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두고 온 곳에 남편을 데려갔다 (9)
*2016.10.05. Wednesday.
눈을 떴을 때 가장 선명하게 느껴진 감각은 개운함이었다. 분명 어제도 이유 모를 긴장을 품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짐만 겨우 싼 뒤 쓰러지듯 잠들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 가뿐한 걸까. 침대에 누워 떠나온 뒤로 가장 가볍게 느껴지는 팔과 다리를 휘적거렸다. 돌아가는구나. 벌써. 이렇게나 빨리. 한 달을 잡고 떠나온 여행에서 고작 일주일을 보낸 뒤 도망치듯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일찍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더라. 그게 정말 도망쳐야만 했을 만큼 무서운 일들이었나. 귀국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그제야 약간의 후회가 피어났다. 귀국 편을 당기기까지 정말로 많이 고민했었나?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두려움이라는 바다에 엎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면서 숨을 못 쉬겠다고, 살려달라고 외친 꼴이 아니었을까. 되짚어보면 순간의 선택이었다. 오늘 같은 컨디션이라면 며칠쯤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익숙해진 프라하에서 일주일쯤 더 머무른다면 그대로도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여기서 슬로바키아로 떠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쉬움에 수많은 만약을 상상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오늘의 산뜻함은 곧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몸을 일으켜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입고 있던 잠옷을 벗어 어젯밤 미리 싸 둔 짐 위에 올려두고 캐리어를 닫고, 오늘 입기 위해 방 한편에 꺼내 두었던 편안한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오랜 비행이 예정되어 있기에 화장은 하지 않았다. 시계와 휴대폰, 충전기 등 자잘한 짐을 챙기고 나니 깨끗하게 비워진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를 버리고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떠나왔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게 되네. 들어올 때와 같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방을 둘러보다 문을 닫았다. 전과 같네. 누군가 머물다 갔는데 그저 처음과 같네. 계단을 내려가면서는 내 마음이 내가 머물다 떠나는 방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과 같이 깨끗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미련이나, 슬픔이나, 상처 같은 건 모두 짐 싸서 들고 좀 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호스트는 키를 숙소 앞 화분 아래에 넣어두는 것으로 간단히 체크아웃을 진행하자고 했다. 비행기를 타러 떠나기 전까지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마지막으로 블타바 강변을 산책했다. 이어폰을 꽂고, 흘러나오는 노래의 리듬에 발을 맞추어 빠르게, 또 천천히 걸었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들을 모두 내다 버리고 싶어 떠나온 여행이었다. 떠나올 때는 자각하지 못했을지라도 지금은 알았다. 내 안에 쌓인 것들을 모두 흘려보내고 싶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입은 상처도,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아 억울하고 속상했던 마음도, 주변 사람들의 때 아닌 관심과 동정도. 그 모든 걸 오롯이 내 그릇에 담을 수 없어 도망쳤지. 그리고 온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비워냈을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창공에서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며, 어느 공원에 앉아 쓴 바람을 맞으며 무엇을 덜어냈을까.
잃은 것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았지만 얻은 것을 생각해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받아들였다. 시끄러운 소리의 파동을 그린 것처럼 날카롭게 요동치는 감정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좋을 땐 그저 괜찮아졌다고 기뻐하고, 바닥을 칠 때는 또다시 우울에 지고 말았다며 슬퍼하던 과거와는 달리 기분의 고저를 직시하고 그 이유를 고민했다.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던 우울과 불안의 출발선을 찾아갔다. 내가 넘지 못하고 쓰러뜨린 허들을 다시 확인했다.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아득히 먼 곳을 더듬는 것만 같았던 정신의 감각이 예리해졌다. 그리고 추락했다. 끝을 모르고 며칠을 추락하면서도 마냥 울지만은 않았다. 도망치면서도 끝까지 생각의 흐름을 붙들고 결을 짚으려 노력했다. 지금 나는 현실적이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곱씹을 필요 없는 일을 곱씹고 두려워할 필요 없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그건 분명한 변화였다.
파혼 소식을 알렸을 때, 많은 사람이 내게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 모두 지나갈 거야. 괜찮아질 거야.'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싫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느껴야 할 아픔은 어떻게 견디라고. 옷깃이라도 잡고 끌고 가고 싶은데, 시간이 꿈쩍하지 않는 것 같은 이 기분은 어떡하라고. 내 몸에 덕지덕지 붙은 절대 괜찮아지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을 안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라는 거야? 마음에 난 흠집은 사람들의 위로를 곡해했다. 걱정하는 이들의 말이 꼭 구간반복처럼 들렸다. 내게 딱히 해줄 말이 없으시군요. 접할 일이 별로 없었던 파혼이란 사고에 대해서는 딱히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계시군요. 네 아픔엔 달리 방도가 없다는 말을 돌려 돌려 하고 계신 거군요.
여행을 떠나오고서야 '시간이 지나면'이라는 너무나 당연해 무실해 보이는 가정이 붙은 위로의 의미를 깨달았다. 흐르는 시간에 가만히 타고 있으라는 말들이 아니었으리라. 저절로 나으리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리라. 군더더기처럼 붙은 마음의 짐들은 내가 떼어내야 했다. 무엇이 나를 지킬 가시이고 무엇이 성장을 방해할 곁가지인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잘라내야 했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뒤돌아보지 않는 것으로.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나를 돌보라는 조언이었다.
