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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Dec 24. 2020

바로 그 사람을 찾은 걸까

우울을 두고 온 곳에 남편을 데려갔다 (4)


*2016.09.30. Friday.

어김없이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프라하에서의 일정을 정리하고 오후에 체스키 크룸로프로 떠나기로 한 날이었다. 앞으로의 여행 일정 내내 이렇게 일찍 깨어나는 건 아니겠지. 억울한 마음에 다시 눈을 감아봤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마땅히 할 일도 없어 프라하 성 입구 아래의 스타벅스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몸을 일으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린 곳이라 어느새 익숙해진 프라하 호텔에서의 준비가 오늘로 마지막이었다. 방문을 닫고 들어오면 차갑고 습한 동유럽의 공기가 완벽히 차단된 듯 포근해서 좋았는데. 따듯한 물에 밖에서 묻혀 온 불안을 다 씻어 보낼 수 있어 좋았는데. 다음 숙소들에서도 이렇게 아늑하고 따듯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아쉬운 마음에 준비를 마치고도 침대에 누워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어차피 체크아웃 전에 한 번, 맡겨둔 짐을 찾으러 또 한 번, 적어도 두 번은 다시 들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진한 아쉬움에 몇 분을 뭉그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호텔을 나서 만난 날씨는 환상적이었다. 청명하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랗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됐다. 새벽녘, 한쪽에선 별이 반짝이고 한쪽에서는 해가 떠오르는 꿈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참 사진을 찍다가 발을 옮겼다. 몇 번이고 걸어 낯익은 길을 천천히 걸어 오르자 금방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니트만 가볍게 걸치고 서늘한 아침 공기를 뚫고 올라왔더니 살짝 땀이 났는데도 몸이 차가웠다. 아침 겸 겸사겸사 따듯한 라떼를 한 잔 시켜두고 일기장을 펴 어제의 감정들을 정리했다. 일기 쓰기를 마치고선 여행 중 틈틈이 기록해 둔 짧은 감상들도 다시 읽어보았는데 긍정적이고 밝은 이야기가 잔뜩 쓰여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여행 중 갈무리해 둔 생각 결이란 것이 없었다. 들떴다 가라앉았다, 평온했다 지쳤다 하며 이리 치우쳤다가 저리 치우쳤다가 하는 감정만 확인한 꼴이라  슬펐다. 아직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구나. 여행을 떠나왔다는 것만으로 며칠 만에 좋아질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걱정거리들에서 멀리 도망치는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편해지길 바랐던 건 사실이었다. 마주한 현실은 이 아니라 정말로 현실일 뿐이라, 영 녹록지 않았다. 이래선 여행 온 의미가 있나. 아쉬워 몇 번을 다시 읽다 보니, 그래도 조금은 달라진 내 모습이 보였다. 프라하에 도착한 날, 공항 근처 숙소에서 울며불며 썼던 일기와 스카이다이빙 이후 적어두었던 짤막한 감상들 사이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이제 불안과 우울 이외의 다른 감정들도 깊게 느껴지는 것 같아. 뇌 속에 불안이 안개처럼 가득 차,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는 부분들이 마비된 것 같았던 느낌은 사라졌다. 행복해서, 좋아서 죽을 것 같은 순간은 없었어도 뿌옇게 끼어있던 불안과 우울은 동유럽의 차가운 바람에 흩어지며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내려다보는 프라하 시내의 뷰는 오늘도 예뻤다. 이국적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붉은 지붕들이 낮게 내려앉아 차분한 느낌을 줬다. 시간이 지나며 맑았던 하늘에 살짝 구름이 끼기 시작해 분위기를 더했다. 느긋하게 창 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다가, 카페에 온 지 겨우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충격이었다. 녁 7시쯤 프라하를 떠나 체스키 크룸로프로 떠나는 버스를 타기로 했기 때문에 남은 시간 아주 넉넉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언제나의 여행에서와 같이 급한 성격 때문에 계획했던 일정 중 대부분을 이미 소화해버린 상태였다. 여행 책자가 소개하는 남은 관광지들은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고 딱히 할 것도 없어서 시간을 죽일 겸 책을 읽기로 했다. 원서를 읽고 싶어 챙겨 온 '마션'은 생각보다 통통 튀고 반짝거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더듬더듬, 사전을 뒤져가며 원서를 읽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 체크아웃을 할 때가 다가왔다. 내려 앉은 구름이 조금 더 짙어진 프라하를 오래도록 바라봤다. 언제쯤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때는 내 마음이 아니라 이곳의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을까. 천천히 짐을 챙겨 숙소를 향해 걸으면서 마음속에 차오르는 아쉬움을 꾹꾹 삼켰다.


