 여전히 감동적이었지만, 3년 전과 똑같이 다른 손님들이 긴 시간 대기를 하고 있었으므로 순식간에 커피와 케이크를 먹어 치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일정대로라면 립스 오브 비엔나로 갈 차례였다.


호기롭게 자허를 나섰지만 사실 갈 곳이 없었다. 립스 오브 비엔나 오픈 시간까지는 2시간가량이 남아 있었다. 남편과 나는 손을 잡고 거리를 쏘다녔다. 이리 걷고, 저리 걷고, 다시 돌아와 같은 곳을 또 걷고. 그렇게 걷다 자라에 들어가 커플로 쓸 비니도 샀다. 가게를 나와 또다시 걷는 동안은 이사나 남편의 면접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여행지에 와서는 왜 허튼 돈을 쓰게 되는가와 같은 내가 하고픈 이야기도 나눴다. 2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흘렀다.


우리가 1등인 줄 알고 립스 오브 비엔나에 들어섰을 땐 이미 몇 개의 테이블이 차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확실히 블로그를 보고 찾은 곳은 한국인이 많군. 메뉴를 시키고 잠깐 기다리고 있으니 한국 단체 관광객들도 가게로 들어섰다. 대부분 50~60대 어르신들이었는데 가이드가 지정해주는 대로 자리에 앉아 미리 주문해둔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살짝 씁쓸했다. 우리와 일정이 겹치지는 않았지만 마침 시부모님도 같은 시기에 동유럽을 여행하고 계셨기에, 어머니 아버지도 저렇게 점심을 드셨으려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뭘 먹을지, 어딜 갈지, 뭘 더 볼지 고민도 하지 않고, 잘 모르는 식당에 앉아서 시켜주는 음식을 먹고 통하지 않는 영어로 외국인들에게 약간의 무시를 당하면서 그렇게 여행을 하고 계시려나. 어쩌면 어르신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일지도 몰랐지만 내 마음이 아쉬웠다. 엄마 아빠가 떠났던 패키지여행의 내가 모르는 순간들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도 했다. 여행지의 진짜 매력을 느끼실 순 있었을까. 뭐든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를 즐기지 못하셨던 건 아닐까. 남편에게 이런 생각을 털어놓고 시부모님을 우리가 모시고 다니면 어땠을까 하고 물으니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의만 상해. 싸우고 서로 안 봐. 안 돼.' 그런 말을 듣고도 마음이 계속 쓰였다.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하고, 근처 젤라또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도 내내 패키지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우리도 결국엔 저렇게 될 거라고,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을 오가는 여행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올 거라고 말했다. 그때가 되면 또 패키지로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사람도 사귀고, 이동하면서 잠도 좀 자고 그러는 재미를 보면 된다고도 했다.


'난 싫은데. 내가 계획 짜고 싶은데. 가고 싶은 데만 가고 싶은데.'

'그럼 돈 많이 벌어. 개별 가이드랑 밴 붙여서도 여행하더라.'

'돈 오빠가 벌기로 했잖아.'

'맞네.'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호텔에 들러 체크아웃하며 맡겨 두었던 짐을 찾아 빈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제 진짜 내가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중이었다. 남편과 나, 모두에게 처음인 곳. 둘이 함께하는 것이 첫 기억이 될 곳. 괜히 마음이 들뜨고 설렜다.


기차가 부다페스트에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많아졌다. 상상 속의 부다페스트는 흐린 날씨가 더 어울릴 것 같은 도시긴 했지만, 그래도 날씨가 좋아야 여행하는 맛이 좀 나는데. 아쉬운 마음에 '며칠 지내는 동안 맑은 날도 있겠지?' 하고 기운 없이 묻자 남편은 여행책자 속에 코를 박고 별 감흥 없이 그럼, 하고 대충 대답했다. 그렇지. 내가 생각한다고 해도 뭐, 날씨가 바뀌진 않지. 나도 아쉬움을 털어내고 가져온 책을 봤다.


부다페스트 역에 도착했을 땐 늦은 밤이었다. 주황색 불빛으로 가득한 플랫폼에 발을 딛는 순간 알았다. 부다페스트가 낭만의 끝이라는 걸. 도시를 비추는 주황색 불빛이 아련하면서도 따듯했고, 노후한 건물들도 어딘가 모르게 낭만적이었다. 나는 계속 감탄했다. 와, 진짜 최고다. 이런 풍경이라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그렇게 많이 만들어졌구나. 잠깐 보기만 해도 이 도시가 가진 모든 선입견이 말이 됐다. 우버를 불러 강 건너 숙소로 가는 길에도 내내 도시의 야경에 찬사를 보냈다. 부다페스트를 마지막으로 세계 3대 야경을 다 보았으니, 이제 그중에 최고를 꼽을 수 있겠어. 여기가 진짜였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하는 오늘이 남편의 생일이라, 국회의사당 야경이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더 깨끗하고 좋은 호텔과 국회의사당을 볼 수 있는 호텔 중 어느 것을 고르겠냐고 물었을 때 남편은 이 곳을 골랐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푼 뒤 간단히 먹을 저녁거리와 내일 아침으로 먹을 요거트 등을 사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펼쳐지는 야경에 꺅꺅 소리를 지르며 거리를 걸었다. 예쁘다는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없던 사랑도 생길 것 같은 마법 같은 광경이었다.


숙소 근처에 위치한 마트에 도착하니, 그 앞에서 웬 취객과 노숙자가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무서워서 더 가지 못하고 굳어있는데, 남편이 괜찮다며 내 손을 잡고 그들과 거리를 두고 크게 돌아 걸어 마트로 들어섰다. 너무 무서운데. 나 혼자 하는 여행이었으면 나 바로 숙소로 가서 내일 비행기로 집에 갔다. 덜덜 떨며 말하자 남편은 그 말을 듣고 깔깔 웃더니 그러니까 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대답했다.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도 여전히 서로를 때리며 길을 나뒹굴고 있는 두 사람을 지나쳐 숙소를 향해 걸었다. 아마 혼자였으면 장도 못 보고 배곯고 잤겠지. 갑자기 남편이 엄청나게 든든하게 느껴졌다.


숙소에 도착해서 간단히 요기를 한 다음 나는 일찍 잘 준비를 마치고 누웠고, 해야 할 일이 있는 남편은 노트북을 켰다. 여행을 오기 전 내가 생일선물로 사준 노트북이었다. '여행 와서도 일하라고 사준 건 아닌데.' 여행지에서, 그것도 생일날 일을 한다며 약이 오르라고 한 번 놀려봤는데 이미 집중한 남편은 별 대꾸가 없었다. 혼자서 휴대폰으로 오늘 찍은 사진을 보다가 잠이 들 것 같아 남편에게 '생일 축하해요' 하고 말했다. 남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마워. 진짜.' 하고 대답했다. 꼭 들어야 할 건 잘 듣는 다정한 목소리를 곱씹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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