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두고 온 곳에 남편을 데려갔다 (1)
* 2016.09.27. Tuesday.
엄마는 나를 공항으로 데려다주는 길 내내 불안해했다. 혼자서도 정말 괜찮겠냐며 걱정을 하다가, 가서 모든 걸 훌훌 털어내고 가벼워지고 오라고 했다가, 혹시나 나쁜 생각 하는 건 아니냐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가, 엄마는 우리 딸 믿는다고 내 손을 꼭 잡았다가 했다.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 옆에서 나는 창밖만 바라봤다. 집을 떠나오는 순간까지도 괜찮은 척을 했지만 공항으로 향하는 길 위의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알게 된 전 남자친구의 부정을 일 년이 넘도록 견디고 견디다,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결혼을 한 달 앞두고 파혼을 결정했다. 그게 고작 한 달 전이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려 애쓰던 나는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장애, 공황장애를 얻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을 덮어두려 기울였던 수많은 노력은 결국 나를 배신했다. 하루하루를 덮쳐오는 파도와 같은 우울에 간단한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었다. 괴로웠다. 사무실이 위치한 7층에서 로비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는 상상을 했다. 중간에 엘리베이터를 세우고 급히 뛰어내리는 게 일상이었다. 죽을 것만 같고 눈 앞이 아찔했다. 강화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된 계단을 보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걸을 수가 없었고, 에스컬레이터가 무너질까 두려워 떨다가 기절해 버리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위협하는 듯 보였고, 밤엔 잠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도저히 회사를 다닐 수 없어 휴직계를 제출하며 동시에 동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를 돌고 다시 체코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한 달 가량의 배낭여행 루트였다.
가족들에겐 작년에 엄마와 동생들이 다녀온 루트가 너무 마음에 들어 그대로 따르고자 한다고 말했지만 실은 다른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아 선택한 곳이었다. 내겐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 이런 상태로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파리나 런던을 다시 찾는 건 싫었고, 맑은 하늘 아래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는 유명 휴양지들도 피하고 싶었다.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곤 하는 발리나 치앙마이에 가서 그럴싸한 한 달 살기를 하는 것 조차 버거웠다. 조금 칙칙하더라도 여유로운, 소란하지 않고 차분한 곳. 볼 것이 그리 많지 않아 천천히 돌아봐도 상관없고, 기차나 버스로 최대한 많은 나라에 닿을 수 있는, 내가 전혀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전혀 마주친 적 없는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을 그런 곳에 가고 싶었다. 그때 동유럽이 생각났다. 매체에서 접했던 늦가을의 동유럽이 딱 그랬다.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았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부치고, 카운터 앞에서 엄마에게 사진을 한 장 부탁했다. 키 161cm에 40kg이 겨우 넘을까 말까 했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버린 내 상한 몸뚱이를 찍던 엄마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평소엔 남이 울면 따라서 눈물이 나는 편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한동안 엄마를, 집을 떠난다는 게 실감 나지도 않았다. 덤덤한 스스로를 이상하게 생각하며 우는 엄마를 안아 토닥이며 겨우 진정시키고,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들뜨지도, 설레지도 않았지만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그저 멍했다. 싱숭생숭하지도 않았고, 텅 빈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몰랐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라운지에 앉아 한숨 돌리며 커피를 마셨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가롭고 한산한 라운지에서 간단히 면세품을 정리하고 여행 중에 일기장처럼 사용하려고 구매한 새 노트를 폈다. 2016년 9월 27일. 날짜를 적고 출발 전의 감상을 조금 적어두려 했지만 딱히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어라 적을까 오래 고민하다 겨우 한 줄을 썼다.