숙소로 돌아가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겼다. 짧게 남은 시간 동안 뭘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페트로진 전망대를 산책하기로 했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폴킴의 '꿈'을 들으며 강을 건넜다. 가을 공원과 잘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선율과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지만 가사는 아팠다. 걷다가 마주친 벤치에 앉아 앞으로 생각할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혼자서 떠나온 탓에 나 자신과 이미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눈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정작 지금 내가 더듬어봐야 할 것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겐 방향이 중요했다. 행복으로의 방향. 힘든 이 시기가 끝나고 나면 나는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할. 무엇을 향해 가야 할까.


행복이라는 게, 그 순간의 내게는 꽤 중요했다. 집착하면 할수록 불행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불행한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었다. 내가 믿었던 사람은 이미 나를 배신했고, 결국 파혼을 했고, 주변에 그게 다 알려졌다. 장난처럼 이번 생은 망했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망한 것 같은 이 인생을 복구할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죽어서 없어지거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만이 답인 것 같았던 나에겐 이 불행에서 한 발짝이라도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이 간절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발을 옮겨야 하지. 방법을 모른다면 방향이라도 알고 싶었다. 나아질 구석이 없는 것 같은 삶 중에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몇 년의 상담을 통해 내 자신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늘 외로운 사람이었다. 외로움은 나의 본질과도 같았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그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서도 자주 외로웠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감정이 내 속을 부대끼게 만들 때면 나는 구석을 찾아 조용히 혼자 울었다. 그렇게 울고 운 뒤 폭풍이 겨우 가라앉으면 그때야 친구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외로울 때 어떻게 해? 나만 이 외로움에 질식 당해 죽을 것 같은 거야? 도대체 어떻게들 견디는 거야? 내 질문에 친구들은 뭐가 그렇게 외로운지 잘 모르겠다며, 우리가 있는데 왜 그렇게 힘들어하냐며 나를 달랬다. 그때 알았다. 세상살이, 나만 힘든 게 아니라고들 하기에 남들도 다 나처럼 외로운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나는 혼자라 외로운 게 아니라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외로웠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로도 충분히 행복해야 한다고 했다. 단단한 사람이 되어 서로 과하게 의지하지 않으며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게 건강한 연애고 사랑이라고들 했다. 혼자서도 괜찮아, 취미를 가지고 혼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해,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면서도 그들은 타인이라는 걸 인정해야 해. 가볍게 이야기하는 그들은 외로움이라는 건 마음만 먹으면 지워낼 수 있는 감정이라 말했다. 그들에게 외로움은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노력만 하면 그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만사에 예외가 있듯, 나는 그 문장들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외로워서 괴로웠고 외로워서 불행했지만 나라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죽지 않고서야 더 이상 외롭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전망대 근처를 산책하며 뺨에 닿아오는 바람을 느끼는 건 분명히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외로웠다. 주 혼자 취미를 즐겼고, 자주 혼자 여행했고, 자주 혼자가 되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지만 외로움은 늘 곁에 있었다. 외로움은 내게서 절대 떼어낼 수 없는 무언가 중 하나였다. 그게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있었다. 반듯이 서서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나도 외로움이었고, 흔들리며 중심을 잃는 나도 외로움 그 자체였다. 내가 간절히 바랐던 건 그런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었다. 누군가 곁에 있어도 삶이 계속되는 동안은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딱 하나쯤은 있길 바랐다. 그런 이조차 내 외로움을 없애줄 수도, 외로워서 겪는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도 없다는 걸 잘 알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그럴 수도 있다'고 품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이 끝끝내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평생 이렇게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고 싶지는 않아. 무어가 그렇게 외롭냐며 나를 달래는 사람들 속에서 말 못하고 끙끙 앓고 싶진 않아.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남자든 여자든, 애인이든 친구든, 누구든 상관없었다. 나의 흔들림 앞에 굳건히 견뎌줄 가까운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처음 품은 의문은 그대로였다. 과연 계속 내가 원하는 모습을 한 타인을 갈망한다는 게 옳은 방향일까.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행복해질까? 그럴 것 같기도, 아닐 것 같기도 했다. 내가 행복으로 나아가는 데에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건, 다른 사람에게 내 행복의 계기판을 조작할 수 있는 키를 내어주는 것 같아 불안해졌다. 그건 나만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했는데,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인데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나를 또 불행의 가능성으로 이끄는 것 같아 괴로웠다. 내가 누군가 없기에 불행했던가. 내 곁의 누군가가 나를 불행하게 만든 건 아니었나. 질문의 답을 다 알 것 같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결국 내 발아래로 뻗쳐 나의 뿌리가 된 외로움을 잘라내고 나동그라지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나. 아니면 애초에 그런 것 따위 없는 척, 감추고 살아야 하는 걸까. 그 외로움이란 정말로 없어지지 않는 내 본질이 맞을까?


