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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Jan 08. 2021

내 세계에 나타난 작은 영웅

우울을 두고 온 곳에 남편을 데려갔다 (7)


*2016.10.03. Monday.

눈을 떴을 땐 그 어느 날보다 짙은 피곤함을 느꼈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 탓인가. 침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일어나 커튼도 걷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과 몇몇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노트북으로 다운 받아 온 드라마를 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잘 있냐.]


아주 간단하고 담백한 말이었다. 아니, 잘 못 있어서 일찍 돌아가려고. 솔직하게 말하자 친구는 원래부터 한 달은 너무 길었다, 누가 도 힘들다, 라고 덤덤히 대답했다. [지금 니 상황도 뭐 별 것도 아니다, 걍 온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내 걱정이 잔뜩 담긴 친구의 말에 잠깐 생각이 멈췄다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그런 듯도 해. 어찌 됐든 삶은 계속되고 나는 멀고 먼 동유럽까지 와 있으니까. 불안하고 우울하지만 별 일 없이 시간이 흐르고 하루가 가니까. 그렇지만 진짜로,  아닌가? 확신하지 못하고 되물으니 어, 암 것도 아니다, 하는 단단한 답이 돌아왔다. 니 젊음 2년 허비한 것도 아니고, 니한테 뭔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니가 뭐 누구한테 잘못한 것도 아니다. 걍 온나. 이어지는 메시지들에 또 고개만 끄덕였다. 틀어놓고 보지 않는 드라마는 계속 진행되는데, 나는 친구를 붙들고 물었다.


[진짜 내 잘못 아니지?]

[아니라니까 멀 자꾸 묻노.]


내가 신중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을 잘 봤어야 했는데, 주변에서 이상한 얘기가 들려 왔을 때, 처음 병원에 가게 되었을 때 멈췄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잘못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라는 걸 머리론 잘 알고 있다고,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자괴감은 불시에 나를 덮치곤 했다. 그런 사람을 왜 사랑했을까. 어쩌다 결혼까지 하려고 했을까.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걸까.


그 사람에게도 분명한 장점 있었다. 에너지가 넘쳐 가끔 다운되곤 하는 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었고, 다양한 경험이 많아 세상에 대한 이해가 높은 편이었고, 어떤 얘기든 진지하게 들어주는 좋은 친구였으며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가 신의를 저버려 믿음이 깨진 뒤에도 헤어지지 못하고 1년이나 그를 만났던 건 내가 의존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내게 금이 간 부분을 덮을 수 있을 만큼의 행복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와 헤어지지 않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둘의 관계였고, 내 선택이었으니까. 그때의 그 선택은 내게 실수라기보다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헤어짐은 그의 부정을 알게 되고도 1년이 지나서였다. 그 1년 동안 나는 깊은 불안에 시달렸다. 그가 집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먼저 잠들어야 할 때는 늘 그가 몰래 밖에 나가 또 술집 같은 곳을 가는 건 아닐지 걱정하느라 잠을 설쳤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불안은 점점 더 심해졌지만 그가 내게 보여주는 노력을 믿고 겨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는 매일 퇴근하며 집 앞에서 내게 인증 사진을 보냈다. 어디를 가든 이동할 땐 항상 메시지를 남겼다. 가끔은 잠들기 전에 확인을 시켜주겠다며 스스로 침대에 누워 있는 사진을 보내주곤 했다. 그럴 때면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안정됐다. 관계를 깨뜨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란 이런 것일까 싶었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실수라 했으니 괜찮겠지. 한 번이었겠지.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결혼하기로 했는데, 준비도 다 했는데, 뭘 어떻게 해. 그렇게 겨우 나를 지탱하고 있던 밧줄을 끊어버린 건 그의 부모님이었다. 한날 함께 밥을 먹으며 '저희는 어차피 둘 다 회사에서 세 끼를 다 먹으니까요, 냉장고 큰 것도 필요 없을 것 같아요' 하고 던진 말에 어떻게 시부모 앞에서 남편 밥을 안 챙겨주겠다는 얘기를 하냐며,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하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그냥 멍하니 있었다. 이미 너무 큰 불안과 우울이 나를 헤집고 있었기에 어찌 대처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냥 자꾸 물었다. 내가, 뭐까지 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뭐가 문제라고? 내가 뭘 참고 있는지를 알고 하시는 말씀이야? 그런 말을 방문 너머에서 그 통화를 듣고 있던 남동생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아, 미친 새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할게. 결혼하지 마. 그 말이 모든 걸 멈췄다.