'오랜만의 긴 비행을 앞두고 있다.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조심히 다녀와, 잘 먹고, 잘 자고, 울지 말고. 엄마는 거듭 당부하며 서럽게 울었다. 출국장 앞에 선 나는 엄마의 눈을 피하려 괜히 엄마의 뒤로 가 등을 토닥였다. 갔다 올게. 잘 갔다 올게.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아 갔다 오겠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게이트를 통과했다. 내 걱정에 잠도 잘 이루지 못할 게 분명한데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선뜻 그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망설였다. 엄청 걱정하겠지. 알면서도 괜찮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라운지를 나와 게이트로 향하면서 내 사진을 몇 장 찍어 가족 단체 채팅방에 전송했다. 잘 갔다 올게. 잘 쉬고 재밌게 놀고 올게. 짧은 메시지와 함께 보낸 사진을 보고 엄마는 '얼굴이 상해서 어쩌니. 많이 먹어.'라고 답장했다. 정말로 걱정뿐이었다.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울컥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가 아플 수밖에 없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처럼, 엄마는 내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우리의 상처를 옅어지게 할 수 있는 건 시간뿐이겠지. 나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엄마에게 미안했고, 세상이 나를 저버린 것 같은 때에도 엄마가 내 곁에 있어주고 나와 함께 아파해준다는 게 고맙기도 했다. 찔끔 흐른 눈물을 닦고 비행기에 올랐다.
막상 비행기에 오르니 오랜만의 장거리 비행에 기분이 조금 환기됐다. 평일에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를 타는 건 꽤 오랜만이라서 탑승한 승객 모두가 아무 열에 길게 모로 누워 가도 별다른 제지가 없었던 핀란드행 비행기에 대한 기억으로 한산한 비행기를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승객이 훨씬 많았다. 창가에 앉은 내 옆자리에는 패키지여행을 오신 아주머니, 옆옆자리에는 외국인 여자가 앉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장시간의 비행을 대비해 필요한 것들을 바리바리 꺼내어 정리했다. 그제서야 기분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만한 것들이 몰아쳤다. 불안하고, 외로웠고, 가벼웠다. 노트와 책, 불안 장애 증상이 찾아오면 먹을 비상약 등을 포켓에 꽂아놓고 이어폰을 꺼내 좋아하는 성시경의 6집 음반을 틀었다. 중국 상공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약 1시간의 지연 후에 비행기가 떴다.
이륙할 땐 엉켜있던 상념들이 무겁게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불쌍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우습다고 생각할까. 이런 일을 겪고도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되는 걸까. 다시 사랑을 꿈꿔도 괜찮은 걸까. 내가 이런 욕심을 낼 자격이 있는 걸까. 너무 염치가 없는 건 아닐까. 나의 과거를 받아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내 마음이 누군가를 다시 믿을 수 있을까. 나는 왜 벌써 다음 사랑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지만, 파혼 이후 줄곧 내 마음에 남아있던 질문들이 땅을 딛고 떠나는 비행기 바퀴에 엉겨 붙어 주렁주렁 늘어졌다. 이것들을 떼어놓기 위해 사람들이 멀리 떠나는 거구나. 매일 오가던 곳에서는 정리하기 어려웠던 생각들을 두고 점점 높아지는 고도에 집중했다. 긴장의 끈을 놓으면 너무 많은 것이 밀려들 것 같았다. 살짝 불안이 밀려왔지만 괜찮다고, 잘 다녀올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던 담당 의사 선생님의 표정을 떠올렸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혼자가 되는 것이 맞아. 그런 생각이 불쑥 구름을 헤치고 나타났다. 다른 걱정은 나중에 하면 돼. 지금은 먼저 나로서 온전해져 보는 것이 맞아. 다시 사랑을 할지, 말지는 그때 생각하는 거야.
