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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Dec 10. 2020

프라하에 먹을 게 이렇게 많았나

우울을 두고 온 곳에 남편을 데려갔다 (2)


*2016.09.28. Wednesday.

여행 첫날부터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잠들었지만,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조금 환기되었다. 지난밤 느꼈던 피곤에 비해서 가뿐하게 눈이 떠졌고, 커튼을 걷고 내려다본 호텔 정원이  예뻤다. 어제 호텔  안에 쪼그려 앉아 울던 나는 오늘부터 시작될  여행을 그만두고 싶었는데. 혼자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두렵고 외로워 당장 돌아가고 싶었는데. 아침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햇볕을 받으며 정원을 구경하는 동안, 괴로웠던 간밤에 비해 몰라보게 차분히 정리된  마음을 들여다보며 잠이란 도대체 얼마나 좋은 약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평화로운  순간이 지나고 나면 금방 나를 덮쳐올 불안에 대해 미리 겁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불쑥 찾아올 불안에 대비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호텔 조식이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평소에 먹던 것보다 아침을 훨씬 많이 먹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시내로 가는 공항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동안 적어둔 호텔 가는 법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구시가의 공화국 광장이 있는 Masarykovo Nadrazi 역에서 내려서 테스코가 있는 Narodni 거리에서 22번 트램 승차, Malostranske namesti 역에서 하차 후 호텔까지 걸어가기. 배낭여행이 처음도 아니었고, 길 찾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지난밤 호텔을 찾아 고군분투하던 걸 생각하면 괜히 걱정이 되고 긴장이 됐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지쳐서는 안 돼. 잘 이겨내야 해. 뭔가를 이겨내기엔 부족한 컨디션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점점 다운되는 기분을 억지로라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런 주문 같은 말이라도 계속 중얼거려야 했다. 조금 더 여행 온 기분을 내보면 나아지려나 싶어 로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예쁘게 꾸며진 호텔 로비의 사진도 찍었다. 구석구석의 장식 사진을 찍는 내게 Hi, 하고 친절하게 인사를 보내며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보니 이제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왔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프라하에 있을 동안 묵을 호텔을 찾는 건 긴장했던 것치곤 어렵지 않았다. 시내로 오는 동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너무 예뻐서 마음이 들떴고, 트램에서 내려 호텔까지 걸어가는 길이 예뻐서 더 신이 났다. 처음 본 동유럽 건물들은 울퉁불퉁한 돌바닥에 캐리어를 끄는 것도 힘들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서유럽과는 다른 어딘가 외벽의 깊은 색이 가을과 잘 어울렸다. 예상보다 춥지 않은 날씨도 나를 웃음 짓게 했다. 니트에 가디건 하나면 충분한 날씨. 선선한 바람을 쐬며 걷는 길이 좋았다. 좀 덤벙대지만 지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보는 나는 척척 길을 찾아 내가 묵을 작은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아래에는 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2층에 위치한 방을 배정받아서, 숙소를 드나들 때마다 불안이 덮쳐올지 모른다는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건물 구석에 위치해 사다리꼴로 생긴 방에 짐을 올려다 놓고 간단히 채비를 해 시내 구경을 나섰다. 예쁜 건물들과 좋은 날씨에 한국에서 앓던 우울증 증상에 비해 지나치게 마음이 들떠 스스로가 어색했다.


호텔 위치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이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로 유명한 시계탑이 있었고, 거기서부터 또 조금 걸으면 까를교였다. 나는 까를교를 건너지 않고 블타바 강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도시의 풍경을 음미했다. 오래된 건물들이 내뿜는 분위기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저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천천히 흐르는 강과 로맨틱한 장식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세상 처음 경험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에서 풍기는 로마의 매력과 트램이 지나는 통일성 있는 베른의 모습을 적당히 합쳐놓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걷다가 다시 몸을 돌려 까를교를 향해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강둑 한편에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행객이 보였다. 나도 이번 여행에선 딱히 할 일도 없고 시간이 많으니 저렇게 여유롭게 여행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유명한 까를교는 벽돌들로 인해 검고 어두우면서도, 곳곳의 장식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완공된 이후로 600년 동안 한 번도 유실된 적도, 붕괴된 적도 없는 견고한 교량. 묵묵히 프라하를 지켜온 까를교는 그가 자리해 온 세월만큼의 무게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를교와 프라하 성을 한 프레임 안에 두고 서자 비로소 프라하의 얼굴을 마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울해 보일 만큼 짙은 톤의 벽돌 사이를 수놓은 금빛 장식들을 넋 놓고 구경하다가, 입구에서 사진을 찍는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다리 위로 올랐다.


