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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May 07. 2022

EPI 07. 뜨겁고 강렬한 불꽃

이름에 얽힌 소란스러운 서사

혹시 다혈질이신지, 몸에 열이 많으신지?
나는 아이스 브레이킹에 용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마주할 때면 나는 이 질문의 습격을 직감한다.

하하, 글쎄요. 그냥저냥 어색하게 입꼬리를 들쭉이며 넘긴다.


약간은 무례하지만 시선을 달리하면 호탕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이 질문에 늘 상기되었던 이유는 하나.
나는 실제로 다혈질이고 몸에 열이 많다.

팔자는 이름을 쫓는다는 오랜 풍문을 마치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 나는 성정 자체가 뜨겁다.

오랫동안 뜨거움을 스스로의 역병처럼 여겨왔다. 불시적이고 불균형한, 한 치 앞을 모르게 하고 그래서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뜨거움이 야기할 불행, 에 대해 자주 생각해왔다.

이를 테면 불을 닮은 나는 치열하게 살지 않는 법을 모르고 그래서 자주 소진된다는 것, 불의를 도무지 참지 못하고 강한 몇 가지의 신념을 굽힐 줄 모른다는 것, 무엇보다도 불을 닮은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과 에너지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기질은 나를 완전히 망가뜨릴 것이라는 화자 불명의 경고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왔다. 불의 종말은 까맣게 타버린 재 일 뿐이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부정하는데 익숙하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넘기는 여럿 사이에서 그래, 하며 무릎을 굽혀주는 일이 나는 왜 이토록 어려울까.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정의를 왜 굳이 찾아 나서야 마음이 편할까.


하지만 뼛속부터 뜨거운 팔자를 버릇처럼 한탄하던 중, 불확신을 확신으로 바꾸어준 의외의 순간이 내게 찾아왔다. 이 마저도 불처럼 예고 없이.

가까운 누군가가 나를 가리키며 여자애의 이름에 어떻게 열자가 들어가냐며 개명을 추천했던 것이다. 다혜는 어때요. 적당히 따뜻하고 순할 것 같은 여자 이름이었고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넘겼지만 적잖은 요동이 일었음을 기억한다. 그건 일차원적으로 개명 제안이 어떤 존재 부정과 모욕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지만, 직감적으로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많은 불 꽃, 다열. 나는 결국 뜨거움을 버거워하는 만큼 뜨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버거움은 사실 너무 사랑해서 발생한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이별을 그리며 깨달았다.

다혜, 괜찮은 이름이지만 다열이 아닌 다혜로 사는 삶은 상상만으로도 비극적이었다. 나는 다혜의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뉘앙스처럼 적당히 따뜻하고 순한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다열처럼 불꽃처럼, 그러니까 따뜻하기보단 강렬하고 예쁘기보단 매력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 닿는 곳마다 새로운 불씨가 지펴지는 삶을 소망한다. 태워버릴지 일구어낼지   없는 것이 흠이지만  어떤가, 풀꽃은 지겹고 물꽃은 뻔하니 불꽃, 같은 인생을 추구하는 내가.

스스로를 소란스레 사랑해온 세월을 온전히 품으며,  


이따금씩 눈을 감고 큰 불이 세상의 모든 소음과 마음의 모든 분란을 잠재우는 상상을 한다.

팔자는 이름을 쫓는다는 오랜 풍문의 효력에 대해 숙고한다.  

내가 태어난 뜨거운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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