원래 대충이 체질이기도 하고, 여행 기간이 길기도 해서 더더욱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나는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야 체코에서의 며칠을 위해 계획을 세웠다. 며칠 전 대강의 일정을 정하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동할 날짜를 생각해두긴 했지만 그건 일정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수준이었다. 노트에서 '걸어서 구경구경하고', '슬슬 둘러보고', '휴식휴식' 같은 구절들을 발견하고 사람 참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음 장을 펴 '첫날 일정 세부 계획'이라고 말머리를 붙였다. 아래엔 가고 싶은 곳의 이름을 몇 개 적었다. 숙소 근처 테스코가 몇 시까지 영업하는지, 체스키 크룸로프로 가려면 어디에 가서 어떤 표를 예약해야 하는지, 어느 성당에 가서 뭘 봐야 하는지 등등 아주 조금 구체화된 계획을 적고 뿌듯하게 펜을 내려놓으니 3시간이 지나 있었다. 슬슬 몸이 찌뿌둥해져 왔다.
기내 모니터를 이용해 게임을 할까,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 원서를 읽어보고 싶어 챙겨 온 마션을 꺼내 들었다. 내용은 분명 재밌었는데, 몇 장 읽지 않아 잠이 왔다. 졸다가 깨서 영화 목록을 뒤적거렸다. 뻔한 영화들 가운데 '싱 스트리트'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보고 싶던 영화이기도 했고,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하며 틀었는데 굉장했다. 젊음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패기가 가라앉았던 기분을 끌어올렸다. 시적인 가사들도 마음을 울렸다. 사랑에, 꿈에, 최고 속도로 달려드는 건 어떤 용기일까. 아무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뛰어드는 건 어떤 낭만일까.
열다섯 소년의 사랑에의 열기를 바라보고 있으니, 전에 보았던 드라마 '또 오해영'의 해영이가 생각났다. 서른둘에 맞은 파혼 후에도 환하게 웃으며 자전거를 타던 해영이. 이제는 마음 가는 대로 다 해보겠노라고, 상처 받아본 적 없는 사람처럼 모든 걸 다 걸고 사랑하겠다고 웃던 해영이의 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같은 처지에 놓인 나를 봤다. 나는 웃지 못했다. 며칠을 침대에 아무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금방 다시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될지, 내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 당당해질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재생되고 있는 '싱 스트리트'의 가삿말을 곱씹었다. 나도 해영이처럼 다시 웃을 수 있을까? 뭐든 절대로 적당히 해선 안된다는 라피나의 말을 되새기면 모든 걸 다 걸고 다시 사랑해보겠다고 마음먹게 될까? 네가 옳다고, 계속 가면 된다고, 네 인생을 위해 달리면 된다는 가사를 매일 새기다 보면 다시 사랑을 하고 싶은 내 마음이 부끄럽지 않게 될까? 접하는 모든 것들을 내 상황과 결부시키고 있는 것 같아 우스웠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뻔한 청춘 영화가 내게 가능성을 말해주는 듯했다. 괜찮아. 더 멀리 갈 수 있어. 찌질하더라도 네 인생은 네 거야. 시원하게 귓가를 스치고 지나는 사운드와 가사를 들으며 비행기에서 내리면 당장 '싱 스트리트' OST부터 재생목록에 포함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개의 영화를 더 보다가 말다가 하고, 졸다가 깼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비행기는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다. 비상약을 하나도 먹지 않고 무사히 비행을 마쳤다는 뿌듯함도 잠시, 캄캄한 공항 밖의 풍경에 놀란 나는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23시 35분 착륙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출발이 지연되었던 것만큼 연착됐다. 날짜는 이미 하루가 지나 있었다. 아주 늦은 시간에 착륙 예정이라 공항 바로 근처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 두었었는데, 실제로 공항에 내려 구글 맵으로 지도를 찾으려고 하니 쉽지가 않았다. 바꿔 낀 유심이 잘 작동하지 않는 건지, GPS 신호에 문제가 있는 건지 내가 있는 위치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는 휴대폰을 붙들고 한참 씨름을 했지만 가만히 서있는데도 지도 위의 나는 북쪽을 봤다가, 서쪽을 봤다가, 또 동쪽을 봤다가 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공항 안내데스크에도 사람이 없었고, 주변의 외국인들에게 이 호텔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그 시간에 공항에 도착한 건 모두 나와 비슷한 여행객들뿐이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여행 첫 단추부터 이따위로 끼우는 건가. 정확히 어디로 나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왔다니. 너 바보야? 너무 속상해서 스스로를 다그쳤다. 왜 항상 이 모양이지. 뭐든 대충이라 고생할 때가 많으면서 어째서 고치질 않는 거야. 속상해 미칠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내일 당장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끊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붙들려 애썼다. 공항 밖도, 안도 아닌 문 근처의 어정쩡한 곳에 서서 휴대폰을 하늘로 처들고 GPS 센서가 말을 듣기를 기다렸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한참 이쪽저쪽으로 걸어 다니며 지도 위의 나를 확인하려 했지만 여전히 방향을 알기가 어려웠다.