내 실수가 아니었다. 잘못한 거 하나 없어. 그렇게 마음에 새기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나를 향한 위로는 모래밭에 새겨진 글씨처럼 우울의 파도에 자꾸만 지워졌다. 누구를 좋아했던 것도, 의지했던 것도 잘못이 아닌데 나는 자꾸만 내가 의존적인 사람이라 그런 실수를 했던 건 아닌지 고민했다. 혼자 서지 못하는 사람인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가. 또 이런 아픔을 겪지 않으려면 살아가며 고쳐야 할 부분인가. 결국 내 문제인가.


도돌이표처럼 내 잘못으로 귀결되는 마음속의 질문에 대해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너무 외로움을 못 견디나. 잠시 말이 없어진 친구를 기다리느라 긴장 속에서 받은 답장은 나를 침대에서 일어나게 했다.


[다 외롭다. 특히 니 같은 일을 겪으면 더 외롭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그러니까 누가 니한테 그때 헤어지지 왜 그랬냐고, 그딴 소리 하면 걍 몰라서 그런갑다 하고 내비도. 니 잘못 아다. 따스한 친구의 답장에 마음이 데워지는 듯 조금 벅찼다. 그래. 다 외롭겠지. 많이들 겪는 일은 아니니까 내가 이렇게 엎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모두가 이해할 순 없겠지. 일어나서 커튼을 걷고, 드라마를 끄고 침대를 정리했다. 개운하게 샤워도 하고 나와 짐을 쌌다. 오늘은 프라하로 돌아가야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컨시어지에 짐을 맡긴 뒤 카페 드멜로 향했다. 드멜에서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시민 공원을 산책한 뒤 카페 센트럴로 자리를 옮겨 또 커피를 한 잔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기차를 타면 시간이 딱 맞겠어. 아침의 피곤함은 사라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기분이 무거워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던 어제와는 달리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차갑고 선명한 공기도 좋았다. 내 기분 정말, 오락가락이네. 순간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억지로 다들 그럴 거야, 당연한 거야, 하는 말로 나를 다독였다. 슈테판 성당을 지나고, 아침을 맞아 복작거리기 시작한 가게들을 지나 드멜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마자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게 내부는 협소했지만 분위기는 좋았다. 먼저 드멜에서 판매하고 있는 초콜릿과 과자를 구경했다. 몇 개 사서 집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생각도 했지만 역시 선물은 프라하에 가서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그냥 자리에 앉았다. 커피 한 잔과 케이크를 시키고 일기장을 폈다. 아직 사람은 많지 않으니 조금만 앉아있다 가야지. 오늘은 좀 느긋하게 커피 타임을 즐겨야지.


