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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오 Oct 24. 2019

4화 너를 보며 눈물짓던 그 날

[우리는 캠핑을 갑니다] 네 번째 이야기


4년,

그동안 아들을 키우면서 가슴이 먹먹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그날까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무척 신나는 날이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남편이 캠핑과 관련된 정보를 얻고 공유해왔던 자동차 모임 카페에서 주최한 회원 전용 캠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추진된 캠핑은 모임 카페에서도 처음 주최하는 것이어서 조금 어설픈 부분도 있었지만, 같은 차종의 차주분들이 한자리에 모여 캠핑이라는 같은 취미문화를 나누는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했다.


그럼에도 내가 가슴이 먹먹했던 순간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벤투스님과 저번에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캠핑 추진하는 거 같던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꺼낸 말에 곧바로 가자고 대답했다. 몇 달 전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편 눈치가 앞으로도 계속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것 같았기에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자고로 사람은 자주 만나야 친해지는 법이다.


당시 우리는 캠핑을 고작 두 번 다녀온(캠핑이 결정되던 당시는 두 번째 캠핑 장소였던 더숲 캠핑장을 다녀온 직후였습니다.) 초보 중에 초보였지만 그런 건 크게 개의치 않았다.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니까.


모임 카페에서도 첫 행사여서 그에 따른 준비시간도 필요했기에 공식 캠핑은 6월 말로 결정되었다. 그때까지는 대략 한 달여의 시간이 더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이에 2박 3일로 세 번째 캠핑을 다녀왔다.


이미 두 번의 캠핑으로 1박 캠핑은 휴식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세 번째 캠핑은 무조건 2박으로 결정했다. 제대로 된 캠핑이라는 문화와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적어도 캠핑장에서의 하루가 필요했다. 출발한 날과 돌아오는 날에 해야만 하는 텐트 노동(치고 접고)을 제외한 순수 캠핑 시간, 그게 적어도 하루(full day)가 돼야만 캠핑을 오롯이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떠났던 세 번째 캠핑은 우리에게 절반의 성공(?)과 부족함의 아쉬움을 가득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한 달이 지나기가 무섭게 햇빛이 뜨거워지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괜히 아웃도어 라이프가 아니었다. 더워지는 날씨에 필요한 물품 구입이 시급했다.


첫째는 워터 저그

더운 날,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면 필수품이다. 워터 저그에 얼음을 담고 물을 부어 놓으면 언제든지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다. 


둘째는 서큘레이터(또는 선풍기)

이건 설명이 필요 없는 필수품이다. 요즘처럼 조금만 더워져도 바로 에어컨을 키는 현대인들에겐 서큘레이터는 여름 캠핑에서 빠트릴 수 없다. 차마 에어컨은 가지고 다닐 수 없으니까.


셋째는 타프(그늘막)

여름 캠핑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늘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엔 그늘도 답이 없지만 바람이 부는 날엔 그늘 속에만 들어가 있어도 체감온도가 확 내려간다. 때문에 나무가 없더라도 그늘을 만들어줄 수 있는 타프 또한 여름에 꼭 필요했다.


다가오는 여름 캠핑을 위한 준비를 부랴부랴 마치고 드디어 모임 카페의 첫 번째 공식 캠핑에 참여했다.






캠핑장소는 포천에 위치한 '아버지의 숲'이라는 곳이었다. 이름부터가 남다른 이곳은 캠핑장 자체가 거대한 숲이었다. 캠핑장의 입구에 있는 펜션과 관리실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니 흙길을 따라 키가 무척 큰 메타세쿼이아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었다.