블타바 강변에 서서, 나는 내 안의 우울을 공처럼 뭉쳐 강물에 던져버리는 상상을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괜찮은 척 많은 것을 참아오느라 생긴 상처들도 모두 파내어 강물을 향해 던졌다. 피가 좀 나고 살점이 뜯겨도 새 살이 돋는 게 나아. 너무 아플까 두려워 지레 겁먹고 이 더러운 상처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보다 지금 충분히 앓는 게 나아. 매일 흉터를 들여다보며 언젠가 또 상처 받을 일이 생기진 않을까, 그때는 얼마나 아플까 상상하는 것보다 내 손으로 모든 걸 덜어내는 게 나아. 나는 여기다 이걸 다 버리고, 이제 다 잊어버리고 잘 살 거니까, 너도 잘 살아. 평생 그렇게 잘 살아.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캐리어를 끌고 나와 화분 아래 키를 넣고 지하철을 향해 걸었다. 남은 것 없이 빈 방을 두고 돌아가는 것이 홀가분했다.
*2019.10.11. Friday.
주말을 껴서 누릴 수 있는 휴가가 10일이라면 10일을 꼭 채워 놀고 일요일 밤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짜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토요일 오전 일찌감치 서울에 도착해 일요일엔 빨래를 하고, 월요일엔 피곤하지 않게 회사로 향하는 사람이었다. 비슷한 구석이 많은 만큼 다른 점도 많은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럴 때는 조금 서운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데. 동유럽이 너무 좋은데 하루 빨리 떠나야 한다니. 괜한 아쉬움에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국회의사당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 풍경은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다음 3년 후에는 어디에 있을까.
떠나오기 전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우울이 가장 짙었던 시기에 찾았던 곳을 남편과 함께 다시 여행한다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남편은 아팠던 과거를 행복한 기억으로 덧칠하러 가는 것뿐이라며, 아무래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걸 곧이 곧대로 믿어도 되는 걸까. 그의 마음에 이것이 단 한 톨의 상처로라도 남는다면, 그건 정말 싫은데. 못할 짓인 것 같은데. 게다가 이번 여행은 남편의 생일을 끼고 있잖아.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지금 여행하기 딱 알맞은 곳이라도 과연 우리의 선택이 옳은 것일까.
마음 무겁게 떠나온 곳에서 나는 지난 일을 거의 떠올리지 않았다. 과거를 곱씹었다고 해봤자 '이전에 왔을 땐 뭘 먹은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정말 말랐었던 것 같은데, 잠을 잘 자지 못했던 것 같은데' 같은 피상적인 기억들을 되짚어 보았을 뿐, 그때의 불안과 우울은 상기하지 못했다. 내가 꺼내보았던 것은 오히려 남편과의 과거였다. 3년. 고통스러웠던 딱 3년 전의 상처를 옅어지게 한 사람. 다른 감정을 가리던 우울과 불안을 희미하게 한 따스한 남자. 짧은 시간에 나를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나가게 한 내 배우자. 내가 생각했던 것은 오로지 그와의 지난날과 앞날이었다. 마음에 감사가 가득 찼다.
언제나처럼 큰 짐은 미리 다 챙겨둔 남편은 먼저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길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속도를 내 얼른 채비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우리에게는 언제고, 몇 번이고 도망쳐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었다. 꼼짝없이 함께해야 할 공간이 있었다. 든든하고 따뜻한 내 영혼의 동반자가 나를 기다리는 곳.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단단한 사람이 기다리는 내 집. 그곳으로 두 손을 맞잡고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는 길엔 언젠가 다시 떠날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엔 정말로 터키와 그리스를 갈까, 아니 호주를 가볼까, 도시를 좋아하는 오빠에겐 뉴욕이 더 좋은 여행지일 것 같은데. 언제가 될지 모르는 막연한 다음의 여행을 상상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든든히 채운 배를 두드리며 하루에 3만 보를 걷고, 다른 이들의 선물을 사겠지. 기다려서 입장해야 하는 곳엔 절대 들어가지 않고 겉핥기 식으로 대충 여행을 했으면서도 행복하다 여기겠지. 그런 우리의 삶이 계속되겠지. 안락한 행복이 지속될 것이란 믿음에 불안은 사라졌다. 이제 내 앞의 안개는 오지 않은 시간이 뿜어내는 옅은 미지의 숨결일 뿐이었다. 불안도, 우울도 아니었다. 내게 남은 것은 오직 미래. 가지 않아 알 수 없는 곳에 대한 기대. 다시 찾아올 게 분명한, 살아있다면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뒤섞인 그 어떤 것이었다. 우울이 없는 삶이었다.
비행기는 서울을 향했다. 언젠가 버리고 도망쳤던 땅. 그곳에 내 삶이 있었다. 내가 딛고 사는 현실. 우울은 그곳에 모두 두고 온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선명해진 내 삶을 잘 가꿔야 했다. 더 열정적으로 색칠하고, 더 깊이 냄새 맡고, 더 단단히 빚으리라. 언젠가 다시 드리울 안개를 걷어낼 힘을 기르리라. 그것이 이제부터 내가 해야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