오늘의 날짜를 적고, 가장 첫 줄엔 즐겁다, 를 적어 넣었다. 하루 종일 달리 할 것도 없으면서 여유로움에 젖은 지금 내 마음을 보고 있는 게 즐거웠다. 이건 우울이랑은 별개의 감정이었다. 여전히 불안하고 외로웠지만, 한 달짜리 여행을 계획해놓고 당장 3일 뒤 비행기를 타기로 마음을 바꾼 주제에도 전혀 조급함 없이 카페에 앉아 일기나 쓰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즐거웠다. 자유로웠다. 어디서 뭘 해도 상관없어. 빈에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대도 괜찮지. 언제 돌아가도 상관없어. 마음이 아픈 나를 배려하려고 한 말들일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일찍 돌아와도 된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며 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서울에서는 마치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 눈치를 보는 일들이 많았지. 불안으로 일상생활이 힘들어 죽겠는데도 회사는 계속 다녀야만 하는 곳 같아서 이를 악 물고 매일 출근을 했. 어쩌면 누군가 그깟 일로 파혼을 하냐며 손가락질할지도 몰라서, 파혼을 했다며 수군거릴지도 몰라서,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그 정도 시련은 이겨내야 하는 것만 같아서 헤어지지도 못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덜 아플 수 있었는데도 굳이 더 아플 수밖에 없는 쪽을 택했다. 지금은 달랐다. 모든 결정의 순간에 내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했다. 마음을 따른다는 건 이렇게 좋은 거구나. 그렇게 해도 누군가, 나를 응원해 줄 사람이 반드시 곁에 있구나. 나를 둘러싼 상황이 아무리 암울하다 해도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리다가 가게에 사람이 많아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섰다. 빈 시민공원까지는 이어폰을 끼고 아주 천천히 걸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도 공원을 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공원이 지척인 곳에서 살고 싶은데. 매일 공원을 뛸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내가 사는 동네에는 공원이 없어 매일 트레드밀을 뛰어야 하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공원 안쪽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는 자리를 펴고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을 볼 수 있었다. 빈이라서 그런지, 버스킹도 퀄리티가 좋네. 눈을 감고 집중한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 이어폰을 빼고,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노래가 들리는 거리. 그러면서도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 내가 좋아하는,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도 함께일 수 있는 안정감 있는 거리.


외로움이 진절머리 치도록 싫었지만 아무나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 역시 외로움이 싫은 딱 그만큼, 싫었다. 저 사람이 내게 쉽게 상처를 줄 수 없는 정도의 거리를 두고 싶어.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될 정도의 거리에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아예 떠나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가진 모순이었다. 나는 외로움이 깊은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무한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불안 장애를 겪기 전까지는 정말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 모두에게서 좋은, 밝게 빛나는 면을 발견했고 그것을 있는 힘껏 사랑했다. 누군가를 챙겨주고, 아껴주고, 생각해주는 그 시간이 좋았다. 결혼하기로 한 사람에게 불안 장애를 얻을 정도로 치가 떨리는 배신감을 느꼈으면서도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하고 싶은데 그럴 자격이 없을까 걱정했다. 이제 돌아가면 예전의 그 무한히 퍼올릴 수 있는 애정의 우물을 되찾아도 될까. 또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고 무턱대고 퍼주어도 괜찮을까. 그러다 상처를 받는대도 아이, 받을 줄 모르는 나쁜 사람이네, 하고 뒤돌아 다른 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누군가와 더 깊은 기쁨을 나누고 싶어 해도 괜찮을까.


적당한 거리에서 음악을 감상하다 다시 몸을 일으켜 카페 센트럴로 향했다. 에서 잠깐 앉아 있었더니 몸이 식어 따듯한 커피가 간절했다. 종종걸음으로 걸어 카페에 도착해서는 간단히 커피를 한 잔 하며 몸을 녹이고 일어섰다. 기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호텔에 돌아가 맡겨두었던 짐을 찾고 빈 서역으로 향했다. 프라하로 가는 길. 돌아가는 길. 앞으로 나아가려고 온 여행에서 다시 뒷걸음질을 치는 길. 스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길.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동안은 내내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영원히 도돌이표를 반복하게 되진 않을 거야. 오래도록 제자리걸음만 하진 않을 거야. 지금 내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어.