까를교 위엔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 엽서나 포스터를 파는 사람들, 에스닉한 액세서리를 파는 상인들 등 다양한 좌판이 늘어서 있었다. 이미 단체 투어로 다리 한가운데 멈춰 서 이어폰을 통해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선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다리 위에 좌판을 구경하는 관광객들까지 더해져 제대로 속도를 내어 걷기가 힘들었다. 어느 쪽으로 카메라를 돌려도 여행객이나 좌판이 프레임에 걸려 사진 찍기를 포기한 나도 좌판 하나하나를 꼼꼼히 구경하며 걸었다. 의도한 아이쇼핑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이 몇 있었다. 프라하를 떠날 때쯤, 까를교를 다시 찾아 이 가운데서 가족들과 친구들의 선물을 골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인파에 떠밀리듯 까를교를 건넌 나는 프라하 성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꽤 경사진 오르막이었지만 중간에 마주치는 트램과 귀여운 간판들이 나를 이끌었다. 우울증 약의 힘으로 솟아난 거짓 기운으로 살아가고 있던 나는 힘든 줄도 모르고 언덕 꼭대기에 있는 프라하성까지 단숨에 걸어 올랐다. 이 절을 서며 기다려서까지 성 안을 구경하고 싶지는 않아 성 입구가 위치한 높은 언덕 위에 서서 시내를 내려다봤다.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붉은 지붕들은 언덕 아래에서 보았던 프라하의 우울한 분위기를 잊게 할 만큼 따스해 보였다. 서울처럼 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다. 모든 걸 잊고 싶어 먼 곳까지 온 주제에 떠나온 곳과 비슷한 점을 찾고 있는 내가 우스웠지만 그 순간 강이 흐르는 그 모습이 내겐 위안이 됐다. 마치 블타바 강이 내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고, 사는 것은 누구나 비슷하니 내게 일어난 일에 너무 상처 받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마음에 눌어붙은 나쁜 감정들을 강에 모두 흘려보내는 상상을 하며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다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테이크아웃 해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 겨우 낮 열두 시였고, 좀 더 걷고 싶었다.


책에서 본 무슨 수도원의 산책로가 프라하 성 근처에 있었던 것 같았다. 책을 꺼내 위치를 찾아볼까 말까 고민하는 와중에 수도원의 이름이 쓰인 표지판을 발견하고 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성 뒤편의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은 호텔 근처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복잡한 구시가지보다는 조금 더 여유롭고, 진짜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잠들 것 같은 거를 위한 물들이 있었다. 얼마 걷지 않아 스트라호프 수도원 산책로에 도착했다. 공원처럼 꾸며진 산책로는 약간 언덕배기에 있었는데, 날씨가 좋은 때에 슬슬 걷기에 적당했다. 좋았다. 마음이 물흐물하게 풀어지는 듯 했다. 무심하게 흐르는 구름과 가을로 접어들며 푸르름이 사라지고 있는 숲의 모습, 주변에 위치한 식당 테라스에 앉아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외국인들까지, 이 모든 게 어우러져 이미 질려버린 노래를 듣고 있어도 좋을 만큼 감동적인 풍경이었다. 한참을 감탄하며 걷다가 시내가 잘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아 노트를 꺼냈다. 일기를 쓰기에 적당한 순간이었다.


'편안한 여행을 하고 싶다. 느긋하게, 지금처럼. 별다른 생각 없이, 계획 없이. 꼭 봐야 하는 것들, 가야 하는 곳들 없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대로 돌아다니고 싶다. 삶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하는 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없이 그냥 마음대로.'


