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한 일이 아닌데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 그냥 도움이 아니라 아주 큰 도움으로.
내가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다. 그전까지 나에게 자연은 외부와 같은 의미였다. 집 밖을 나가면 가깝게는 도로에도 가로수가 있고 도심을 약간만 벗어나도 공원과 평야 그리고 산이 있었다. 그것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화학 백신이 개발되어 코로나19를 치료할 수 있게 되더라도 또 다른 바이러스는 출현할 수 있고 그 원인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집안에만 있어야 할 때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그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스멀스멀 생겼다.
관심을 가지니 더 많은 것이 보였다. 더 이상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겨울에는 난방을 여름에는 냉방을 꺼리게 되고 단 1도라도 덜 올리거나 낮추려고 노력했다. '용기 내'에 동참하기 위해 물건을 구입할 때 더 이상 비닐봉지를 받지 않도록 애쓰고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탄소배출량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지를. 비행기가 배출하는 양이 어마어마하지만 내가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내가 그동안 아무 거리낌 없이 먹었던 먹으면서 환경오염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고기가 그 주범이었다. 소와 양이 가장 큰 범인이었고 돼지, 닭, 오리가 그 뒤를 이었다. 나와 남편은 물론 아이들도 소고기나 양고기 대신 닭고기를 먹었다.
그러다 또 알게 되었다. 자연식물식의 세계를. 나는 약간 팔랑귀이지만 다행스럽게도 혹하는 분야가 조금은 제한적이다. 주로 책에 혹하는데 책 속의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은 여러 면에서 너무 완벽하다. 책에 혹했던 초기에는 그들의 모든 면을 따라 하려고 시도했고 그 결과는 몸살을 동반한 실패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책 한 권에서 하나씩만 따라 하기로.
<요리를 멈추다:어느 채식부부의 고백>을 읽고 '그래, 이거야.'라고 무릎을 탁 쳤다. 고백하자면 나는 십수 년 전부터 불치병을 앓고 있다. 하루에 약 2.74g씩 몸무게가 증가하고 있다. 이 병은 내가 미처 내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서서히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육아하면서 생긴 루틴 중 하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과자 먹기'였다. 바삭거리는 스낵을 먹으면 그날의 피로가 풀렸고 과자가 물리면 커피를 마셨다. 잠들기 아까운 밤 시간을 그렇게 보내면 여지없이 다음 날 아침을 피로했다.
나는 내가 잠들어 있으면 내 몸 전체가 자고 있는 줄 알았다. 내가 밤늦게 먹었던 과자를 소화시키느라 내 장기들은 밤새 일하고 그래서 내가 다음날에 피곤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과자를 먹으면 입은 즐겁지만 내 위는 그렇지 못했다. 기름진 고기를 못 먹어 살코기 위주로 먹는 육식은 나름 건강식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니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행동들이 결국은 내 몸을 위한 일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탄수화물을 줄여야 몸무게가 준다고 여겼다. 하지만 줄여야 하는 것은 정제된 탄수화물이었다. 감자, 단호박, 고구마, 옥수수 등에는 탄수화물을 가지고 있지만 단백질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런 자연 식물에는 나쁜 탄수화물이 없다. 책에서 권하는 식사는 아침은 간단한 과일, 점심 저녁은 콩을 넣어 지은 현미밥과 각종 채소들이었다. 감자에도 브로콜리에도 단백질이 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나는 육체노동자나 운동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과도한 단백질은 내 몸에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착각을 가지고 그동안 잘못된 식습관을 가지고 있던 거였다.
우리 집 찜기에는 그동안 냉동만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어쩌다 전복을 찔 때를 제외하고는. 요즘 우리 집 찜기는 아침마다 바쁘다. 아침에 내가 가장 크게 바뀐 점은 주방에 들어가 커피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대신 찜기에 물을 올리고 감자나 고구마를 씻어 안친다. 단호박을 안칠 때도 있다. 그다음에는 브로콜리를 데친다. 사과, 배, 바나나, 포도 등의 과일과 함께 양껏 먹는다. 자연식물실의 좋은 점은 몇 그램, 몇 조각의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아침의 내 위장은 그리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자 2개, 사과 반쪽으로 만족스러운 식사가 된다. 제한 없이 맘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정량을 먹게 만든다.
1주일 정도 이런 식생활을 하다가 점점 범위를 넓혔다. 과자를 먹지 않게 되고 밤에 과자가 먹고 싶어지면 감자와 브로콜리를 먹었다. 단 1주일 만에 과자가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 식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고기반찬에 손이 가지 않았다. 예전에 '덴마크 다이어트'를 시도했을 때는 현기증을 동반에 포기했었는데 자연식물식을 하면서는 현기증이 전혀 없었다. 가장 큰 변화는 실질적인 배고픔이 느껴졌다. 시간이 되어서 먹는 밥이 아니고 입이 심심해서 먹는 간식이 아니고 먹방을 보다가 먹고 싶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먹었던 음식이 다 소화되고 그 에너지를 다 소모했음을 느낄 수 있는 배고픔이 느껴졌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배고픔이다. 나는 아무 걱정 없이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단호박을 먹고 아몬드와 블루베리를 먹는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도 내 입은 무제한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엄청난 의지는 필요하지 않고 배부르면 그만 먹는 본능만 있으면 된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나는 결혼식 날에도 늦잠을 잤다. 저절로 눈이 떠지는 건 유아기 이후로 처음이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몸이 무겁지 않고 손가락을 조이던 반지가 쑥 들어가고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윗배가 조금 평평해졌다. 이 모든 변화는 아직은 나만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에는 너무 미비하다. 하지만 나열할 수 있는 좋은 점이 늘어나고 타인이 이 변화들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지속된다면 나는 지구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어떤 광고를 보았다.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고 있는 조각상이 있는데 아이의 동상이 녹아내리고 있다. 서서히 녹던 동상이 완전히 사라져서야 알 수 있었다. 그 조각상의 이름은 '지구온난화, 우리의 미래가 사라집니다.'이었다. 자연식물식이 내 몸을 서서히 살리는 것처럼 이 행동이 지구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열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나와 지구는 조금씩 충전 중이다. 완충될 때까지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이다음 이야기는 3개월 후에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