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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오 Oct 10. 2019

2화 우리들의 집 OUR HOME

[우리는 캠핑을 갑니다] 두 번째 이야기

첫, 처음, 첫 번째.


이 말은 개인적으로 마법의 단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장 순수하게 설레는 기대감에 가득 찬 순간을 함축한 말, 어떠한 순간에도 이 단어를 붙이면 그런 느낌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의 첫 번째 캠핑
일명 첫캠


정말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처음’이라는 단어의 마법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기대 넘치는 시작은 아니었다. 우리의 첫 캠은 서투름과 새로움이 뒤범벅된 불완전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그 불완전함에 우리가 오롯이 매료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시작은 그러했다. 어설프고 아무것도 없었던 시작.


첫 캠을 가기 전 가장 고민되었던 부분은 캠핑 장소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아니라 남편의 고민이었지만 말이다. 이때에도 도움을 준 건 남편이 활동하고 있던 자동차 카페 모임이었다. 여러 캠핑 고수들로부터 첫 캠에 괜찮은 캠핑장을 추천받았다. 남편은 그중에서 다음 세 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캠핑장을 선택했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 내 위치할 것

잔디가 있는 캠핑장일 것

부대시설이 이용하기 괜찮을 것


집에서 한 시간 거리 위치를 고려한 건 오로지 아들을 위해서였다. 






아들은 남들보다 일찍 세상이 보고 싶었는지 임신 7개월쯤 되던 때부터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애기가 나오려고 하네요. 조산증인 것 같으니 입원해야겠어요.


미세먼지가 가득한 봄의 어느 날, 병원에서 내 배를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아침부터 아랫배가 이상하게 자꾸 두근거리고 몸살이라도 오는 것처럼 몸이 가라앉는 기분이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닐 거라 생각했었는데 입원이라니? 출산이라니? 순식간에 멘붕이 찾아왔다.


의사의 말에 곧바로 나는 아기가 나오지 않게 해주는 링거를 맞으면서 병실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그때만 해도 난 내가 금방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저 전날 미세먼지 속에서 오랫동안 걸어서 피곤해서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가 그러니까 어린이날이 낀 휴일을 앞둔 4월의 마지막 주였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그때가 길일이었던 건지 출산모가 많아 병실이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나와 남편은 출산도 하지 않았는데 출산한 사람들이 회복하는 회복실에서 하룻밤을 자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행히 수치가 괜찮아져 곧바로 퇴원을 했다.


하지만 그날 밤 또다시 찾아온 진통에 다시 병원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난 약 6주간 병원 밖을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정확히 병원을 나온 일주일 뒤 아들을 낳았다. 진통이 시작된 11시부터 정확히 1시간 17분 만에. 정말 이것이 진통이구나 싶었던 순간은 11시 30분부터였으니 실제 진통 시간은 47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편이 운전하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이러다가 아들을 낳을 것만 같아서 그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남들은 낳으려고 힘주는데 난 반대로 안 낳아오길 바라며 고통을 견뎌야 했다. 병원에 도착한 건 12시 즈음이었고, 그 후 십여 분 만에 바로 아들을 낳았다. 그게 겨우 겨우 약을 맞아가며 9개월을 채운 날이었다.


사실 1개월 빨리 나온 거를 조산이라고 하긴 어렵다. 5~7개월 만에 태어난 진짜 위험했던 조산아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일단 병원에서 받은 기록이 조산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근 2개월을 병원에서 버텨가며 얻은 귀한 자식이었으니 더 특별했다. 그래서 가끔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비싸게 얻은 자식이라고 그런다. 병원비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웃음)


조산한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식탐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발달도 보통의 아이들에 비해 느린 편이고. 우리 아들은 두 개 모두 해당됐다. 식탐에 많아서 생후 1개월 만에 태어난 몸무게의 두배가 되는 바람에 우린 의사 선생님께 크게 혼이 났다. 이러면 비만이 된다며 앞으론 조절하라는 말에 그 뒤부터 수유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발달도 남들 뛰고 있을 때 아들은 겨우 걸었고, 남들은 청산유수로 말하고 있을 때 아들은 겨우 말을 텄다. 잔병도 왜 그렇게 많았는지 거의 몇 달을 계속 비염과 감기 증세로 약과 항생제를 달고 살았다. 오죽했으면 친정엄마가 한마디 하셨을까.


그러지 말고 한약 좀 지어 먹여라. 그렇게 약을 달고 살면 쓰겠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곱게 감싸서 키우는 바람에 오히려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 든다. 사실 아들을 낳고 일 년 뒤 회사에 복귀할 때까지 나와 아들이 외출한 횟수는 조금 과장하여 손에 꼽는다. 차를 타고 멀리 갈 정도의 외출은 병원에 접종을 위해 갔던 일을 빼면 정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도 있다.