생각하는 것이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언덕배기에서 바람을 한참 맞고 있으니 으슬으슬 추워지기도 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숙소로 가는 길에 있는 아무 카페에나 들어갔다. 따듯한 라떼를 마시자 숭숭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현실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지금의 내게 닥친 건 아주 선명하게 예상되는 고행길이었고, 그건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체스키 크룸로프로 가는 방법은 꽤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프라하 역까지 가 flix 버스 등 대형 버스를 이용하거나, 각 숙소 앞까지 픽업을 오는 Bean shuttle처럼 작은 카니발을 이용하는 방법이 대표적이었다. 나는 긴 여행을 준비하고 왔기 때문에 짐이 꽤 무거워서 Bean shuttle을 예약했는데, 또 나쁜 기억이 나를 괴롭힐 것 같아 두려웠다. 작은 밴을 타고 스카이다이빙을 잘 다녀왔으니 괜찮을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방금 전 했던 무거운 생각들이 내 마음을 잡아 눌렀다. 어제의 행복하고 개운했던 기분 대신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불안이 오고 있어. 또 오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 맡겨두었던 짐을 찾고 셔틀을 기다렸다. 셔틀은 약속하기로 한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나타났고, 그 짧은 기다림 동안 이런저런 상상으로 내 긴장은 부풀대로 부푼 상태였다. 셔틀이 오지 않으면 어쩌지. 가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지. 도착해서 호텔을 찾지 못하면 어쩌지. 셔틀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내 마음은 그을음을 내며 타고 있었다. 셔틀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고 나서도 긴장은 가라앉지 않았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는 걸 느끼며 짐을 싣고, 셔틀에 올라탔다. 나를 포함해 4명의 승객이 오늘 밤 체스키 크룸로프로 향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내가 셔틀에 올랐을 땐 먼저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짧게 인사를 하고 운전석 뒤쪽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이어폰을 꽂고, 최대한 차분한 노래를 재생했지만 가슴은 계속 뛰었다. 불안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승객을 모두 태운 셔틀이 프라하를 떠나 속도를 내기 시작하니 바로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숨이 가빠오고, 무섭다는 것 외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바깥을 구경하려 했지만 속도감만 더 느껴질 뿐, 창밖의 풍경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참다못해 눈을 감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불안이 더 커졌고,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긴, 차니까, 내가 체스키로 가고 싶다고 했으니까 가고 있는 거 아니야. 필사적으로 되뇌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중간에 기름을 넣는다며 주유소에서 한 번 차가 멈췄을 때, 나는 얼른 밖으로 뛰어나가 바깥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움직이지 않는 땅에 발을 대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지만 곧 다시 출발이었다. 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며 겨우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했다.