30분쯤 공항을 이리저리 헤맨 끝에야 겨우 호텔이 있는 방향을 알아냈다. 개고생.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나는 울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호텔로 향했다. 여행 기간만큼 상당한 크기의 캐리어를 밀고, 끌어가며 호텔을 향해 걷는 동안 시간은 새벽으로 새벽으로 흘렀다. 나는 점점 무서워졌다. 공항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에서 누군가 튀어나오진 않을까, 갑자기 누가 달려와 나를 해치진 않을까 두려웠다. 동시에 덜렁대는 내 성격에 확실히 호텔이 예약이 되어 있기는 할지, 너무 늦어서 체크인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지 하는 부가적인 걱정도 마음에 짐을 얹었다. 나는 캐리어를 끌고 경보하듯 걸었다. 비상약은 지금 먹어야 될 것 같은데, 물이 없다, 물이 없어. 혼잣말을 되뇌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겨우 도착한 호텔엔 제대로 예약이 되어 있었고, 체크인도 가능했다. 어찌나 마음이 놓였는지, 호텔 직원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나름 신식 건물인 호텔엔 튼튼한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가뜩이나 요즘 엘리베이터가 무서워 죽겠는데, 유럽에서 아주 오래된, 문이 열리고 닫히는 데에만 해도 한참이 걸리는 엘리베이터를 종종 마주했던 터라 잔뜩 긴장했던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아늑한 호텔 방에 들어서니 순식간에 조금 남아 있던 긴장마저 완전히 사라지며 눈물이 났다. 인천 공항에서 흘렸어야 어울렸을 것 같은 양의 눈물을 프라하 공항 옆, 작은 호텔에서 흘리며 엉엉 울고 있자니 황당하면서도 슬펐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 처음도 아닌데 뭐 이렇게 힘들지. 예전에도 분명 숙소를 찾지 못해서 고생을 했었는데. 네가 바보인 걸 몰랐던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거야. 한참을 울고 조금 개운해진 뒤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을 위해 방 사진을 한 장 찍어 단체방에 전송했다.
'공항 근처 호텔. 별 일 없이 무사히 잘 도착했어요. 내일 시내로 갈 거야.'
메시지를 보내기가 무섭게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던 듯 답장했다. '고생했어. 푹 자고 일어나서 내일은 좀 천천히 움직여. 잘 자, 우리 딸.' 짐을 간단히 풀어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우며 내가 비행하는 동안 엄마가 잘 자고 일어났기를, 그렇지 못했다면 내일부터는 조금 더 잘 잘 수 있기를 기도했다.
* 2019.10.03. Thursday.
