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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오 Oct 17. 2019

3화 당신에게 비(Rain)는 어떤 존재인가요

[우리는 캠핑을 갑니다] 세 번째 이야기

비가 오는 날 캠핑하는 것은 어떨까?


아마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대답은 천차만별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은 비가 오는데 어떻게 캠핑을 하냐며 펄쩍 뛸 테고, 어떤 사람은 비가 와서 운치는 있겠다며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상을 해보자면 긍정적인 답변보단 부정적인 답변이 더 많을 것이다.



축축
흙탕물
구질구질


우리가 흔히 비와 함께 연상할 수 있는 부정적인 단어들이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비는 항상 천덕꾸러기였다. 도로에 고인 빗물, 덥고 습한 공기, 젖은 우산과 사람들로 뒤엉킨 지하철과 버스 안, 엘리베이터와 복도에 남은 검은 발자국들. 도시에 내리는 비는 낭만보다 현실이었고 깨끗함보다 더러움이었다. 그래서 항상 비가 내리는 날에 외출한다는 것은 굉장히 귀찮고 고민되는 일이었다.


비도 오는데 우리 그냥 집에 있자. 이런 날엔 배달음식 시켜먹는 게 최고지.


이게 우리의 현실이었는데, 그 현실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뒤바뀌었다.

바로 우리의 두 번째 캠핑에서 말이다.






첫 번째 캠핑을 다녀오고 우린 곧바로 두 번째 캠핑을 기획했다. 캠핑을 가서 특별히 한 것도 없었기에 누가 자세히 물어보면 특별히 할 말도 없었지만, 우린 어느새 다음 캠핑을 잡고 있었다. 한 번이 어렵지 그 한 번을 하고 나니 그동안 사 모은 것이 아까워서라도 캠핑을 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계기는 그냥 첫 캠핑 경험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 년 여가 지난 지금 떠올려봐도 특별히 남아 있는 기억이 없는 그날의 경험이 지금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신기한 기분이다.


현재 육아노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아이가 있는 부부'에겐 주말마다 딱히 일을 잡지 않아도 시댁, 친정, 아니면 아이와 관련된 일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에 공감하실 거라 생각한다. 우리도 그랬다. 때문에 행사가 없는 주간에 자연스럽게 캠핑이 자리 잡았다. 우연찮게도 우리의 두 번째 캠핑은 어린이날이 낀 연휴기간으로 결정되었다. 게다가 캠핑장 예약을 늦게 알아본 탓에 첫 번째 캠핑을 갔던 캠핑장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인기있는덴 이미 예약이 끝난 것 같아!
뭐??


다급한 남편의 말에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인기 있는 캠핑장의 소리 없는 자리 쟁탈전이라는 것을. 수도권 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캠핑장이 있었지만 캠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캠핑장은 한정되어 있었고 경쟁자들은 너무 많았다. 10년 넘게 캠핑을 즐기고 있는 캠핑의 고수부터 우리 같은 초보 캠퍼까지. 상황이 그렇다 보니 특히 연휴기간이나 특정 이벤트 시즌에 괜찮은 캠핑장은 이미 만실이었다.


오! 여기 어때?


여기저기 알아보던 남편이 어디서 추천을 또 받았는지 한 캠핑장을 보여줬다. 인스타그램 이미지를 보니 숲 속 가운데 띄엄띄엄 위치한 캠핑사이트가 무척 매력적인 곳이었다.


"애들이 좋아하는 방방도 있고 텃밭도 있는데 상추 같은 거 예약자들에게 무료로 따먹을 수 있게 해 주시고 그런데~"


"그래? 괜찮다~ 좋아!"



엇! 여긴 자리가 지정석이 아니라 선착순이네.
그런 것도 있어?


우리에겐 신개념이었다. 선착순 자리 배정 캠핑장이라니. 캠핑 1년 차가 넘은 지금의 우리에겐 선착순 자리 배정은 익숙한 룰이었지만, 캠핑을 이제 시작하는 일 년 전 우리에겐 굉장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좋은 자리를 얻고 싶으면 무조건 빨리 가서 배정을 받아야 하는 생존 룰이라니. 듣자 하니 정말 인기 있는 곳은 오픈 시간 전부터 와서 자동차 대기 줄을 선다고 했다. 이건 정말 캠핑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를 신(NEW) 문화였다. 한정판 게임을 사기 위해, 맛집을 누구보다도 먼저 찾아가 맛보기 위해 줄 서는 일 이외에도 좋은 캠핑 사이트를 얻기 위해 줄을 서는 것도 이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문화였다.