몇 자 적고 나니 마치 어제의 고난은 없었던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여행 하루 만에 이 정도의 여유를 되찾다니, 기대하지도 않았거니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내 상태가 이상한 게 분명하다고 자각할 만큼 어색했다. 아무리 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내 삶을 가꾸어도 얻을 수 없었던 여유인데, 일상을 떠나왔다고 이렇게 가뿐한 기분이 는 게 자연스러운 걸까. 갑자기 찾아온 마음의 고요에 적응이 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가만히 앉아 평화로우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신경이 쓰이고 불편한 내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 상태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헷갈려 자꾸만 나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 감정 확신할 수 없었다. 어제는 울음이 터질 만큼 힘들었지만 오늘은 모든 게 좋아 최고라고 생각되는 하루. 오후에 할 게 없는데도 전혀 걱정되지 않는 마음. 들어가서 쉬다가 맥주나 한 잔 하면 어떨까, 그래도 충분하다 싶은 여행 첫날. 이게 정상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요동치는 내 마음의 파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는 분명 절망적이었다. 모든 걸 그만두려고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가장 힘들었을 때 습관처럼 그 사람이 생각났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사실이 그랬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 네 살 터울의 남동생을 둔 장녀로, 나처럼 우울증을 앓았던 엄마의 딸로, 가족에게 무심한 아빠의 자식으로 살아오는 동안 나는 기댈 곳이 없었다. 슬퍼도 혼자 울었고, 힘들어도 혼자 견뎠다. 누구에게도 내 짐을 같이 들어달라 떼쓴 적이 없었다. 그렇게 25년이 넘게 살았을 때, 그 사람은 내가 유일하게 믿어도 되는 단단한 나무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처음으로 믿고 의지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힘들어도 그에게 연락해서 여행을 떠나 왔는데 너무 어렵다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호텔도 못 찾겠다고, 나 어떡하면 좋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게 끔찍이도 외로웠다. 어젯밤엔 체력적으로도 지쳐서, 긴장이 풀려서,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서 한참을 울었다. 그런데 산책로 한편에 앉아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있는 지금은 그 사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좋은 걸 함께하고 싶은 건 가족들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고, 동생과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내 마음이 점차 그 사람을 정리하고 있다는 신호일까? 지할 누군가가 없어도 괜찮아지는 중인 걸까? 아니면 나의 무의식이 더 이상 내 마음이 상처 받지 않는 쪽으로 생각하도록 나를 조종하고 있는 걸까. 복잡했던 마음이 하루 만에 정리되고 있다는 게 이상했고, 이러다가도 곧 찾아올 게 분명한 불안의 해일이 걱정되기도 했다.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테스코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걷자. 걸어야 했다. 걸으면 생각이 조금은 줄어드니까, 혼란스러움도 줄어들 거야. 나는 빠른 속도로 강 건너를 향해 발을 옮겼다.


테스코에 들러서는 저녁과 아침을 위해 요거트와 주스, 과일을 조금 샀다. 1년이 넘도록 식욕을 잃은 상태였고, 조금만 먹어도 약 기운으로 생활이 가능했으므로 따로 식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고민하다가 맥주도 한 캔 함께 계산했다. 간단히 장을 본 뒤에는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오후 다섯 시 반. 조금 자고 이따가 야경을 보러 나갈까, 책을 읽고 쉬다가 나갈까 고민하다 어느새 기절하듯 잠들어서 새벽 3시쯤 깨고 말았다. 약을 챙겨 먹고 좀 뒹굴거리다가, 배가 고파 요거트와 방울토마토를 몇 개 집어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경탄과 내 안에 휘몰아치는 감정들에 대한 혼돈이 가득한 하루였다. 머리는 좀 아프지만, 나쁘지는 않은 여행의 시작이었다.




*2019.10.04. Friday.

부지런한 남편 덕분에 일찍 일어나 나갈 채비를 마쳤다. 주일 간의 여행 일정 중 프라하 관광에 할애하기로 한 건 딱 하루 반나절뿐이라 마음이 바쁘기도 했다. 오후에는 팁 투어에 참여기로 하고, 오전에는 보기로 우리끼리 살살 산책을 한 뒤 백화점에 가서 새 캐리어를 사서 돌아오기로 했다. 3년 전 혼자서 여행을 왔을 때와 시기가 거의 비슷해 날씨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어젯밤 비가 내린 뒤라 그런지 바람이 훨씬 차가웠다. 남편은 경량 패딩 조끼를 껴입고 나는 머플러를 둘둘 둘러 최대한 보온에 신경을 쓰고 숙소를 나섰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같은 체인점 말고 문 연 곳도 없을 것 같았는데, 남편이 숙소 바로 근처에서 금방 문을 연 뜨르들로 가게를 찾아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굴뚝 빵, 굴뚝 빵, 노래를 르는 남편을 봐왔던 터라 고민 없이 바로 들어가 뜨르들로 하나와 커피 두 잔을 주문해 나누어 먹었다. 갓 구워 나온 빵이 따뜻하고 달달해서 금세 체온이 오르는 듯했다. '배가 고파서 더 추웠나?', '그런가 봐.' 실없는 소리를 하며 가게를 나와 주변 산책을 시작했다.


