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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Dec 07. 2024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중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구절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입니다. 이 한 문장은 마치 깊은 산중의 절벽처럼 우리 앞에 우뚝 서서, 생각의 벽에 부딪힌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세상을 논리와 언어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말을 꺼냈기 때문입니다. 왜 그는 침묵을 이토록 강조했을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가 바라본 언어와 현실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언어의 그림 이론'은 이를 잘 설명해줍니다. 가령 "책상이 방 한가운데 있다"라는 말은 실제 방 안의 모습을 언어로 그려낸 것과 같습니다. 마치 사진이 현실을 담아내듯, 언어는 세계의 모습을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모든 것을 언어로 담아낼 수 있을까요? 윤리나 미학, 또는 형이상학적 물음들은 우리 삶에서 매우 소중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이를 말로 옮기는 순간 그 진정한 의미가 흐려지곤 합니다. '아름답다'거나 '옳다'는 판단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경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경계 앞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닿을 수 있는 곳과 닿을 수 없는 곳이 있다고 말합니다. 언어는 사실을 설명하고 논리를 펼치는 데는 훌륭한 도구가 되지만, '신비'라고 불리는 영역에 들어서면 그 힘을 잃고 맙니다. 이는 그러한 영역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중요해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 앞에서의 침묵은 포기가 아닌 존중의 표현입니다. 마치 웅장한 산맥 앞에서 말을 잃듯이, 어떤 경험이나 진리는 말보다는 침묵으로 더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종교적 체험이나 깊은 미적 감동 앞에서 우리는 종종 말문이 막힙니다. 이는 우리의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그 경험의 깊이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 끊임없는 소통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비트겐슈타인의 가르침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때로는 말을 멈추고 듣는 것이, 침묵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SNS와 같이 끊임없는 말들이 오가는 공간에서,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오히려 '말하지 않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결국 비트겐슈타인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것은 단순한 철학적 이론이 아닙니다. 그는 논리-철학논고를 쓴 이후에 펼친 후기 철학에서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너머에 있는 삶의 깊이를 존중하라고 말합니다. 침묵은 비어있음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이해와 체험으로 가는 문이 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태도는, 때로는 침묵하고 경험하며 실천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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