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하면 떠오르는 것이 "눈에 보이는 디자인 결과물"인 것처럼 "디자인하려면 필요한 것"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전문적인 디자인 툴"들 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한편으론 이러한 연결이 "디자인하기"에 대한 오해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디자인의 본질은 더 나은 차별적 가치를 만드는 것인데요.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왜 디자인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에 대한 노력이 뒤따라야 하죠. '어떻게 디자인할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디자인 툴입니다. 즉 디자인의 효율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수단인 것이죠. 하지만, 실상은 "무엇을, 왜"에 대한 고민보다는 디자인 도구 사용법과 그리고 이의 사용 역량 향상에 집중하는 모습을 더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방법론과 툴을 다루는 법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우선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방법론과 툴은 결과물을 만드는 효율을 높여주기는 하지만 성과를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차별적 가치 창출이 디자인의 목적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죠. 모두가 같은 툴과 방법론을 이용한다면 결과물의 차별성이 크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결과일 테니까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는 현재 디자인 교육의 모습이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대학이나 기관에서 진행되는 디자인 교육의 대부분은 프로세스와 방법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많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의 디자인에 대한 의식은 행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자인하면 당연히 그것이 아날로그적인 방식이던 디지털적인 방식이던 툴의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고 가장 먼저 생각할 테니까요. 한 번은 서비스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서비스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요. 거의 모든 학생들이 프런트 스테이지단의 스마트 폰 앱을 서비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서비스 디자인은 앱의 사용성, 심미성 향상을 하는 일로 인식하고 있었죠. 이 에피소드가 저에게 준 교훈은 디자이너들이 무엇을 디자인하는지 모른 채 디자인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고 이를 누구보다 능수능란하게 하는 것이 디자인을 잘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죠.
사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디자인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경영컨설팅 툴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템플릿과 프로그램들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많은 온라인 교육 플랫폼 등에서는 "~~ 하는 법"이라는 이름의 강좌가 현란한 수식어와 함께 넘쳐납니다. 디자인 싱킹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COVID-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온라인 협업 툴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개인 성향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디자인 싱킹의 디지털 도구들에 대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데요. 그 이유는 디지털 툴들이 오히려 차별적 가치를 고민하고 표현하고 공유하는데 더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툴의 장점을 뽑라면 디지털 문서화가 용이하다 정도일 것 같습니다. 즉 작업 효율에 관한 장점이죠. 디자인 싱킹 툴을 다룬다고 해서 혁신 디자인을 잘한다고 할 없습니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새로운 방법론과 툴들은 기존의 방식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것들이 뭔가 다른 결과를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 습니다. 디자인에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고 디지털 툴들을 이용하면 그것이 더 선호되고 가치를 인정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이것들도 낡은 것들이 되고 가치가 저평가받기 시작하죠. 이러한 순환을 고리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진짜 디자인의 출발은 사람들의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고객을 깊게 이해하고, 그들의 문제에 공감하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는 사실 시간밖에 없습니다. 경험의 시간이 축적될수록 효율적이 되는 것이죠. 디지털 툴을 쓴다고 해서 고객과 더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디자인하고 올바른 툴을 골라 쓸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자인 도구주의에서 벗어나야 니다. '무엇을, 왜'에 대한 디자인을 하고 툴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입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 도구를 이용하면 그 어떤 도구도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도구를 사용하는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죠.
<사진 #1> 한 커피숍에 설치된 천장형 에어컨의 모습입니다. 에어컨에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가드가 추가로 설치된 모습인데요. 에어컨 바람을 직접 쐬는 것을 싫어하는 고객들을 위해 설치한 것으로 이네요. 여기서 어떤 디자인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어떤 솔루션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사진 #2> 거리에 설치된 옥외용 에어돔의 모습입니다. 주변 공기를 정화하고 맑은 공기로 커튼을 만들어 안에 있으면 외부의 오염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로 보이는데요. 어떤 디자인 문제가 보이시나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사진#3> 자리에 앉지 못하게 그물이 쳐져있는 공원 벤치의 모습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지자체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팬데믹 상황에도 사람들이 공원에 나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을 디자인해야 할까요?
+좋은 등산 장비를 갖췄다고 바로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쉐르파는 좋은 장비 없이도 등산가를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안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