남편은 다행히 걷기 좋아하는 나와 여행 스타일이 아주 비슷해서, 우리는 보통 여행을 하면 대부분의 관광지를 걸어서 돌아다니고 하루에 기본으로 2만 보, 조금 많이 걸으면 3만 보, 심지어 4만 보가 넘도록 걷기도 하는 편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여행 중 가장 중요한 건 숙소의 위치였는데, 이번 숙소 역시 유명한 관광지들을 도보로 둘러보기 좋은 구시가지 근처라 좋았다. 3년 전 묵었던 숙소와 멀지 않았지만 좀 더 큰 길가에 가까워 안전한 느낌도 들었고, 큰 상점들도 근처에 있어 저녁때 뭘 사 먹기도 편할 듯했다.


따듯한 커피를 들고 주변을 구경하며 슬슬 걷다 보니 금방 까를교에 닿을 수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까를교가 풍기는 분위기가 내가 기억하던 것과 사뭇 달랐다. 까를교는 여전히 검고 탁한 빛을 내고 있었지만 우울해 보이기보다 부드럽고 낭만적으로 보였다. 내가 '어, 기억하던 거랑 좀 다르네.' 하고 놀라자 남편도 여행 전 나의 얘기를 듣고 상상하던 까를교와는 좀 다른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좋은 기억이 남은 곳을 또 찾는 걸 워낙 좋아해서 이미 여행했던 곳을 여러 번 다시 찾은 적이 많았지만 이토록 다른 느낌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기억하던 까를교의 모습은 우울했던 내 상태가 투영된 채 왜곡되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남편이 내게 씌운 자상함 필터, 다정함 필터가 시상을 왜곡시켜 마주하는 것들을 보다 부드럽게 보이게 하는 걸까.


어둡고 탁한 색으로만 보였던 과거에도, 낭만이 가득해 보이는 지금도, 언제나 다를 것 없이 아름다운 까를교 앞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사진을 남다. 누구에게 사진을 부탁할 자신도 없어 셀카봉을 들고 다리의 모습과 나를 함께 담으려 애쓰다 포기했던 지난날과 달리 남편이 쉽게 예쁜 사진을 남겨주어 든든했다. 남편 몰래 볼이 쏙 파였던 그때 그날의 사진들을 떠올리며 드문드문 자리를 잡기 시작한 좌판들을 구경하며 다리를 건넜다. 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강을 배경으로 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반들반들해진 얀 네포무츠키 청동상 아래 동판도 한 번씩 쓰다듬었다. '이따가 팁 투어에서도 알려주시겠지만 여기를 만지면 프라하로 다시 돌아온대. 난 저번에 만졌고 또 프라하에 왔어.' 간단히 설명하며 금빛이 된 동판을 문지르자 남편은 '또 오게?' 물었다. 이번 여행이 끝나고 나면, 한 15년 뒤쯤 아이들과 함께 다시 한번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웃고 말았다.