여행을 준비하며 옷을 왕창 샀기 때문에 캐리어가 꽤 무거웠다. 꼼꼼하지 못한 나는 내 옷을 최대한 많이 챙기는 걸로 짐 싸기를 마쳤고, 남편이 마지막까지 빠진 것이 없나 짐을 둘러봤다. 남편이 끌기로 한 28인치 캐리어에는 무거운 짐을, 내가 끌기로 한 24인치 캐리어에는 자질구레한 짐들을 싣고 걸으니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공항버스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서두르기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조금 일찍 집을 나섰고, 아니나 다를까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시간이 한참 남아 길 건너 커피 전문점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한잔씩 마셨다. 나는 짐 사진을 한 장, 남편의 사진을 한 장, 커피숍 바깥의 사진을 또 한 장 찍었다. 무척 들뜨고, 신이 났다.
이번 여행지를 정하며 동유럽 이야기를 꺼낸 건 나였다. 남편과의 유럽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내가 몇 번이고 찾았던 파리를 내 주도 하에 따라다니는 '아내 투어'였기 때문에, 이번엔 남편이 대학 시절 여행했던 그리스와 터키를 '남편 투어'로 돌아보자는 게 남편의 의견이었지만 그리스는 왠지 햇빛이 찬란히 부서지는 여름에 찾아야 제 맛일 것 같아 거절했다. 스페인도 같은 이유로 제외했고, 스위스도 봄에 찾았을 때 가장 좋았던 것 같아 후보에서 지웠다. 그렇게 몇 군데를 지우고 나니 남은 게 동유럽이었다. 나는 고민하다 말했다.
'내가 엄청 아팠을 때 혼자 갔던 곳이긴 한데. 좋기는 좋았어. 지금 날씨에 딱이기도 해. 좀 추운데, 우린 추운 거 좋아하잖아. 가볼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남편은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좋다고 대답했다. 남편은 내 과거를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왠지 찜찜한 기분이었다. 내가 파혼의 아픔을 끌어안고 뒹굴며 우울에 아주 깊이 빠졌다가 나온 곳에, 남편을 데리고 가도 되는 걸까? 이전에 살짝 말했던 적이 있었기에 이미 눈치챘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한 번 더 물었다. '근데 내가 진짜 안 좋았을 때 갔던 덴데. 같이 가도 괜찮겠어?' 재차 묻는 말에 남편은 '이번에 가서 재밌게 놀고 좋은 기억으로 덮고 오면 돼.' 하고 대답했다. 믿음직스러우면서도 미안하고, 동시에 걱정도 됐다.
남편은 지나온 것은 잘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틈만 나면 과거를 곱씹으며 단물이든 쓴물이든 자꾸 맛을 보곤 하는 나와는 아주 달랐다. 자주 꺼내는 과거 이야기가 고작 '내가 예비역 육군 병장인데..' 정도인 남편이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스타일인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거길 같이 가자고 묻는 거 자체가 좀 이상한 건가. 아직도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어쨌든 거긴 과거의 내가 내 속의 아픔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보듬었던 곳인데. 내게 아주 뜻깊은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의미가 없는 곳도 아닌데. 물어놓고 조금 망설이는 나에게 남편은 오히려 못 가본 곳이라 가고 싶다고, 네가 좋았다고 하니 내 맘에도 들 것이라며 비행기 표를 예약하자고 했다.
둘 다 휴가를 길게 낼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겐 딱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프라하-잘츠부르크-할슈타트-빈-부다페스트'의 촉박한 일정을 세우는 나를 보며 남편은 그게 가능한 거냐고 물었다. '예전엔 훨씬 길게 여행했다고 하지 않았어?' 남편의 물음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한 달 생각하고 비행기표 끊고 갔는데, 너무 힘들어서 10일인가 만에 돌아왔어. 그때는 잘츠부르크도, 할슈타트도, 부다페스트도 못 갔지만 이번엔 할 수 있어. 그땐 조금 걷다가 숙소 들어가서 누워 있고, 또 카페 한 군데 갔다가 숙소 가서 누워있고 그랬거든. 우린 할 수 있어!' 내가 본 아름답고 좋은 건 오빠도 꼭 같이 봤으면 좋겠어. 내가 고민을 흘려보낸 강에 오빠 스트레스도 같이 흘려보냈으면 좋겠어! 의지에 불타는 나를 보며 남편은 네 체력에 가능할까, 하는 말로 내 승부욕에 불을 질렀다.