"우와~"


보자마자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 정도 크기의 나무들이면 몇십 년 동안 이 자리에서 자라났을 것이다. 어쩌면 캠핑장의 이름처럼 아버지가 젊으셨을 때 직접 심고 키워낸 숲일지도 몰랐다. 푸르른 산과 맑은 계곡, 깨끗한 공기 속에서 아버지의 정성으로 조금씩 조금씩 하늘을 향해 커갔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곳은 아들이 성인이 되어 자연을 좋아하는 캠퍼들이 사랑하는 캠핑장이 된 것이다. '아버지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꽤나 낭만적인 상상이 된 탓은 캠핑장의 이름이 너무 예뻐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숲'은 일부 캠퍼들로부터 5성급 캠핑장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보통 시설이 좋은 캠핑장을 표현할 때 그렇게 표현하시는 것 같은데, '아버지의 숲'에서는 편의시설이 아주 좋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는 않았었다. 워낙 요즘에는 시설이 말 그대로 반짝반짝한 곳들이 많아지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곳이 5성급인 것은 아마도 자연 덕택이지 않을까 싶었다.


거의 캠핑장 전체를 드리우고 있는 나무들도 그렇거니와 캠핑장을 둘러서 흐르는 계곡 또한 무더운 여름날 아이들이 놀기에 매우 좋아 보였다. 그리고 캠핑장 주변으로 걸을 수 있는 산책코스도 있어서 자연을 만끽하고 싶은 캠퍼들에게는 무척 좋은 곳이었다.




이번 캠핑에서 먹을 음식들을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캠핑장으로 가는 길에 포천에 위치한 마트에 들려서 갔더니 이미 몇 팀이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뒤늦게 자리를 잡고 짐을 내려놓은 뒤 ‘우리 집’을 짓기 시작했다.


몇 달 전 오프라인 모임에서 봤던 사람도 있었으나 그때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우리 가족 모두 사교성이 높지 않다 보니 적극적으로 인사를 하거나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게 굉장히 어색했다. 고마웠던 것은 먼저 사람들이 다가와 우리에게 말을 걸어준 것이었다.


타프(그늘막)를 칠 때에도 다들 나서서 치는 것을 도와줬다. 우리에게 타프를 친다는 것은 아직은 난이도 있는 일이었다. 쳐본 사람이야 알겠지만 일단 타프의 방향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잘 모를뿐더러 누군가가 폴대를 잡아줘야지만 줄을 잡아 팩을 박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맹점은 요령과 감이 없어 위치 잡는데 자꾸 실패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회원 찬스(?)로 한 번에 했으니 고마울 수밖에. 게다가 어떻게 하면 쉽게 칠 수 있는지 팁까지 알려줘서 무척 고마웠다.


이번 캠핑은 모임 카페에서 처음으로 추진한 캠핑이었지만 준비는 철저했다. 캠핑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의 닉네임을 알 수 있게 닉네임이 적힌 목걸이와 웰컴팩을 나눠줬고, 저녁시간에는 모든 참가자들이 서로 친해지기 위한 목적으로 각자 준비한 선물을 나누는 행사도 진행했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그 덕은 아무래도 캠핑을 주최한 사람과 옆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나서서 진행을 도맡아 하고, 회비를 걷은 것도 아닌데 직접 사비로 캠핑에서 필요할 것 같은 물품을 사서 웰컴팩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가만히 외부인 된 입장으로 보고 있으니 갑자기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 사진 관련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서 있었던 ‘군용 막사 혼자 치기 사건’ 말이다. 단순한 댓글에서 시작되어 하나의 축제가 되었던 그 사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카페 캠핑도 누군가의 말로 시작되었지만 이런 문화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모임으로써 하나의 작은 축제가 된 것이다. 거기에 우리는 같은 차를 몰고 있으며, 같은 모임 카페의 회원이고, 같은 캠핑문화를 즐긴다는 것은 작아 보여도 강한 소속감을 부여해줬다.


소위 우리는 하나라는 소속감을 말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번 카페 캠핑을 통해 원했던 것은 단 하나였다. 아들과 비슷한 또래 친구들 간의 교류. 바로 그것이었다.


눈치가 빠르신 독자님께서는 이미 알아채셨겠지만 결론적으로 대실패였다.


한번 상상을 해보자.


