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7년 동안의 연애기간을 거친 후 결혼했다. 둘 다 표현에 무덤덤한 성격이라서 활활 불타오르는 연애사는 아니지만 우리 성격에 맞는 연애활동을 했었다. 신혼시절은 마치 돌아갈 날을 정해두지 않은 여행기간 같았다. 결혼 전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나는 방생된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생활하고 돌아다녔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부모가 되면서는 바쁘게 살았다. 무덤덤한 성격은 바쁜 생활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서로에게 딱히 불평불만이 없었지만 1%의 무언가가 부족했다. 1%인 이유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기는 한데 그 존재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고 그것의 부재에도 일상에는 균열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일도 없었고 타인이 다가오는 경우에도 꺼려졌다. 모르는 사람과 툭 부딪히는 상황도 불편했다. 이 증상은 남편을 만나고 아이들을 낳고 바뀌었다. 손 잡아도 어색함이 없었고 그래서 가까워진 남편과 결혼했다. 아이들을 낳고는 오히려 스킨십을 즐겼다. 24시간 안고 있어도 소중했고 그 따뜻한 감촉은 나와 수업하는 아이들에게로도 확장되었다. 반면 남편과의 스킨십은 줄어들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한꺼번에 두 아이들을 안아야 했는데 남편을 안아줄 팔과 손은 없었다. 누군가는 남편과 동지애로 산다고 했다. 나와 남편도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지내고 있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 집에서는 '나 홀로 집에', '나 홀로 집에 2', '나 홀로 집에 3'을 연속 시청한다. 아이들이 초등 1학년 크리스마스에 '나 홀로 집에'를 보고 생긴 전통이다. 아이들과 북적북적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밤에 침대에 누우면 한 번씩 둘이서 보낸 크리스마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무덤덤한 성격은 그런 생각을 바로 흘려보내고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작년(2022년) 크리스마스에는 영화 '패밀리 맨'을 보았다. 물론 침대에 누워 한밤중에 나 혼자서.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시간은 새벽 3시 정도가 되었고 다른 식구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럴 때가 있다. 내 마음에는 무언가가 가득한데 그걸 표현할 대상이 없을 때. 그러면 마음속에 가득했던 그것은 그냥 날아간다 그리고 사라진다. 그날 새벽 3시에 그랬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연애 시절과 신혼 시절이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현재의 부모가 된 상황이 겹치면서 마음속에 담아둘 수 없을 만큼 행복이 커졌다. 그런데 그걸 나누거나 표현할 식구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나 좋자고 그 새벽에 식구들을 깨워 "내가 이런 영화를 봐서 이만큼 행복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음속 행복을 사라지게 두자니 못내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자는 방에 가서 이불을 잘 덮어주고 자는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내 침대로 돌아오니 자고 있는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누워 평소에 잘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 무려 백허그. 그런데 남편이 자신의 배 위에 있는 내 손을 잡았다. 깜짝 놀란 나는 남편을 살폈는데 역시 자는 중이었다. '잠결에 손을 잡았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나도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또 남편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어젯밤이 생각났다. 나는 어제와 같이 남편을 가볍게 안았는데 남편은 똑같이 내 손을 잡았다. 혹시 자는 척하나 싶어 숨죽이고 관찰했지만 역시 깊이 잠들어있었다. "뭐지?" 하면서도 나는 내심 기분이 좋아 손 잡은 채로 잠이 들었다. 처음에는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 생각했지만 두 번이나 손을 잡았기에 아침에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 이런 일이 있었어. 혹시 갓난아기들이 손가락 주면 잡는 것처럼 무조건 반사로 내 손을 잡은 거야? 잘 때는 누구든 손을 주면 다 잡아?"
"아니지. 오빠는 언제나 니 손만 잡지. 이건 조건 반사야."
잠을 재워서 실험을 할 수 없으니 검증할 수 없는 조건 반사이지만 오래전부터 생겼던 그 1%의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뒤로 뭔가가 부족하다 싶은 날에는 남편 손을 잡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