셔틀은 픽업 때처럼 각자의 호텔 앞에 멈추어 승객들을 내려주었다. 저녁 9시, 숙소 코앞에 내렸는데도 밤이 늦고 어두워 괜히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체크인을 하러 2층으로 올라가니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셋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했음을 밝히고 남은 금액을 현금으로 지불한 뒤 방을 안내받았는데, 이건 도저히 사람이 잘 수 있는 크기의 방이 아니었다. 하루만 묵을 예정이라 위치가 괜찮지만 싼 곳을 예약했고, 그래서 공동욕실을 써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침대 하나가 세로로 겨우 딱 맞게 들어간 방 안에선 캐리어도 펼 수가 없었다. 일부러 1인실을 예약했는데 이게 뭐야. 좁은 방에 있으려니 가슴이 답답해 공용 주방으로 나가 잠깐 앉아있었지만, 이미 긴장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모르는 얼굴들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울고 싶다. 울고 싶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인터넷을 켜 근처에 남아있는 숙소가 있는지 검색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괜찮아 보이는 숙소가 있어서 바로 예약을 하고 짐을 끌고 다시 카운터로 내려갔다.


'미안한데, 나 오늘 여기서 못 잘 것 같아. 사진과 너무 다른 방이잖아. 그냥 체크아웃하려고 해. 가능한 만큼 환불해 줘.'


평소엔 불편한 상황이 생기는 게 싫어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컴플레인도 잘 걸지 못하는 스타일이었지만 그 방에서 자는 건 딱 하루라도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용기 있게 얘기했지만 속으로는 덜덜 떨렸다. 환불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그냥 포기하고라도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카운터에서 수다를 떨던 여자아이들은 체코어인지,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나를 노려보며 한참 동안 떠들었다. 울고 싶었지만 꾹 참고 기다렸다. 나를 세워두고 꽤 긴 시간 깔깔거리기도 하고, 나를 흘겨보기도 하던 아이들은 결국엔 내가 체크인을 하며 지불한 금액을 돌려주었다. 속으로 '해냈다!'하고 외치며 무거운 짐을 끌고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근처에 새로 잡은 방은 넓고,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개인 욕실도 있었다. 어린 시절엔 스페인에서 까미노를 걸으며 20명씩 자는 방에서도 잘 자고 그랬는데, 왜 방금은 견딜 수가 없었지. 너무 좁아서 불안했나. 아님 늙어서 몸이 불편한 건 참을 수가 없어졌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짐을 푸는 와중에도 체스키로 오는 동안, 체스키에 와서 겪은 불안이 가라앉지 않고 계속 마음을 어지럽혔다. 나는 방 한구석에 놓인 의자에 쓰러지듯 기대어 앉으니 밤 11시였다. 체스키. 너무 싫다. 도망치고 싶어. 밤에 와서 그런지 예쁜 것도 하나도 모르겠고, 오는 길도, 와서도 너무 힘들었어. 빨리 떠나자. 도망가자. 나는 무엇엔가 씐 듯, 새벽 5시 20분에 숙소 앞에서 나를 픽업해 빈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다시 한번 예약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난동을 부리는 내 불안이 너무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자는 둥 마는 둥, 잠을 설치고 4시 반에 일어나 다시 짐을 꾸렸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뒤뚱뒤뚱, 겨우 계단을 내려가 셔틀버스를 기다리는데 셔틀버스가 오지 않았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너무 춥고 힘들었지만 30분 정도 캐리어를 끌고 호텔 앞에서 서성였다. 혹시나 이쪽에서 오진 않을까, 저쪽일까, 내가 너무 멀리 가면 나를 놓치는 것 아닐까. 발을 동동거리며 돌아다니는 중엔 만취한 것 같은 유럽 남자들이 와서 선물이라고 어디서 뜯어 온 풀떼기 같은 꽃을 주며 쓸데없는 말을 걸어왔다. 지금이 몇 신데, 제발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혹시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대충 땡큐 땡큐, 나 영어 못 해, 하고 거짓말을 하니 혀도 다리도 꼬일 대로 꼬였던 놈들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너무 추운데. 왜 안 오지.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숙소 대문을 열고 들어가 대충 마련된 소파에 앉았다. 이미 체크아웃할 때 키를 넣어두는 통에 열쇠도 넣어버렸는데. 미치겠네. 셔틀버스 회사에 내가 예약을 했는데 버스가 안 왔어, 좀 알아봐 줘, 나 계속 기다리고 있어, 하고 메일을 보냈다. 30분쯤 지나 답장이 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네 예약이 누락됐어. 버스 기사는 국경을 넘어 떠났어. 미안해. 7시 40분까지 다시 너를 데리러 갈게. 물론 모든 비용은 환불해 줄게.' 황당했다. 황당했는데,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서글펐다. 프라하보다 훨씬 추운 날씨가 이미 낙담한 나를 더 가라앉게 했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며 한 시간을 더 기다려 셔틀버스에 탔다. 그리고 결심했다. 체스키.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2019.10.06. Sunday.