자존심이 강하고 욕심이 많은 아이다. 게다가 외동으로 자라서 친구관계도 부족하다. 그런데 말까지 안돼서 소통이 안된다. 그런 아이가 또래의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또 같이 놀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아들은 이미 놀고 있는 친구들과 같이 물놀이를 하고 싶었다. 나를 보채서 계곡으로 들어간 아들은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물장구를 쳐 오늘 처음 만난 친구에게 물을 뿌렸다. ‘같이 놀자.’ ‘놀고 싶어’라는 말 따위는 할 줄도 할 수도 없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노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아들이 들은 말은


사과해. 사과하지 않으면 너랑 놀지 않을 거야!


였다.


그 순간 ‘미안해’라는 말조차도 할 수 없었던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아이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아이가 자리를 뜰 때까지 말이다. 그 모습을 보는데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누구에게든 마찬가지이겠지만 내게도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다. 그게 ‘나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당시와 그 후에 내 가슴에 남겨진 무언가는 내가 앞으로 살아갈 평생 동안 때가 되면, 혹은 아무 때고 나의 가슴을 멈추고 만다.


내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 중 하나는 ‘넌 참 독특한 애야.’라는 말이다. 여기서 독특하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 단어가 포괄하는 의미는 훨씬 더 넓다. 괴상하다. 이상하다. 참 재미있다. 신기하다. 등등


그래서 독특하다는 말에 넌 상처 받았어?


누군가 물을 것 같아서 미리 대답을 하자면 ‘그 말’ 때문에 상처가 됐던 것은 아니었다. ‘그 상황’ 때문에 상처 아닌 상처로 남아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청소시간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같이 나 또한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담임 선생님이 나타나 내게 갑자기 다른 청소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내가 하던 일을 다 마치고 선생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내가 하는 꼴을 보시더니 “넌 참 이상하다? 왜 넌 내가 시킨 일을 안 하고 계속 그러고 있니?” 라며 화를 내셨다. 난 아직도 그때의 선생님 표정과 말투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한참 동안 멍청하게 서 있었는지도.


주관적인 이야기지만 난 내가 하나도 독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하지만 평범하고 싶진 않은 그런 인간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성격과 성향이 얼마나 피곤한 인생인지 알기에 아들만큼은 모난데 없이 구김살 없이 맑고 행복한 아이이길 바랬다.


그렇지만 그 유전자가 어디 도망갈 리도 없고, 결국 자존심이 세고 욕심이 많은 아들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너를 잘 키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고야 말았다. 아마도 아들이 지금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나와 남편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들이 멍하니 친구를 바라보는 그 순간에 난 어릴 적 내 모습을 봤다.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봐야 했던 그 순간을. 지금 이 순간이 아들에겐 어떤 상처였을까. 말을 하지 못해서 친구들과 노는 법을 몰라서 자기표현을 할 줄 몰라서 마음만 성급해서 아들이 느껴야만 했던 감정들은 아들에게 얼마큼 어떻게 남았을까.


미안하고 속상했다. 아들은 멀뚱한데 내가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바보같이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제 겨우 4년 차 되는 초보 엄마라서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부부도 만렙 부모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아이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라나는 동안 부부는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는다. 아주 천천히 하나하나. 아이가 걸음마를 걷듯 하나하나 겪어나간다. 부모가 되어감을.


아들은 우리가 낳았지만 우리가 아니기에 잘 지켜봐야 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나와 남편이 알아야 우리가 서로 가족으로 하나 될 수 있을 테니까. 비록 그날처럼 지켜보는 과정에서 주책없이 눈물을 보였지만 말이다.


캠핑을 통해 아들의 사회성을 조금 들여다보며 좌절했지만 우린 또다시 캠핑을 간다. 또 다른 경험은 비록 작은 상처가 될지라도 아들이 성장할 수 있는 거름이 될 테니까.


그땐 주책없이 울지 말고 아들을 꼭 안아줘야지.


괜찮아라고 말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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