캠핑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캠핑을 가기 전 짐을 싣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캠핑 장비가 많을수록 장비를 실을 차의 여유공간이 적을수록 그 노동은 비례한다. 그런 일을 아침 일찍 완료하고 오픈 시간 전에 도착해 대기줄을 선다는 건 캠핑장이 바로 코앞이지 않은 이상은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우리처럼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더더욱.


물론 가능한 옵션이 몇 가지 있다. 캠핑장비를 미리 실어둘 수 있는 트레일러가 있거나, 아예 일체 된 캠핑카를 갖고 있거나, 캠핑 장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솔로캠핑(일명 솔캠)이거나 미니멀 캠핑일 경우엔 가능하다. 이중 어느 것에도 포함이 되지 않는데 줄 서기가 가능한 캠퍼가 있으시다면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존경합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합니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캠핑을 가기 전 날씨를 확인했는데 둘째 날이 비가 오는 것으로 떠있었다.


"설마 오겠어?"


아직 한 번의 캠핑 경험이 전부였던 우리는 날씨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다. 그저 캠핑을 가야겠다는 생각과 설마 정말 비가 올까란 의심으로 캠핑을 추진했다. 요즘 날씨예보는 옛날처럼 정확도를 따지기가 어려웠으니까. 나도 모르게 '설마'라는 금지어를 내뱉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이번 캠핑장은 우리가 첫 캠에 갔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가는 길도 동일해 지난 캠핑장을 지나 산속으로 더 들어가면 있었다. 그래서인지 캠핑장의 이름도 '더숲 캠핑장'이었다. 아직 캠핑 경험이 없었던 우리는 아니나 다를까 출발이 늦어졌고,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좋은 자리들은 다 차 있는 상황이었다.


더숲 캠핑장은 산길과 숲을 이용하여 만들어서 마치 숲 속에서 캠핑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하늘 위로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파쇄석이 깔린 캠핑 사이트가 드문 드문 놓여있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굽이 굽이 길 사이로 다양한 방향으로 계단처럼 사이트들이 놓여 있는 형태였다. 어떤 사이트는 무척 넓어서 여러 팀이 같이 와서 캠핑을 즐기기에 좋았고, 어떤 사이트는 독립된 하나의 사이트로 되어 있어서 혼자 캠핑을 즐기기에 좋아 보였다.


캠핑장을 운영하는 주인분께선 자연적인 캠핑장을 선호하셨는지 자동차가 올라가는 길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적인 흙길이었다. 경사가 조금 되어서 차가 과연 올라갈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들었지만 일반 승용차들도 잘만 올라가는데, 나름 오프로드 컨셉 SUV가 이런 길을 못 간다면 굉장한 낭패였기에 손에 땀을 쥐며 올라갔다.


남아 있는 사이트 중에서 우리는 캠지기님의 추천을 받아 작고 아담한 장소를 골라 차를 세우고 텐트를 쳤다. 우리의 집을 지은 장소는 방방이나 개수대 등과 같은 편의시설과는 먼 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대신 여유와 아늑함이 있는 곳이었다. 텐트를 치는 몫은 여전히 남편의 일이었고 그 사이 지화니와 나는 파쇄석을 가지고 놀이를 시작했다.


우리들의 초기 캠핑은 장비가 현재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에 텐트만 치고 나면 크게 세팅이라는 것을 할 것이 없었다. 그냥 짐을 옮기고 펼쳐두는 것 정도? 텐트도 지난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단 빨리 칠 수 있었다.




우리 방방이 하러 가볼까?
(끄덕끄덕)


아직 말 대신 행동과 의성어인 아들을 데리고 방방으로 향했다. 한 손엔 그날 처음으로 갖게 된 변신자동차 로봇이 들려 있었다.


아들의 나이는 어느덧 4살(당시 나이로).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들이 언제부턴가 '카봇'을 말하기 시작했다. Tv에서 자동차가 변신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것을 갖고 싶어 했다.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남자아이에게 있어 '바퀴 달린 것'과 '변신하는 것'은 여자아이에게 '공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날 캠핑을 기념하여 아들에게 카봇을 사주기로 했다.


시중에는 엄청 많은 변신자동차들이 있었다. 종류도 다양하고 시즌별로도 엄청 많은 로봇들이 있었다. 듣자 하니 어떤 로봇은 이미 생산이 끝난 것도 있어서 오히려 희귀 템으로 불리며 비싸게 팔리는 것도 있단다. '드디어 우리도 시작인 건가......'라고 생각하며 아들의 첫 변신자동차를 골랐다. 직접 마트에서 아들이 고른 변신자동차 로봇은 '헬로카봇'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아머 포스'였다.