할슈타트로 향하기 위해 새벽같이 눈을 떴다. 잘츠부르크에서 할슈타트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리는 고민 끝에 그나마 조금 덜 걷고, 조금 편리한 방법인 버스를 타고 가서 기차로 한 번 갈아탄 뒤, 다시 배를 타고 할슈타트에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잘츠부르크 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일찍 가서 미리 줄을 서있지 않으면 줄이 잘려 타지 못한다는 후기가 많았어서 버스 출발 1시간 전에 잘츠부르크 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가며 먹을 젤리와 물을 좀 사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는데 이미 우리 앞에 한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바로 올 걸. 아쉬워해도 소용은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 할슈타트로 가는 버스가 왔고, 우리는 할슈타트에서 돌아오는 것까지 왕복 버스표를 사고 버스에 올랐다. 사람이 많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가는 길의 풍경이 잘 보인다는 왼쪽 좌석에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남아있었다. 기분 좋게 자리에 앉았지만 가는 동안 풍경은 별로 보지 못했다. 며칠 동안 강행군을 한 끝에 기절하듯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기차로 갈아타는 곳에 거의 다 와서야 겨우 눈을 뜬 나를 위해 남편은 차창 밖 풍경을 열심히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버스에서 남편이 찍어둔 사진을 구경하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기차를 기다렸다. 잠옷 바지를 여기저기에 널어놓는다는 것 빼고는 거의 단점이 없는 완벽한 나의 남편에게는 또 다른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사진을 더럽게도 못 찍는다는 점이었다. 사진 찍는 센스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사진은 엉망이었다. 구도는 고사하고 수평도 맞출 줄을 몰랐다. 나보다 한참 크면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진을 찍어 안 그래도 짧은 나를 더 짜리 몽땅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었다. 이곳저곳 장소를 옮겨가며 몇 번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확인하던 나는 조금 짜증을 내고 말았다. '나는 오빠를 모델처럼 찍어주는데, 오빠는 이게 뭐야! 옷을 예쁘게 입고 오면 뭐해! 사진을 이렇게 찍는데! 연습을 좀 해! 유튜브라도 보고 배워!' 모델처럼 키가 큰 남편은 모델처럼 나오고, 키가 작은 나는 짧아보이게 나오는 게 당연하지만 괜스레 성질이 났다. 몇 마디 잔소리를 하자 남편은 미안, 하고 기죽은 듯 말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미안해서 금세 사과를 했다.


'짜증내서 미안.'

'괜찮아. 사진 못 찍어줘서 미안. 다시 해볼까?'

'아니. 어차피 안 될 것 같아.'


