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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Dec 31. 2021

EPI 01. 마을 회관

우리의 영원한 마을, 독립 서점 

아, 거기 사층이에요. ‘마을 회관’이 이 건물에 있는 것이 맞나요,라고 물은 내게 오피스텔의 안내원은 말했다. 다수가 찾는 목적지는 아님을 우회적으로 입증하듯 안내원의 대답에는 뜸이 있었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번 올라가 보라는 안내를 따라 걸음을 내디뎠다. 분주한 얼굴을 한 사람들의 틈에 끼어 어딘가 꽉 메어진 공기를 호흡하며. 


사층에 도착해 네모나고 무거운 문을 힘을 쥐어 휭-하고 열었다. 주황 불빛이 한 겨울밤의 굵은 가로등처럼 쏟아졌다. 


어떤 응대 대신 조용히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반달 그림책과 앤 섹스턴의 시집이 놓여 있고 성탄의 달엔 무거웠던 마음을 털어내어 달라는 순한 소망의 글이 큐레이션을 대신한다.


안김을 받듯 따뜻해진 마음에 외려 몸을 옹그린 채 천천히 마을을 배회한다. LP 턴테이블과 필름 카메라, 골동 티브이를 차례로 발견하고 이 공간을 사진으로 담아야겠다는 인스타 그래머의 욕망과 그저 눈으로만 담고 싶은 낭만주의 사색가의 자아가 치열하게 충동한다. 


그러니까 일단 차나 한잔 마시자 싶어 여기 메뉴는 어떻게 되나요, 하고 물으니 저희는 차 값을 따로 받고 있지 않다는 말과 함께 모과 차를 건네받는다. 부담 없이 편히 쉬시다 가세요. 


거저 얻은 모과 차를 훌쩍이며 김소연의 시를 한 장 읽다가, 어저께만 해도 팀장과 열을 올렸던 올해의 부서 매출액, 달성한 계약 건수와 축배를 올리던 일을 떠올린다. 도시의 흐름 속에 내가 어떻게 일조했는지가 아닌 어떻게 소비되었는지를, 문득 곱씹는다. 


어제 제주에서 도착한 귤이라며 건네주신, 한 손에 꽉 차는 귤을 가지고 앉아 이곳만큼은 절대 상업적이지 않은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소신이 담긴 기사를 읽는다. 뭐든 값을 매기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떠나 그저 편히 앉다 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그의 결의가 어떤 인지의 지점으로 나를 인도한다. 


내가 숨을 얻는 건 이런 환대의 감각으로부터 비롯된 일이라는 것. 베풂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성한 공동체로부터 회복을 배웠다는 것. 세상에는 아무런 대가 없이 곁을 내어주고 위로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넘어지더라도 아주 무너지지는 않았고 세상이 지난할지라도 삶을 환멸 하지는 않았다는 것. 


돌아오는 길엔 춥지 않게 오자는 생존 본능에 충실해 서둘러 차에 올랐다. 낭만을 더해줄 눈도, 비도 내리지 않았고 어찌할 도리 없는 강풍은 매서웠다. 다만 퇴근길에 오른 이름 모를 직장인들의 날 선 경적 소리, 완전히 막혀버린 거리와 창 너머 후우, 하고 담배 연기를 내뿜던 몇이 있었고 그 보잘것없는 풍경이 장난처럼 아름다웠다. 그렇게 그날의 기억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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