어쨌든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아니면 둘 다이든 아들은 장기 외출을 하고 나면 주로 많이 아팠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남편이 정한 규칙이었다. 아들이 많이 피곤하지 않은 한 시간 정도에 위치한 캠핑장으로.


그렇게 고려하여 선택한 곳은 춘천에 위치한 황금박쥐 캠핑장이었다. 캠핑장을 고르고 예약을 하려고 보니 생각만큼 예약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박 예약이 우선이래... 어렵고만.”


우리의 첫 캠은 토요일에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올 심산이었기 때문에 연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은 반대로 1박을 하라고 하면 갈지 말지 고민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이땐 왜 2박 이상이 우선권을 갖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연박을 하면 캠핑장 주인이 좋으니까 연박 우선 예약도 하고 할인도 해주는 건가 생각했다.


“악! 잔디 사이트는 이미 다 예약이 찼어. 남은 건 파쇄석...”


또 다른 문제는 연박 예약이 끝나고 나니 잔디 사이트는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건 파쇄석 사이트. 파쇄석 사이트는 말 그대로 손가락 한두 마디 크기의 돌이 깔린 곳을 말했다. 난 별 생각이 없었지만 남편은 혹시나 파쇄석 사이트에서 자면 등이 베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 듯했다.


“뭐 어때. 텐트 바로 앞에서 모래 대신 돌로 놀이할 수 있고 좋지 뭐.”


“그런가. 그럼 어디로 하지?”


우리는 남아 있는 자리 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자리를 선택해서 예약했다. 나름 동서남북 방위까지 따져가면서 해를 고려해 선택했다.


그리고 대망의 그날.


상상은 후다닥 짐을 싣고 멋지게 도로를 달려 캠핑장에 도착하고 즐겁게 캠핑을 즐기다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웬걸. 차에 짐을 싣는 건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트렁크에 짐 쌓기에 요령이 없다 보니 별거 실치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트렁크가 가득 차버렸다. 원래 트렁크가 큰 편은 아니었긴 했는데 텐트와 매트 등이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결국 그 녀석들은 머리 위로 올라갔다. (머리 안 올렸음 어쩔뻔했어!)


가장 골치였던건 엉겁결에 충동구매한 벤치였다. 이게 완전 애물단지여서 트렁크에 들어가지도 않아 결국 머리에 이고 가게 되었다. 겨우겨우 짐을 싸서 출발한 우리는 점심이 훌쩍 지난 오후에 도착했다. 도착해보니 이미 대부분의 캠퍼분들은 일찌감치 텐트를 모두 치고 난 다음 쉬고 계셨다. 특히 우리 바로 옆에 멋진 타프를 치고 여유롭게 노트북으로 무언갈 시청 중이었던 부부는 한눈에 보기에도 고수의 느낌이 풍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말이다.


남편은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정석대로 얼른 의자와 모래놀이 세트를 꺼내어 세팅해줬다. 


그 이유인즉,


남편이 가입한 자동차 모임(동일 모델 차주 카페였다)에서 남편이 따라 하고 싶은 캠퍼 모델이었던 분이 조언해주시기를, 일단 캠핑장에 도착하면 아이와 아내를 위해 의자와 테이블 장난감 등을 먼저 세팅해주라고 했단다. 초보 캠퍼는 분명 99% 텐트를 치는데 헤맬 테니 그동안 가족들의 짜증 수치를 내려주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실제 그 조언은 꽤나 유효했다. 왜냐하면 남편이 텐트를 치는데 상당시간이 소요되는 동안 아들과 나는 사이트 옆에서 모래놀이 세트로 한참 놀아야 했으니까.


정말 한~~~~~~~~~~~~~~참.


이 글을 쓰려고 보니 그분께서 조언을 하나 빼먹으신 것 같다. 바로 텐트 설치법 숙지하기.


첫 캠을 가기 전엔 자기가 구매한 텐트의 설치법은 꼭!! 동영상을 통해 숙지하고 가시길 추천드린다. 그렇게 해도 실제 해보면 헤맬 가능성이 다분했다. 바로 옆에서 와이프와 아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으면 헤맬 가능성은 거의 확신컨데 백프로다.