쿨하게 포기하자 남편이 조금 웃었고, 나도 남편을 따라 웃었다. 티격태격하더라도 다툼이 길게 가지 않고 금방 풀리는 게 참 좋았다. 내가 갑자기 짜증을 내거나, 변덕을 부려도 바위 같은 남편은 언제나 그러려니, 했다. 짜증을 내면 곧 미안하다고 하겠군, 했고 아침에 먹고 싶다고 한 걸 저녁에 시켜주니 별로 안 먹고 싶다고 하면 하루 만에도 입맛이 변하는군, 하고는 말았다. 나는 내 모든 걸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그러려니 해주는 남편이 좋았다. 내가 너무 제멋대로라 남편이 떠나버리면 어떡할까 걱정했던 때도 있었지만 남편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나는 아닌 것 같으면 바로 그러지 말라고 말해. 괜찮다고 할 때는 진짜 괜찮은 거야. 지나가고 나서도 그 일이 다시 떠오르거나 하지 않아. 내가 힘들다고 할 때, 딱 그때만 멈춰주면 돼. 네가 그래 주면 나는 또 이제 됐다, 할 거야. 참다가 못 견디겠다고 갑자기 안 떠나고.' 없는 말은 안 하고, 있는 말은 다 하는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남편의 그 말에 어떤 속뜻이 있는 건 아닌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내 변덕에 힘겨워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는 대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렇구나. 남편 너는 그런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갑자기 사라지지 않겠다는 남편의 말을 믿었다. 그의 곁에서는 조금 불안정해도 괜찮았다.


지금이야 서로 죽고 못 살고,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천생연분, 찰떡궁합이었던 건 아니었다. 무난의 끝을 달리는 성격의 남편은 가끔 기민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상대가 가장 상처 받지 않을 방법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터라, 남들도 다 그러리라 생각했던 나는 남편의 직접적인 화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배려라는 명목으로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지 않고 꾹 참고, 남편은 대부분의 순간은 괜찮다가 어쩌다 한 번 기분이 상하곤 했기에 자주 다투지는 않았지만 다툴 때마다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고 좌절해야 했다.


연인 간의, 그리고 부부간의 다름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미 각자 30여 년을 살아오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수없이 마주치고, 그들과의 삶에 수없이 단련되었을 두 사람이 함께하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차이들이 전혀 당연해 보이지 않았다. 가장 비슷해야 할 두 사람이 다르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너를 이해할 수 없어. 비난보단 오히려 사실 적시에 가까운 그 말이 왜 그렇게 아팠을까. 비슷한 줄 알았던, 그래야만 할 두 사람이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의 실망은 각자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에 아파한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할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는 우리가 다툴 때마다 헤어짐을 말했다. 한 번 관계를 완전히 망쳐봤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에 모든 걸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반, 이미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기에 모든 걸 지우고 다시 깨끗하고 완벽한 사랑을 쓰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다투며 보여준 내 모습이 그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어서 아름다웠던 시절만 추억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슬펐다. 한 번 실패해 봤으니까, 다시는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지 못할 바에는 헤어지자는 내 말에 남편은 앞으로를 이야기했다. '자꾸 뒤만 보지 마. 네가 화내는 모습을 봤다고 너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너에게 실망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우린 실패 안 해.'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관계에 대해서는 확실히, 처음이었다. 실패하지 않는다고? 난 누군가와의 관계가 언제든 어그러질 수 있을 것 같고, 그게 두려워 미치겠는데. 어째서 우리가 실패하지 않는다고 확신해? 그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거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믿을 수 있어? 그는 계속 불안해하는 나를 안고 다독였다. '몰라. 근데 실패 안 해. 완벽할 순 없어. 앞으로도 다투겠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계속 생길 거야. 그렇다고 해도 그건 실패가 아니야. 그리고, 다투는 그 순간에도 난 널 사랑하니까 제발 쓸 데 없는 걱정 좀 하지 마. 네가 혼자서 나를 미워했다, 사랑했다, 그러지. 난 안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안에 겹겹이 쌓였던, 그래서 한 번에 들어내버릴 수도 없었던 내 불안이 녹아내렸다. 그의 단단했던 그 말이 나를 우울의 수렁에서 건졌고, 여기까지 끌고 왔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남편은 정말로 한순간도 변하지 않고 그 말의 의미를 지켰다.