프라하 역에 내렸을 땐 이미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트램을 타고, 돌길을 걸어 에어비앤비로 구한 숙소로 향했다. 처음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 묵었던 숙소와는 거리가 좀 있는, 보다 시내 쪽에 위치한 숙소였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절로 몸이 늘어졌다. 노트북을 켜고 오전에 보다가 말았던 드라마를 다시 재생했다. 여행까지 왔으니 조금이라도 더 이 도시를 경험하면 좋을 것 같았고, 그러고 싶었지만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며칠을 한 끼도 제대로 먹지 않았고,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지쳤어. 쉬어야 해. 널어놓은 빨랫감처럼 침대에 널브러져 시간을 보내다 뒤늦게 잠이 들었다.





*2019.10.09. Wednesday.

잦은 이동에 피곤했지만 알람도 울리지 않았는데 눈이 절로 떠졌다. 가장 고대하던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세체니 온천! 원체 물을 좋아하고, 따뜻한 물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더더욱 좋아하기 때문에 온천이 유명한 부다페스트에 가기로 하고 가장 먼저 정한 일정이었다. 세체니 온천에 갈 거야. 어제 늦은 밤까지 일을 하다 잠들었는지 평소 같지 않게 졸려하는 남편을 따뜻한 물에 몸을 좀 지지면 나을 거야, 하는 말로 살살 꼬시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부다페스트는 다른 동유럽 도시들과 달리 넓어서, 꼭 데이패스를 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티켓 발권기 앞에 서서 남편과 나는 한참 고민을 했다. 걷는 걸 너무 좋아하고, 실제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는 언제나 걸어 다니는 우리의 여행 습관 때문이었다.


'우리 파리에서 까르네 10장씩 스무 개 사서 4개 쓰지 않았어?'

'응.'

'내 생각엔 꼭 패스 안 끊어도 될 것 같아.'

'나도 그런데, 인터넷엔 다 끊으라더라고.'

'까르네도 꼭 10장 사랬어. 우리 백 프로 몇 번 안 타.'

'.. 어쩌지.'


남편의 만류에도 결국 나는 이틀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데이 패스를 2장 샀다. 세체니 온천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지하철을 잠깐 타고, 내려서 10분 정도 걸으니 로맨틱한 느낌의 커다란 건물이 나왔다. 이게 온천인가, 되게 큰데? 놀라며 앞서 걷는 사람들을 따라 입구로 들어갔다. 간단히 온천만 할 수 있는 티켓을 끊고, 각자 옷을 갈아입고 온천 안에서 만나기로 했다. 세체니 온천에서 입기 위해 새로 산 수영복을 입고 기분 좋게 온천 안으로 입장했다.


탈의실을 나서면 일단 실내 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영을 할 수 있게끔 길게 설계된 풀도 있었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따뜻한 물을 즐길 수 있는 풀도 있었다. 실내에는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자리를 잡고 계셨는데, 나도 그 가운데 들어가서 유유히 수영을 하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해치는 것 같아 그냥 구경만 하고 말았다. 내부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찾지 못해 남편과 함께 여러 번 건물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겨우 야외 풀로 나가는 문을 찾아냈다. 그렇게 나간 곳에 우리가 사진으로 보았던 멋진 야외 풀이 있었다.


얼른 뛰어가 물에 몸을 담갔다. 물은 따뜻하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차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감각이었다. 바로 이거지. 감동해서 얼굴까지 일그러뜨리며 좋아하자 남편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어댔다. 남편의 놀림은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행복했다. 여행의 피로감이 싹 씻겨나가는 기분. 숨은 차갑고 맑은 공기로 채우고, 그걸 담는 몸은 따뜻하게 데우는 극명한 대비감.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에 눈까지 감고 온천을 즐기고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던 남편이 말했다. 여기 한국 사람 진짜 많네. 돌아보니 진짜 그랬다. 선글라스를 끼고, 누군가 같이 놀 사람이 없는지 탐색하는 듯한 20대 남녀들이 서로를 흘깃거리고 있었다. 


'젊다, 젊어.'

'여보도 젊을 때 혼자 놀러 다니면서 저랬어?'

'난 내성적이어서 누구랑 같이 노는 거 별로 안 좋아했어. 그리고 난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와서 말 걸어서 내가 먼저 찾을 필요가 없었지.'