그렇게 남편은 폰으로 설치법을 찾아가며 한참 동안 텐트를 쳤다. 날씨 화창한 4월의 봄날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텐트를 겨우 치고 난 다음 보니 맞은편 잔디 사이트에 텐트를 친 어느 부부는 우리 아들보다 어린아이를 샤워시켜오는 게 보였다. 과장 한 스푼 보태서 아직도 해가 중천인데 벌써 목욕을 시키나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보통 괜찮은 캠핑장은 대부분 산속에 위치해 있다 보니 도시보다 해가 일찍 졌다. 게다가 아직 4월이기 때문에 해가 지고 난 다음엔 날씨가 다소 쌀쌀해졌다. 그러니 애가 감기 들지 않길 원한다면 아직 해가 있는 오후 시간에 미리 씻겨오는 것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캠핑에서의 저녁도 도시에서의 저녁시간보다 빨랐다. 마치 빛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의 시골처럼 해가 떨어지기 전에 저녁 준비를 시작한다. 도시에서의 빠르고 편리한 저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시도 때도 없는 도시의 저녁은 늦도록 때를 모르지만 캠핑에서의 저녁은 시간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아마도 사람들이 캠핑에 빠지는 건 그곳에서의 시간은 자연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그곳에서는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 TV도 컴퓨터도 없었다. 스마트폰이 옆에 자리해 있지만 아들과 놀기, 밥 준비하고 먹기, 자연을 보며 멍 때리기를 하다 보면 스마트폰에 대한 욕구도 어느 순간 사라져 있다.

우리의 첫번째 집 데날리 텐트와 아들 그리고 나



첫 번째 캠핑은 어떤 걸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가서 부딪친 게 다였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가서 텐트 치고 부랴부랴 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은 뒤 텐트 안에 들어가 자고, 아침에 일어나 라면을 끓여먹고 짐을 다시 정리해 돌아온 것이 다였다.


뭐야 그게. 가서 고생만 하다가 왔네?


단순한 언어 표현으로만 보면 딱 이 반응이 나올 것이었다. 사실 캠핑 가서 뭔가 특별한 걸 할 거라고 기대하는 건 큰 오산일 수 있다. 직접 해보니 캠핑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실제로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느낌, 기대감, 만족감을 어떻게 하면 잘 설명해줄 수 있을까? 머리가 좋지 않아 한번에 그걸 설명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우리의 경험, 아들과 남편과 내가 직접 경험했던 것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럼 어쩌면 누군가 우리의 글을 보고 캠핑이란 경험을 통해 자연스러운 사람이자 가족이 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보니 첫 캠핑이 소위 말하는 미니멀 캠핑이었던 것 같다. 좀 더 미니멀한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어설프게라도 3인 가족이 정말 필요한 필수품만 챙겨갔던 그때가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횟수가 늘어나면서 우리의 짐은 점점 더 불어나 어느새 집을 옮기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곳이 없기에.


우리가 신혼살림부터 빠져들었던 소위 ‘우리 둘만의 공간 꾸미기’는 둘이 셋이 되고 ‘우리’가 ‘금지옥엽’이 되면서 아주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바로 남편의 본가로 들어가게 된 것. 우리 집이라고 여겼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우리 공간이라고는 방 한 칸이 전부인 생활로 접어들면서 우리가 갖고 있던 로망과 즐거움은 말 그대로 ‘뚝’ 끊기듯 단절되었다. 오래된 스테인리스 주방 상판까지 갈고 원하는 가구가 없어 직접 가구까지 만들어가며 즐겼던 그 생활은 기약 없는 휴업으로 접어들었다.


그런 우리에게 시작된 캠핑은 가뭄에 단비처럼 우리를 적셔주었고 텐트는 오롯이 우리만의 집이 되었다. 아주 짧지만 정말 우리만이 존재하는 우리의 공간, 우리의 집. 남들은 자연이 좋아서 캠핑을 간다고 하는데 우린 달랐다. 자연이 좋아서 가기도 하지만 그보다 큰 건 그곳에선 우린 우리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셋이 진정으로 가족이 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캠핑이었다.




한참 내가 캠핑에 빠져들어서 이것저것 캠핑용품을 지르자고 하던 때에 남편이 고백하기를.


우린 집이 없잖아. 네가 편히 쉬라고 캠핑을 시작한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기에 좀 감동이었다. 그 말은 그렇게 가슴에 와 닿아 콕 박혔다. 내게 있어 캠핑은 ‘집’이구나. 나만의 ‘집’, 내가 쉴 수 있는 ‘공간’.


마이 홈 My home


그리고 첫 캠핑을 다녀오고 난 뒤 말도 잘하지 못하던 아이가 ‘캠핑’을 직접 말하기 시작했다.


“아들, 캠핑 가고 싶어?”


(끄덕끄덕)


아빠가 시작했고, 나의 가슴에도 박힌 캠핑은 아들의 가슴에도 새겨졌다. 그렇게 우린 무언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다음 캠핑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렇게 캠핑은 우리들의 집이 되었다.


우리들의 집 our home




황금박쥐 캠핑장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캠핑장입니다. 아름다운 홍천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위치한 황금박쥐는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고, 아기자기한 소품 등이 있어 캠퍼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입니다. 빈티지한 감성이 묻어나는 카페도 같이 운영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따끈하고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도 있지요. 게스트룸도 같이 운영하고 계시기 때문에 캠핑을 하지 않는 가족/지인들과 함께 하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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