할슈타트 선착장으로 가는 기차는 작고 귀여웠다.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 모두가 그 기차에 올랐고, 강이 흐르고 소들이 들판을 뛰노는 평화로운 풍경 속을 얼마 달리지 않아 선착장에 도착했다. 역 바로 옆에 붙어있는 선착장이야말로 정말 작아서,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은 반 강제로 옹기종기 모여 배를 기다렸다. 키가 커서 멀리까지 내다보이는 남편은 경치가 너무 예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그 말을 계속 듣고 있으니 사람 머리 위로 조금 보일 뿐인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반짝이는 호수를 조금, 인파 위로 고개만 빼꼼히 내민 것처럼 보이는 호수 건너 건물들을 조금 구경하고 있자 반대편에서 작은 배가 호수를 가르고 건너오기 시작했다. 차례를 기다려 배에 오르고, 호수를 건너 할슈타트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보았던 것처럼 할슈타트는 너무나 예뻤다. 호수를 품은 게 아니라 호수의 품에 안긴, 작고 아기자기한 마을. 눈 앞에는 호수를, 등 뒤로는 산을 펼쳐놓고 사는 할슈타트 사람들이 부러웠다. 작은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고, 경치 사진을 수도 없이 찍었다. 꼭 1박을 해야 한다고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일정 상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밖에 없는 게 무척 아쉬웠다.


그러나 할슈타트는 작았다. 그 아름다운 마을도 성격 급한 사람 두 사람이 둘러보니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가 금방이었다. 거리를 배회하던 우리는 인터넷에서 봤던 소금광산 후기를 떠올렸다. 가족들이 둘러보기 좋은 관광지라고 쓰여있기도 했고, 혼자 왔으면 굳이 시간을 들여 하지 않았을 체험이라 고민하고 있으니 남편이 재밌을 것 같다며, 시간도 많은데 한 번 해보는 게 어떻냐고 계속 나를 꼬셨다. 하긴, 여기서 딱히 할 것도 없지. 해봤자 호수 옆에서 밥 먹고 카페 가는 것 정도인데, 배도 고프지 않았다. 나는 잠깐 시간을 계산해 봤다. 돌아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까지 넉넉히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소금광산 케이블카와 관광이 포함된 표를 끊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가자 아름다운 할슈타트 풍경이 더 잘 보였다. '오길 잘했지?' 뿌듯하게 묻는 남편에게 고개를 마구 끄덕여줬다. 탁 트인 풍경 앞에서 사진을 찍고, 천천히 걸어 소금광산을 체험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체험 콘텐츠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내부 체험을 위해 갈아입어야 하는 옷도 귀여웠고, 설명도 풍부했으며, 중간중간 이동을 위해 탔던 미끄럼틀이 생각보다 빨라 재미있었다. 광산 투어를 할까 말까 고민했던 것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별 것 없을 것 같았던 소금광산에서의 체험을 즐겁게 마치고, 기분 좋게 마을로 내려와 기차역 근처에서 점심으로 작은 버거를 사 먹었다. 배가 고팠는지, 특별한 게 들어가지도 않은 버거가 그렇게 맛있었다.


돌아오는 길도 같은 코스를 택했다. 호수를 건너 기차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급류라고 불러도 전혀 넘치지 않을 굽이치는 강을 따라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평온함을 느꼈다. 부서지는 물거품과 구름 사이를 뚫고 내리는 햇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늘어선 통나무집들과 근심 없이 풀을 뜯는 소들. 계속된 이동에 지친 마음이 그 풍경으로 치유받는 듯했다. 기차역에 내리니 날이 저물며 기온이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 떨다 버스에 탑승하니 따듯하고 텁텁한 공기가 또 졸음을 불러왔지만 이번에는 풍경을 보기 위해 꿋꿋이 버텼다. 기차 안에서 본 것보다 더 평화로워진 풍경이 펼쳐졌다. 드넓은 들판에 풀을 뜯는 소들. 천천히 거니는 마을 사람들. 평화롭다. 평화로운데 졸리다. 며칠 일찍 일어난 탓인지 계속 잠이 와서 어느 순간 풍경을 포기하고 깜빡 잠이 들었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할 때쯤엔 배가 매우 고팠다. 생각해보니 작은 버거 빼고는 아침부터 별로 먹은 게 없네. 미리 찾아두었던 식당에 가서 학센과 슈니첼을 시켜 배가 터지게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내일은 또, 빈으로 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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