'괜히 물어봤네.'

'그니까.'


남편에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모두 진짜였다. 남들과 있는 걸 딱히 불편해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혼자가 좋았다. 여행을 가는 이유 중 하나도 혼자가 되고 싶어서였다. 친한 친구들이 교환학생을 떠난 학기에 휴학계를 내고 혼자서 두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한 달 반 동안 스페인에 머무르며 까미노를 걷기도 했고, 싱가폴이나 홍콩, 일본 같은 곳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혼자가 되는 시간을 즐겼다. 여행지에서만큼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멋대로 행동했다. 혼자인 게 힘들었던 건, 3년 전 동유럽 여행, 딱 한 번이었.


누구도 배려할 필요 없이 완벽히 혼자가 되는 걸 즐겼었다.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일수록 더 좋았다. 흥얼흥얼 노래도 부르고, 혼잣말도 했다. 나를 절대로 기억하지 못할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을 해가며 길도, 맛집에 대해서도 잘 물었다. 그런 내가 남편을 만나고 나서 모든 여행을 누군가와 함께하게 됐다. 자주 그랬듯 친구나 동생과 함께 여행을 떠났고, 그들 없이 혼자 떠났을 여행들엔 남편이 함께했다. 그 시간들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나를 배려했다. 유명한 맛집에 가자고 남편을 데려가 놓고,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기다리기 싫어 음식 맛이 거기서 거기라며 그 옆집에 데려갔을 때도 불평하지 않았다. 내일 둘러보기로 한 여행 일정을 오늘 밤에 바꾸어도 그러든가, 할 뿐이었다. 함께 있기만 하면 된다며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하게 두는 남편과의 여행은, 나 혼자서 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그가 함께하는 여행엔 장점도 많았다. 남편은 힘든 일은 뭐든지 자신이 하려고 했다. 좀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양보해야 할 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할 때 그는 내 영웅이 됐다. 나는 여행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며 막무가내로 굴었지만 남편은 그런 나까지도 책임지려 했다. 예전에 만났던 사람과 함께 여행을 갔을 땐 허리가 아프다는 그 사람의 말에 여행 책자, 카메라, 보조 배터리 등 두 사람의 몫이 가득 든 짐을 나 혼자 지고 걸었어야 했는데 남편은 묵묵히 거북이 등딱지처럼 다란 짐을 혼자 졌다. 파리 여행 중 하루는 영 무거 워보이는 그의 가방을 나와 바꿔 들자고 말했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숙소를 나온 지 여섯 시간은 된 것 같은데, 이걸 지고는 30분만 걸어도 짜증이 나겠다 싶을 정도로 가방이 무거웠다. 걱정이 많은 타입의 남편이 굳이 챙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물건들까지 바리바리 챙겨 두 사람 분의 짐을 잔뜩 지고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도 우리는 3만 보 이상을 걸었던 것 같은데. 가방을 바꿔 맨 나는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한사코 사양을 했던 그 이유를 알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조금 울었다. 그 이후로 나는 숙소를 나서기 전 가끔 남편의 가방을 검사했다. 이건 필요 없어, 두고 가. 그런 말로 남편의 가방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면 내 기분도 가벼워졌다.


그의 동행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되려 고마운 건 모두 그의 덕이다.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지. 곁에 있는 사람을 보며, 과시할 젊음도 없지만 있었다 해도 얌전히 그를 기다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매번 2년만 더 일찍 만났으면 결혼할 때 집을 샀을 거라며, 그럼 벌써 얼마를 아낀 거냐고 투덜거릴 때 민망한 듯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진짜로 내게 남편을 만나기 전 2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단 한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그를 기다릴 거였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선택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한참 온천을 즐기고 나와서는 점심을 먹으러 미리 검색해둔 식당으로 향했다. 구글 맵을 확인하니 걸어서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기에 그냥 걸을까? 묻자 남편이 역시 데이 패스 같은 건 살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나 역시도 충분히 동의하며 식당을 향해 걸었다. 생각보다 많이 춥지 않은 날씨에 신이 나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서 걸으니 남편도 몇 마디를 따라 불렀다. 빈보다는 조금 어두운 듯 탁한 색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넓게 닦인 도로와 늘어선 가로수들이 도시에 여유를 불어넣고 있었다. 인터넷엔 집시나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았는데 생각보다는 안전한 느낌이었다. 햇살을 받으며 걷고 또 걸었다. 서울에서는 회사 생활을 하느라 낮에 이렇게 걸어 다니기 쉽지 않으니까 더 많이 걸어두고 싶었다.