나보다 훨씬 준비성이 뛰어난 남편이 답답하게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답지 않게 꼼꼼히 계획을 세웠다. 엑셀로 구경할 곳과 식당 후보들을 세세히 정리하고, 출발 시간과 도착 시간을 표기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지난번처럼 또 GPS가 말을 듣지 않는 사고가 일어날 걸 대비해 주소도 옮겨 적었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들이었다. 남편은 웬일이냐며 기특해했고, 나는 그런 남편을 위해 또 하나의 선물을 준비했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긴 남편을 위해 최대한 레그룸이 넓은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번 여행 기간엔 남편의 생일이 끼어 있었다. 이미 선물로 노트북을 사주었지만 생일을 끼고 가는 여행이니만큼 남편의 여행이 즐겁고 편안했으면 했다. 항공편을 예약하며 Seatguru 사이트를 통해 우리가 탈 기종의 이코노미 좌석 중에서 특히 레그룸이 넓은, 구역 별 맨 앞자리를 찾아보았다. 마침 가장 좋은 자리라 초록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그 자리가 비어 있었고, 나는 내 용돈으로 추가금을 내고 그 좌석을 구매했다. 나야 이코노미 좌석에서 아빠 다리를 하고 앉기도 하고, 쪼그려 앉아 엉덩이 스트레칭을 하기도 할 정도로 체구가 작아 별 무리가 없었지만 남편은 아니었다.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할 때면 남편은 맨정신으로 좁은 좌석에 고통받는 대신 술을 잔뜩 마시고 잠들어서 모든 걸 잊어버리는 편을 택하곤 했다. 여행 일정에 남편의 생일이 끼어 있었기에 특별히 남편을 신경 써 주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남편에게 좋은 선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남편을 놀라게 해 줄 생각에 설렜다. 평소에 잘해주진 못하지만, 이럴 때 딱 감동을 주는 게 또 연인 사이를 도탑게 만드는 것 아닌가. 미리 체크인을 해두었기에 짐만 간단히 부치고 출국장에 들어오니 탑승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아 있었다. 이 사람이랑 다니면 정말 언제든지 시간적 여유가 있구나. 마음 급하게 종종거리며 다닐 필요가 없어. 남편의 부지런함에 감탄하며 라운지로 올라가 군것질을 시작했다. 오랜만의 휴가에 들떠서 일정표와 여행 책자를 번갈아 들여다보는 남편을 바라보고 있으니 준비한 약소한 선물을 미리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말 안 하고 놀라게 해 줄까. 아님 그냥 말해버릴까. 조금 고민하던 나는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입방정을 떨었다. '오빠. 이따가 내가 뭘 준비했나 한 번 잘 봐 봐.' 남편은 조금 놀라고,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면세점에서 몰래 선물을 더 산 거냐며, 얼른 달라고 장난을 쳤다. 나는 그것보다 훨씬 약소한 거지만 오빠가 분명 만족할 거라고 생색을 냈다. 뭔지 알려달라, 안 된다, 장난스럽게 실랑이를 하며 한참을 라운지에서 먹고 놀고 떠들다 보니 탑승 시간이 가까워졌고, 우리는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에서 좌석으로 향하는 길까지, 나는 내내 남편에게 종알거렸다. 