여전한 경사를 자랑하는 프라하 성으로 향하는 길을 오르면서는 여러 상점에 들어가 구경을 했다. 혼자 여행을 왔을 때는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도 했고 사지도 않을 물건을 구경하러 상점에 불쑥불쑥 들어가는 것이 민망하기도 했는데 남편과 함께 있으니 조금이라도 좋아 보이는 곳엔 다 들어가 보고 싶었다. 천주교 신자인 나와는 달리 남편은 무교지만, 내가 종교 관련 목공예 제품을 구경하는 동안 남편은 나를 따라다니며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결혼하기 전에 종교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 남편과 크게 싸운 적이 있어 불안한 마음이 들어 남편을 슬쩍 쳐다보니, 몇 년을 함께한 지금은 이런 걸 구경하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막 결혼 준비를 시작했을 때의 남편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집에 트리를 놓는 것도 종교적인 색이 있어서 싫다고 반대를 했었다. 그때의 나는 굳이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나 가족들끼리 추억을 쌓기 위해서도 트리를 꾸미곤 하는데 도대체 왜 저렇게 종교 이야기만 나오면 거품을 물고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한 번도 남편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거나, 같이 성당에 나가자거나, 하느님이 뭘 도와주셨다거나 하는 종교 색이 섞인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저렇게 예민한 건지 짜증도 났다. 연말연시, 홀리데이 시즌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로서는 남편의 그런 고집을 받아들이기가 싫어 꽤 크게 다투었던 기억이 나는데,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둘이서 같이 크리스마스 소품들을 둘러볼 수 있다니. 남들에겐 별 것 아닐지 모르겠지만 내겐 꽤 감동적인 순간이라 잠깐 울컥했다. 이것저것 사가고 싶어 흥분한 나에게 남편은 그걸 들고 앞으로의 일정을 다 소화하려면 쉽지 않을 거라며 마지막 도시인 부다페스트에 가서 또 소품을 구경하자고 제안했다. 아쉬웠지만 남편은 빈말을 한 적이 없기에 헝가리에 가서 더 예쁜 장식품을 업어 가리라 다짐하며 눈으로만 장식품들을 담았다.


소품샵을 지나 작은 책방, 화방을 들러가며 천천히 언덕을 올라 3년 전 했던 것처럼 꼭대기에 섰다. 붉은 지붕들과 민트색 돔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은 3년 전 내게 감동을 주었던 그대로였다. 한참 시내를 내려다보며 구경하고, 사진을 찍은 다음엔 스타벅스에서 느긋하게 커피도 한 잔 마셨다. 내려오는 길엔 남편이 좋아하는 아모리노를 발견해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주었다. 꽤 큰 사이즈 아이스크림을 주문해서는 맛있게 먹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 동네에 이렇게 먹을 게 많았나, 하고 놀랐다. 나 혼자 여행을 할 때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심지어 아이스크림 집은 보지도 못했던 것 같은데! 남편과 함께 온 여행의 첫날은 오전부터 뜨르들로, 커피, 아이스크림까지 꽤 많은 먹거리로 채워졌다.


다시 강을 건너와서는 망가진 캐리어를 대신할 새 캐리어를 사러 신시가지로 향했다. 예전에 함께 프랑스 여행을 갔을 때 내 캐리어 손잡이가 빠지지 않아 남편이 엑스칼리버를 가져왔냐며, 이걸 뽑아야 너랑 결혼을 할 수 있는 거냐며 농담을 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금방 신시가지 근처에 도달했다. 화약탑과 시민 회관을 지나 구시가지보다 훨씬 넓고 깨끗한 광장에 도착하니 프라하 시민들이 점심시간을 맞아 식당을 찾아 바쁘게 걷고 있었다. 느 도시에서나 직장인에겐 점심이 가장 중요지. 샌드위치를 물거나 커피를 들고 빠르게 걷는 직장인들 사이를 헤치며 여행객의 여유를 자랑이라도 하듯 설렁설렁 걸어 백화점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구매했다면 그리 비싸지 않았을 캐리어를 약간의 바가지를 쓴 가격으로 구매하고, 면세 신청까지 하고 나니 살짝 배가 고팠다. 빈 캐리어를 끌고 점심을 먹으려고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나세마소로 향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려오는 모든 말이 우리말일 만큼 한국 사람이 정말 많았고 대기 줄도 길었다. 앉을자리가 없어 밖에 서서 먹기로 결정하고, 엄청난 대기 끝에 주문을 하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려 햄버거를 받았다. 평소에 기다리는 것들 싫어해 '맛집 옆집'에 가곤 하는 남편과 나에겐 특별한 일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한 입 베어 문 햄버거는 육즙이 풍부하고 짭조름해 딱 한국인들이 좋아할 맛이었다. 방금 산 캐리어를 사이에 두고 서서 햄버거를 나누어 먹는 꼴이 조금 우스웠지만 나름 재미있고 독특한 경험이었다. 햄버거를 금세 해치운 뒤 다시 캐리어를 끌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오전에 일정을 시작하면서 너무 많은 곳을 산책하려는 계획을 세운 탓에 오후 팁 투어 시작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는데, 숙소에 도착하니 팁 투어 시작 전까지 아직 1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남편과 하는 여행에서는 일정에 늦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으며 잠깐 쉬기로 하고 소파에 기대앉았다. 내 여행 스타일이 유명한 관광지는 대충 슥슥 보고 지나치고 카페 같은 곳에서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고, 공원을 걸어 다니며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한량 스타일이었다면 남편은 대부분의 관광지는 입장하지 않고 겉에서만 구경한 뒤, 관광도 밥도 후다닥 끝내버리는 속전속결 스타일이었다. 깊게 알기보다는 흐름에 따라, 분위기를 타고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우리 두 사람에겐 필연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팁 투어의 출발점인 루돌피늄은 우리 숙소에서 멀지 않았다.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진 우리는 팁 투어 출발 장소에도 역시 15분 전에 도착했다. 팁 투어는 가이드님과 함께 프라하의 주요 관광지를 돌며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코스가 끝난 뒤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팁을 가이드님께 지불하는 방식의 단체 투어 프로그램이었다. 3년 전 팁 투어를 통해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그리고 새까맣게 잊어버린) 나는 팁 투어가 남편과 나 같은 '관광지는 꼭 알아야 할 것만 슥슥 짚어보는' 여행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주 잘 맞는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혼자 투어에 참여했을 땐 좀 심심하고 어색했는데 남편과 함께 있으니 편안했다. 가이드님의 설명 중간중간에 떠오른 감상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시린 손을 덥혀주기도 하며 걷는 길이 즐거웠다. 우리는 아침에 대충 돌아본 곳들에 대해, 그리고 가보지 않았던 캄파 섬과 프라하 성 안의 건축물들에 대해 가이드님의 꼼꼼한 설명을 들으며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으러 내가 미리 찾아둔 식당으로 향했다.


