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엄마! 동료들이 도시락을 싸오거나 음식을 직접 해 먹는 나를 좀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 쓸데없는 일에 기운을 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다른 동료가 말해준 건데, 저 사람은 체력이 남아도나봐 라고 말했다고 하더라.
설-그래서 속이 많이 상했어?
지-아니, 나는 그 사람이 한 말을 곱씹지는 않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지고 그러다보면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더라고, 나한테 그게 도움이 안되서 남들이 뭐라 하든 아무렴 어때 라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 보내. 그러면 또 금방 잊어버려.
설-잘하고 있어. 딸. 엄마는 자신을 위해 사부작 사부작 뭐라도 하는 네가 참 예뻐.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너를 보면서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몰라. 고마워 딸.
발송하지 못한 긴 메시지.
아빠는 비싼 커피를 사 마시는 나를 이해 못하지만 엄마는 하루에 한 번 정말로 맛있는 라떼를 마시지. 어쩌면 커피의 맛보다 커피가 있는 풍경을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지금 내 앞에는 올리브 나무가 심어져 있는 근사한 토분이 보이고 격자 무늬 나무 문이 있어. 이 풍경은 마치 나를 축복하는 것 같아. 이 정도의 소소한 즐거움마저도 허락하지 못하고 바쁘게 산 날이 엄마에게도 있었다는 거 알지? 지금와서 말하는 거지만 너에게 먹일 음식을 누가 좀 대신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 그때 엄마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너무나 버거웠어.
오래전 이런 일이 있었어. 회사 동료 중 한 사람이 도시락 반찬으로 두부조림을 가져온 날이었어. 두부조림은 품이 많이 드는 요리야. 생두부로 조림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보다는 두부를 팬에 부친 다음 고추가루와 간장을 섞은 양념으로 졸이는 게 식감도 쫄깃하고 훨씬 맛있거든, 딱 그거였여. 한 눈에 보기에도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완성하고 한김 식힌 다음 뿌렸을 깨까지 완벽했지.
그때 엄마는 맛있게 보이는 두부 조림을 보고 식욕이 돋거나 얼른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난데없이 의문이 들더라고. 저 사람의 저녁 시간은 나와 다르게 펼쳐지는 걸까? 아니면 누구의 도움을 받나? 체력부터가 다르겠지. 비실비실한 나와는 비교불가한 건강체질인가. 아니면 요리가 일종의 습관이 된 사람일지도 모르지. 생각해보면 엄마는 그 사람의 정성과 노고를 적당히 낮춰 평가하고 싶었던거 같아.
너의 동료들도 예전의 엄마처럼 너무 바빠서 그럴지도 몰라. 자기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을 알 시간이 없을만큼 시간에 쫓기고 있을 거야. 사람은 아주 작은 것에 상처 받고 그보다 더 작은 것에 위안 받는데 사는 게 바쁘다 보면 정작 자기를 살려주는 게 뭔지 생각하지 못하고 살거든. 그러면서 사는 게 힘들어 죽겠다고들 하지. 엄마도 꽤 오랜 시간 그랬었어.
동료들의 뒷말이 너를 향한 험담일 수도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 마. 엄마가 살아보니 험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더라. 오죽하면 안 보이는 데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는 속담이 있겠니. 나랏님 운운하는 걸 보면 남의 뒷담화는 단군이래 지금껏 줄곧 이어져 온 거겠지. 사람은 누구라도 반드시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있더라고, 아님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있거나. 그러니까 뒷담화를 듣는 건 당연한 거야. 말 나온 김에 엄마가 들은 험담을 말해줄까?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인간이 되기 싫어서 어느 날부터 말을 아끼니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목소리를 조금 높여야 할 자리에 가서 강한 어조로 말하니까 센 캐릭터라 부담스럽다고 하더라.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대했더니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꿍꿍이가 있는 사람 같다고 하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지 싶어서 난감했지. 지금은 장단 맞추는 게 좀 쉬워졌나고? 천만에 이제는 내가 만든 장단에 맞춰 나홀로 춤을 주게 되었지.
엄마가 허구헌날 너는 칭찬받을 가치가 있다. 너는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다. 라고 말한다고 해서 교만해지지 말어. 교만은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현실에 직면할 때 너를 우울하게 만들고 자신에게 했던 기대가 무너지면 화가 나게 된단다. 그럴까 봐 걱정 되서 하는 말이야. 어차피 보내지 않을 메시지니까 용기 내어 하는 꼰대의 잔소리라고 생각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