내가 뭘 준비했나 봐 봐, 오빠 생일이 금방이잖아, 내가 또 완벽한 여행을 위해 다 준비를 했지. 남편은 으스대는 나를 뒤로 하고 자리를 찾아 기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앞서 걷던 그가, 정말이지 이상하게도, 내가 예약했다고 생각한 바로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뭐지? 싶었다가 아차, 했다. 얼른 내 손에 들린 탑승권을 꺼내 확인했다. 믿을 수 없지만 탑승권엔 E4가 쓰여 있었다. 남편의 손에 들린 탑승권에도 굵은 글씨로 E5가 적혀 있었다. 나는 몇 번이고 선반 께에 달린 자리 번호와 탑승권을 확인했지만 양쪽의 글씨 모두 꿈쩍하지 않았다. 맙소사. 내가 원하던 자리의 뒷자리를 추가금을 주고 구매했던 거였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한 나를 발견한 남편이 뭔가 눈치를 챘는지 짧게 설마, 하는 말을 뱉고 웃기 시작했다. '여보 이걸 준비한 거야?' 대답하지 못하고 망연자실해하는 나를 두고 남편은 깔깔 웃으며 자기 짐과 내 짐을 윗 선반에 올리고 E5에 자리를 잡았다. 허탈함에 기운이 쭉 빠졌다. 아니, 왜. 내가 분명 사이트에서 확인까지 했는데, 도대체 왜!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내가 분명히 seatguru에서 확인하고 자리를 구매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중얼중얼 변명을 늘어놓는 나에게 남편은 괜찮다고 말했다. 어이가 없어야 할 건 남편 쪽인데, 그는 오히려 충격에 횡설수설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하고 놀리듯 말했다. 정말이지 나의 덜렁거림이 너무 창피하고, 미안했다. 그러게, 입방정은 왜 떨어가지고서는. 왜 제대로 확인을 안 해서는. 어째 이렇게 변함이 없냐. 내가 이륙 직전까지 좌절감의 해일에 휩쓸려 다니는 동안 정작 황당해해야 할 남편의 기분은 무척 좋아 보였다. 진짜 웃기다면서, 세상에 이렇게 웃긴 아내는 없을 거라면서 재밌어하는 남편에게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이놈의 동유럽 여행은, 어찌 제대로 시작되는 법이 없구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비행 내내 남편은 늘 그랬듯, 와인과 맥주를 마시고 잠들어 다리의 고통을 잊는 편을 택했다. 나는 남편이 눈을 뜰 때마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남편은 그때마다 괜찮다고 세상에서 네가 제일 웃기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써 준 마음만으로 행복하니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몇 번이나 이야기해줬다. 그런 말이 고맙고, 무거웠다. 어떤 실수를 해도 좋은 면을 생각해주고 품어주는 이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더 잘해야 할까 감도 오지 않았다. 한참을 혼자 반성하다가 결심했다.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니 무조건 두 번, 세 번 확인하자. 내가 실수한다고 나만 불편하고 나만 고통을 겪는 게 아니니까 뭐든지 확실히 하자. 좁은 자리에 구겨져 잠든 남편을 보며 몇 번을 되새겼다.