왜 하필 아머 포스였을까. 고르고 보니 아머 포스는 다른 카봇에 비해서 변신이 좀 까다로운 편이었다. 우린 그런 것도 전혀 모르고 아들이 고르는 걸 샀지만 열어놓고 보니 변신 모드도 세 가지 버전으로 가능했다. 그래서 난 캠핑장에서 수도 없이 아머 포스를 변신시켜줘야만 했다. 로봇에서 탱크로, 탱크에서 헬리콥터로, 헬리콥터에서 다시 로봇으로. 아들은 직접 변신시키지도 못하는데도 무척 좋아했다. 말을 하지 못해 헬리콥터로 변신시켜 달라는 것을 오로지 소리와 손짓으로 전달했다. 그것을 재빠르게 알아듣는 건 나의 몫이었다.


(두 손을 머리 위에서 돌리며) 타 다다다


헬리콥터로? 알았어.


아들의 첫 변신 장난감은 캠핑장에서 만난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완전 대인기였다. 아들이 새로운 장난감이라서 손에서 내려놓질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들고 방방에 내려가자 아이들이 그것을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신기하게도 캠핑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낯선 사람인 나에게 말을 거는데 스스럼이 없었다. 한번 만져봐도 되는지 변신시켜봐도 되는지부터, 조금 있으면 자기의 개인적인 일과 가족 얘기까지 술술 나온다. 듣자 하니 어떤 아이들은 캠핑장에서 만난 또래와 금방 친해져서 남의 텐트에 가서 저녁도 얻어먹기도 한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직 말도 못 하는 아들을 둔 난 정말 신기한 일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나름 생각을 해봤다. 그 결과 얕은 추측이지만 캠핑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마음이 열려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도시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던 일들이 캠핑장에서는 마치 마법처럼 '시골의 정'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도시에서보다 열려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그런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은 밤에 아들과 손을 잡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서였다. 숲 속이다 보니 해는 역시나 도시에서보다 빨리 지고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캠핑장 곳곳에서는 텐트마다 조명을 켜고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 있는 길 사이사이를 비추는 조명을 따라 내려가는데, 문득 고향집에 내려간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둠이 내린 밤 집집마다 들어온 불빛들과 숲 속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들이 마치 어린 시절 속으로 들어온듯하게 만들었다.


신기한 기분

그 요상스러운 기분의 정점을 찍었던 것은 바로 그다음 날 새벽이었다.



투둑 투둑


귓가를 깨우는 소리에 잠들어 있던 눈을 열어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서늘한 공기로 가득한 텐트 안에 울려 퍼졌다. 제법 요란한 소리였는데 이상하게 거슬리지 않았다. 물론 다시 잠들지는 못했지만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누워 푹신한 침낭을 덮고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은 묘하게 감성적이었다.


숲 속 캠핑장은 고요했고 빗소리는 천천히 내 마음에 젖어들었다. 텐트 안에 있었지만 마치 숲 속 한가운데 누워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숲 속의 자연인이 된 것처럼.


그래 자연인.

그런 느낌이었다.


이너텐트에서 밖으로 나가 보잘것 없는 장비로 어설프게 자리하고 숲 속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도 즐거웠다. 그 순간순간마다 비로 인해 옷이 젖겠다던가 젖은 텐트를 어떻게 들고 가지 라던가 비가 와서 너무 구질구질하다는 생각 따윈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 빗속에 앉아 있는 지금이. 


아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는지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비옷을 입고 밖에 나가 파쇄석 놀이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이란 본능과 순수함의 결정체이니 뒷감당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정말 의외였던 건 이 순간만큼은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해진 나와 남편이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사실 난 그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위로를 하려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에게 아픔을 당연시화 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화가 난다.


누구는 아플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니까.

하지만 아픈 청춘도, 아프지 않은 청춘도 공통의 전제가 있는 것 같다. 그건 바로 경험.


경험을 해본 것과 해보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다. 경험을 한 사람이 하는 말과 해보지 못한 사람이 하는 말은 그 농도가 다르다. 어쩌면 그래서 그렇게 지금의 부모세대들이 자식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시켜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양한 걸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식이 자라 나주길 기대하면서.


우리는 그 수많은 경험 가운데 아들에게 캠핑이라는 경험을 주고 있으며, 캠핑을 통해 가족이라는 관계성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두 번째 캠핑에서 만난 비는.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었다.


그건 바로 자연에서 하나 되는 기분이었다.


바로 그 경험으로 인해 우린 더욱 캠핑을 사랑하게 되었다. 비록 비로 인해 캠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 고생했지만, 지금도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잊지 못한다.


바로 그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또다시 캠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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