도착한 식당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여행객들도 간간히 있어 보였지만, 현지인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온천을 하고 한참 걷기까지 해 배가 고팠던 우리는 메뉴를 세 개나 주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짠 것, 매운 것, 감자, 계란을 좋아하는 나에게 부다페스트는 최고의 도시였다. 연거푸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으니 남편이 내 미각이 살아났다며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또 걸었다. 걷고 걸어 세체니 다리를 건너며 저 멀리 보이는 어부의 요새를 앵글에 걸고 사진을 찍고, 또 곧장 걸어 숙소까지 향했다. 가방에 들고 다니던 젖은 수영복을 꺼내 호텔 욕실에 살짝 널어놓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숙소를 나섰다. 이제는 어부의 요새에 직접 오를 차례였다.


어부의 요새도 당연히 걸어올랐다. 밥을 먹고 나니 더 힘이 솟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금방 마차슈 성당 앞에 도착했다. 유명한 인증샷 포인트인 만큼 전 세계의 관광객이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기다릴까 말까 고민하던 우리도 결국은 사진을 찍기 위해 가장 짧은 줄을 찾아 그 뒤에 섰다. 우리 차례가 오고, 내가 먼저 남편 사진을 멋지게 찍어준 뒤 남편에게 보여줬다.


'이렇게 찍어야 돼. 알겠지? 똑같이.'

'응, 알겠어. 해볼게.'


비장하게 대답한 남편은 당연히 똑같이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아니, 여기! 이렇게 걸리게 찍으라고! 다시 설명을 해주고 한 번 더 도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남들 다 인생 샷을 건지는 곳에서 나는 실물보다 훨씬 못 나온 사진을 들고 돌아가는군. 시무룩해져서 남편에게 조금 투덜대니 남편이 미안하다고, 열심히 사진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지만 나아질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공부는 이전부터 이미 많이 해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센스가 없는 거라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속상했다. 실망한 채 자꾸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남편이 어쩔 줄 모르며 다시 한번 찍어줄까, 줄을 다시 설까, 하고 물었지만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미안. 왜 잘 안 되지.'

'.. 괜찮아. 애초에 사이즈가 다르니까 똑같이 찍을 수가 없는 거지, 뭐.'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는 뭐가 그렇구나야. 죽을래.'


사진을 찍을 때면 늘 투닥거리게 되는구나. 장난을 치며 살짝 분위기는 풀렸지만 여전히 기가 죽은 남편과 여전히 속상한 나는 마차슈 성당 안을 구경했다. 전 세계의 많은 성당을 구경했지만, 가는 곳마다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게 신기해 성당 구경을 참 좋아했다. 마차슈 성당도 특별했다.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까마귀 상. 독일의 성당들보다도 한 보 더 나아가 자신만의 색을 가진 대성당. 같은 교리를 가지고 같은 믿음으로 지은 건물이 어쩜 이렇게 다를까. 건축이야말로 역사와 철학, 예술이 합쳐진 지성의 종합체라는 말을 실감했다.


