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를 잡지 못하는 당신에게
학생 시절 시험공부를 해보려 책상에 앉아 책을 피려고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대체 왜 해야 되는 거야?” 그 당시엔 공부하지 않을 이유를 찾고자 하는 마음에 떠오른 질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란 인간은 지금도 일을 할 때 해야 하는 이유가 서지 않는다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으로서 늘 본질적인 것에 의문을 가지는 편이다. 답을 찾는다면 미친 듯이 몰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효율성에 있어서는 좋지만은 않기 때문에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과도한 업무욕심으로 몇 번의 번아웃을 경험한 후엔 최대한 본능을 누르고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선생님을 만나 여러 가지 원초적인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채워갔지만 가장 근본적인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나름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어른들께 “대체 공부를 왜 해야 되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던져도 으레 아래 패턴에서 맴돌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한테 효도해야지”
왜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야지 “
왜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가야지”
왜요?
"...." (그만해)
정말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가서 많은 돈을 벌게 된다 쳐도, 정말 그게 답인가? (약간 화난 것 같아 보인다면 맞다) 내 주변에 고등학교 시절 좋은 대학 가겠다며 죽어라 공부해 일류 대학을 간 친구들이 으레 20대 중반 때쯤 한 번씩은 멈춰 서곤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봐왔다.
일시 정지는 때론 좋은 효과를 낸다. 내 인생을 먼발치에서 볼 때 비로소 큰 그림이 그려지니까. 그렇지만 나이가 들 수록 멈추는 일이 어려워지고 멈춤으로 인한 타격이 커진다. 그 타격감을 온전히 본인이 짊어져야 하는 것은 덤이다. 멈추려면 시간이 넘쳐나는 10 대쪽이 더 확실히 지나간 과거를 돌리고 싶어 후회할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이기적이지만 타격감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나머지 반은 부모님 몫이랄까..)
아직 뇌가 말랑한 시절에 저런 류의 알맹이 없는 답변에 수긍해 버리고 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게 같은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대부분 머리로는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몸은 따로 놀았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떳떳하게 저 질문에 본인의 인사이트가 담긴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머쓱하게 “날 봐, 나처럼 안되려면 좋은 대학 가야지, 안 그래?” 라며 내 안의 자괴감만 부추길 건가? 거기에 듣는 이가 공감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것만큼 수치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아니 공부를 하려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 위해 아래 3가지 필수 요소를 점검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1.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계속해서 좀 더 알고자 하는 욕구가 샘솟는지?)
2. 정말 나에게 맞는 공부를 하고 있는가
(남에게 맞는 공부스타일로 하고 있진 않은지?)
3. 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가
(남의 목표를 내 목표로 삼고 있진 않는지?)
게임을 예시로 위의 3가지 요소를 녹여보겠다.
1) 게임을 시작하면 일단 일정 수준으로 레벨업을 해야 되니 죽어라 피시방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일단 일명 "엉덩이 싸움"을 한다.
2) 어느 정도 레벨이 되면 주변 친구들과 정보 교류를 시작한다. 최근 적용된 업데이트는 없는지, 새로운 전술은 없는지, 치트키는 없는지. 나와 더 잘 맞는 캐릭터는 무엇인지 계속해서 찾아보게 된다. 점점 노는 물이 커지면 학교 친구들 뿐만 아니라 크루를 모집하게 되기도 한다. 이때 만약 게임 과외나 학원이 있다면 수강했을 것이다. (당연히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3) 주변 친구들에 비해서는 꽤 높은 레벨에 도달한 것 같지만 뭔가 석연찮다. 좀 더 넓은 리그에서 놀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온다.
2) 그 이후엔 나만 알고 싶은 전략들을 수집한다. 커뮤니티에 새로운 소식들은 없는지 기웃거리고, 나에게 정보를 얻으러 몰려드는 친구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한다. (나도 한 때 게임에 빠져봤기 때문에 안다)
게임이 됐던 뭐가 됐던 배워나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공부로 놓고 봤을 때 세 가지 요소만 충족된다면 좋아하지 않던 과목이었던, 뭐든 간에 지독하게 빠져들 수 있다.
예체능 분야의 재능은 타고나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빠르게 발견되고 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구력과 인내심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더라도 결국 꾸준히 노력하는 천재들을 이길 수 없다. 더군다나 빠르게 발견된 애매한 재능 때문에 예체능에 시간을 너무 쏟아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버리곤 후회하는 친구들도 꽤 봐왔다.
고등학교 때 좋은 학교에 입학한 선배가 강의를 온적이 있었는데, 자세한 기억은 안나지만 근 한시간동안 너네는 지금부터 시작해도 뭐든 다 될 수 있다며 입아프게 떠들어댔는데 애초에 범생이에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안 해주니 남 얘기니까 쉽게하지,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 해당되는 얘기라고 넘겨들었던 내 자신이 어슴프레 떠오른다.
자아가 굳어지기 전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은 정말 무엇이라도 맘먹으면 노력으로라도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단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뿐) 많은 선택권 속에서 공부라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폭의 범위를 넓혀준다.
그렇다고 남들과 비교해서 가장 큰 폭의 범위를 넓혀야 하는 건 아니고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만큼 가능한 한 최대로 넓혀놓고 이제 잠시 숨을 돌릴 타이밍에 무슨 옷을 고를까 고민하는 마음으로 여유롭게 선택만 하면 되는 것이다.
최근 나이를 먹어가며 멋이 깊어진 어른들을 관찰했는데, 그들은 진부하기보다는 클래식한 면이 더 강했다. 또, 말의 깊이와 풍미를 갖추기까지 지나온 경험들이 만들어낸 여유가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여유를 가질 수 있는지가 인생에 상당히 중요한 문제들을 좌우한다. 이는 비단 경제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관계나 커리어 등 삶의 여러 측면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이게 수면 아래서 부단히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는 이유고 해야 될 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이 마중물을 붓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사람마다 갖고 있는 한계 안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적어질 것이고 기회가 와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내 기회가 아니라며 미루기까지 하는 불상사가 터진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며 자신의 한계를 낮추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능력은 무한하지만 시간은 유한하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시험점수라는 사실에 눈이 가려 공부의 본질을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은 멀어져 버린다. 마음이 여유롭지 않을수록 당연하게도 시야가 좁아지고 선택한 결과에 후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 또한 공부의 이유를 찾지 못해 늦게 시작한 사람으로서 나중에 자식이 태어난다면 꼭 이 대답을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