3년 전 동유럽을 찾았을 때, 나는 체코에 머물렀던 5일 중 딱 한 번 식당을 방문했다. 빈을 여행할 때 유랑을 통해 구했던 동행들이 모두 프라하에서 여행을 마치게 되어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을 때였. 다른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는 동안 나는 약을 먹어야 해서 술을 마시지 못했 밥도 거의 넘기지 못할 때라 꼴레뇨만 겨우 맛을 봤던가, 어쨌던가 기억도 가물가물 했다. 그때만 해도 밖에서 불안장애 증상을 겪고 컨디션이 다운되거나, 취해서 약을 잊고 잠든 뒤 깨어났을 때 마주해야 할 다음날이 두려워 숙소 안에서 맥주나 한 잔 하고 약을 먹고 잠드는 게 내 최선의 풀어짐이었는데, 남편과 하는 여행에선 그렇게 나를 꽁꽁 가둘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약을 먹고 있지도 않았고, 조금 취한다 해도 함께 숙소까지 걸어갈 동행인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체코의 전통 음식이라는 꼴레뇨와 베프르조 크네들로 젤로, 맥주 두 잔을 시켜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 식당 직원들은 친절했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기도 와 본 곳이냐며 마음에 들어하는 남편에게 전에 왔을 땐 식당에서 제대로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더니, 남편은 도대체 뭘 하고 다녔던 거냐고, 괜히 그때 사진이 충격적인 게 아니었다며 나를 나무랐다. 꾸지람에 서운하면서도 이제 내 곁에 나를 챙겨줄 사람이 있다는 게 행복했다.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고, 자기 자신은 스스로 챙기는 것이 중요하지만 내 편이 있다는 안정감까지 필요가 없는 건 아니었다. 결혼과 연애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고, 그들에게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며 나 역시도 그런 가치관을 가졌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걱정해주고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찬바람에 얼었던 내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은 뒤 숙소로 향하는 길에 잠깐 마트에 들러 주 두 캔과 젤리를 사서 돌아왔다. 내일은 느긋하게 프라하를 구경하다가 잘츠부르크로 가는 긴 버스 여행에 오를 예정이었다. 따듯한 물로 씻고 나와 맥주를 나누어 마시고 내일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드는 것이 행복했다. 자주 다리가 저리곤 하는 남편이 내일 겪을 오랜 버스 여행이 힘들진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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