요새 근처의 부다 성 지구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와 그레이트 마켓 홀로 향했다. 시장 구경을 좋아하는 나와 남편에게 아주 중요한 코스였다. 마켓으로 가는 길은 우리가 그동안 걸었던 길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약간은 지저분하고, 약간은 정신없는 진짜 삶이 묻어나는 것 같은 거리. 그래도 즐거웠다. 그렇게 또 30분이 넘도록 걸어 도착한 마켓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1층을 몇 바퀴씩 돌며 신기한 식재료들을 구경하고, 주변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샀다. 예쁘게 포장된 파프리카 가루와 전통 과자 같은 것을 사고 나니 금방 배가 고파져서 2층에 위치한 군것질 거리를 파는 점포를 찾아가 랑고쉬를 먹었다. 남아 있는 자리가 없어 내가 먼저 가서 자리를 맡아두겠다고 하며 이것저것 올리면 너무 달 것 같으니 적당히 고르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남편이 들고 온 랑고쉬 위에는 딸기와 초콜릿, 생크림 등 다양한 토핑이 올라가 있었다. 잔소리를 하려던 차에 남편의 등 뒤를 지나치는 다른 관광객들의 랑고쉬에는 더 많은 토핑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나름 자제한 거였군. 정신이 번쩍 들게 달달한 랑고쉬를 나누어 먹고, 세상에서 가장 예쁜 맥도널드를 찾아 떠났다.


배는 불렀지만 호그와트를 연상케 한다는 맥도널드는 꼭 가보고 싶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들어선 기차역 옆의 맥도널드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커피나 한 잔 하고 나가려다가 처음 보는 맥플러리가 있어 둘 다 맥플러리를 시켰다. 긴 줄을 기다린 끝에 점원에게 받아 든 맥플러리를 그 자리에서 놓쳐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두 바퀴쯤 회전한 맥플러리가 멋있게 착지하듯 탁, 하고 중심을 잡고 바르게 서서 우리 뒤에 줄을 서있던 사람들에게 웃음 섞인 박수를 받았다. 별 일이 다 있네. 킬킬 웃으면서 맥플러리를 먹으면서는 역시 후회했다. 너무 달아. 그렇게 단 맛도 남편과의 추억이라 생각하니 좋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dm에 들러 주변에 나누어 줄 선물을 샀다. 그레이트 마켓 홀과 dm에서 산 선물로 양 손이 무거워 다시 숙소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숙소 바로 앞의 국회의사당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가서 한참 사진을 찍고 놀았다. 내가 남편의 사진을 열과 성을 다해 찍어주고 있으니 주변에 있던 관광객들이 내게 사진을 부탁했다. 한 명, 두 명, 부탁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남편을 찍어주듯 최선을 다해 찍어줬고, 그들이 nice picture, perfect! 하고 반응하는 걸 보고 다른 관광객들, 커플들이 내게 계속 사진을 부탁했다.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여덟 팀의 사진을 찍어주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나도 모르게 허허허, 하고 웃었다. 순간 주변에서 나를 구경하던 사람들, 내게 사진을 부탁해도 될까 쭈뼛거리던 사람들 모두가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딱 한 커플의 사진을 더 찍어주고 손을 흔들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남편이 여기 와서 사진작가나 하지 그러냐고 놀리는 말에도 기분이 좋았다.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슬슬 걸어 마트로 향하는 동안 내내 신이 났다. 나는 남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게 너무 좋아. 남들 웃겨주는 게 너무 좋아. 아까 봤지? 사진 찍어서 돈을 벌거나 작가를 할 실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내 덕분에 웃었잖아. 그럴 때 진짜 신나. 종알종알 계속 자랑을 늘어놓자 남편도 맞장구를 쳤다. '나도 네가 네 덕분에 남들이 웃었다고 좋아하니까 좋다. 그런 데서 행복을 찾으니까 좋다. 너무 예쁘다.' 그 말엔 기분이 더 좋아졌다.


어제는 난데없는 싸움으로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마트 앞은 평화로웠다. 맥주와 하몽, 아침으로 먹을 요거트 같은 걸 사서 숙소로 돌아와 신나게 떠들다 잠이 들었다. 더 필요한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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