남편이 자느라 영화 한 편을 다 보지 못해 몇 번이고 처음부터 반복 재생을 하는 동안 나는 정세랑 작가의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었다. 무한한 사랑. 조건도 경계선도 없는 경민의 사랑을 읽으며 나는 남편을 생각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고민하던 나를 사랑해준 사람. 누굴 좋아해도 될까,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내 과거를 받아줄 사람이 있을까, 나 자신도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 갑자기 나타나 모든 걸 안아 준 사람. 어떤 것도 묻지 않고 그 자체로 나를 사랑해준 사람.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던 나를 아무런 의심 없이 평안히 살아가게 하는 사람. 돌아보니 내 곁에도 '한아의 경민'이 있었다. 내 '경민'은 외계인도 아니고, 다이아몬드도 만들어 낼 수 없고, 자신이 살고 있는 별의 모든 개체가 나를 사랑하게 할 수도 없었지만 그런 가운데도 '한아의 경민'처럼 나를 무한히 사랑해주는 남편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 '경민'은 허구가 아니야. 외계인이 아니야. 그런 사람이 진짜 내 옆에 있어. 찌그러진 듯 잠들어야만 하면서도, 짜증낼만 한 일에도 웃으며 재밌다고 해주는 사람이 내 옆에 있어. 조금 쌀쌀한 기내의 공기와는 달리 마음에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책도 다 읽고, 카드 게임도 열심히 한 끝에 또 한 번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엔 저녁 7시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방법은 꽤 많았는데, 착륙과 동시에 꽤 거센 비가 오고 있어 우버를 이용하기로 했다. 혼자 여행할 땐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라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지만 짐도 많고 시간도 늦었기에 남편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는 곳으로 향하는 도중, 남편은 잠깐 화장실에 갔다. 짐이라도 내가 가서 찾아놔야지 하고 수하물 찾는 곳으로 먼저 가서 서 있는데, 인천공항에서 일찍 수속을 마쳐서인지 우리 짐이 거의 맨 첫 번째로 나왔다. 나는 얼른 큰 캐리어를 먼저 컨베이어 벨트에서 끌어내리고, 뒤이어 나오는 작은 캐리어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뭔가, 뭔가. 잘 서지가 않는데. 뭐지? 혼자서 서지 못하고 기우뚱하는 캐리어 바닥 쪽을 확인하고, 나는 정말이지 내 동유럽 여행은 사건 사고의 끝이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바퀴가 하나 없었다. 아예 없었다. 바퀴가 붙어 있던 자리의 흔적도 없이 접합부까지 모조리 날아간 채였다. 황당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비켜주기 위해 일단 캐리어 두 개를 질질 끌고 약간 뒤로 나왔다.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쓰러지려고 하는 작은 캐리어 밑에 대충 발을 끼워 넣고 중심을 맞췄다. 더 급한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바꿔 낀 유심이 잘 작동하나 확인해야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유심을 넣고 켜니 인터넷도 잘 되고, GPS도 잘 잡히는 듯했다. 이건 되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남편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익숙한 그 목소리 끝엔 금방 의문문이 붙었다. '어? 뭐야? 뭐야, 그거?'
남편은 캐리어를 받치고 있는 내 발을 보고 박장대소했다. 정말 네가 최고라고, 세상에서 제일 웃긴다고, 이게 뭐냐고 깔깔 웃는 남편 앞에서 나는 이게 뭐가 웃기냐고, 지금 우리 캐리어 바퀴가 없어진 거라고 외쳤다. 남편은 눈물까지 흘리며 웃다가 캐리어와 내 발 사진을 찍었다. '이런 건 남겨 놔야 돼. 아, 웃겨.' 한참을 더 웃은 남편이 한 손으로는 큰 캐리어를 끌고, 다른 손으로 고장 난 작은 캐리어까지 끌고 앞장서 걸었다. '우버 타기로 하길 잘했죠? 얼른 불러요.' 나는 남편의 말에 얼른 우버 앱을 켜 미리 찾아둔 에어비엔비 주소를 넣고 호출 버튼을 눌렀다.
우버는 금방 도착했고, 얼마 걸리지 않아 예약해둔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거세지는 않지만 옷을 적실 정도의 비가 오고 있었고, 남편과 힘을 합쳐 숙소로 짐을 옮기고 나니 살짝 배가 고팠다. 같은 건물에 바가 하나 있길래 얼른 내려가 식사를 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늦어 술만 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느리고 덜컹거리지만 왠지 안전한 느낌이 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숙소로 올라와 대충 씻고, 서울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끓였다. 남편과 설익은 컵라면을 나눠 먹으며 마무리하는 여행의 첫날이 꽤 근사하게 느껴졌다. 실수로 엉뚱한 좌석을 예매하고, 캐리어 바퀴를 날려먹고 내일은 새 캐리어를 사기로 한 프라하에서의 첫날이었다.
남편이 찍은 캐리어 바퀴와 제 발의 사진을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