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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경 Oct 20. 2023

다시 찾은 초심

40대 직장맘의 자가충전

나는 2005년도에 학원운영을 시작했다. 그때는 나도 젊었고 학원생들도 어렸다. 영어를 가르치는 나는 영어가 언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모두가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분야라는 걸. 그 당시 내 교육관은 '동그란 그릇을 지닌 아이에게 네모의 교육을 시키지 않고 네모난 그릇을 지닌 아이에게 세모난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였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당시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되고 중학생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면 영어는 더 이상 언어가 아니다. 점수를 잘 받아야 하는 주요 과목이 된다. 언어가 주는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아이들은 문장을 분석해야만 한다.


모든 개개인은 다르다. 한 가지 개념을 배우면 한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심지어 열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한 가지 개념도 채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이다.


사람을 학생으로 바꿔보자. 개념을 배우면서 바로 이해하고 문제 해결까지 가능한 학생은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매우 편리한 학생이다. 또 이런 학생은 어떤 선생님과 공부해도 좋은 결과를 얻는다. 문제는 한 가지 개념도 흡수가 잘 되지 않는 학생이다. 어느새 나는 초심을 잊고 어떻게든 학생에게 가르치고 문제를 풀게 하려고 하는 선생이 되어있었다.


명령문을 배우는 수업시간이었다. "명령문은 내 앞에 있는 상대방에게 말하는 문장이야. 그래서 주어를 생략하고 동사원형으로 문장이 시작돼." "그럼 You open the window. 를 명령문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대답이 없다. 나는 다시 설명한다. "명령문은 눈앞에 있는 상대방에게 말하는 문장이야. 그래서 주어를 생략해. 그리고 동사원형으로 문장이 시작돼. 그럼 위 문장에서 주어가 뭐야?"


"You요."

"그래. 그럼 동사는 뭐야?"

"open이요."

"맞아. 그럼 명령문으로 만들면?"

"Are you?"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이는 중학교 1학년이다. 중학생이지만 학교 수업을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초등학교 때에도 계속 그랬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이지만 나는 아이가 마치 초등2학년 학생인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면 쉬운 부분은 잘 따라오다가 조금 전처럼 벽에 부딪힌다. 아이는 좀처럼 벽을 넘지 못한다.


아이와 내가 4-5년 전에 만났다면 영어란 언어의 재미를 공부했겠지만 지금은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위의 수업을 5-6번 반복한 후에야 아이는 평서문을 명령문으로 바꿀 수 있었다. 부정명령문은 따로 6번 더 했다.

아이와 수업하고 나면 나는 진이 빠졌다. 90분 내내 쉬지 않고 설명하는 고등부 수업보다도 더 힘들었다.


시험기간에는 퇴근시간이 늦어진다. 그 말은 퇴근 후 여가시간이 아주 적어짐을 뜻한다. 책을 읽거나 글을 조금이라도 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잠들기 전 유튜브를 보다 인터뷰 영상을 하나 보았다.


"내가 가수로서 살아가는 삶의 마지막, 최종 종착지는 나의 세대보다 더 나은 아티스트, 더 좋은 아티스트가 태어나기 위해서 서포트해주는 게 내 마지막 종착지라고 나 스스로가 마음을 옛날부터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꼬를 통해서든 아니면 그 어디에 있든 여러분들이 어디서 공부를 하든 여러분들이 어떤 꿈을 가직고 있든 지금의 나보다 더 훌륭하고 더 멋진 인간이 되길 바라고 또 아티스트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에서 도움이 되고자 만든 트레이닝 센터입니다."


비투비라는 그룹의 한 멤버인 이창섭이 한 말이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이 말을 들으면 나는 낮에 수업했던 아이가 떠올랐다.


초심을 잃은 나는 선생의 본분을 잊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서포트해줘야 하고 아이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지 어제보다 얼마나 더 나은 아이가 되었는지를 잊고 있었다. 그저 어제 배운 문법을 그대로 기억하는지 또 새로운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지난번 시험보다 얼마나 점수를 올릴 수 있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 나에게 수업을 받는 아이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매 순간 새로운 벽에 부딪히면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을지. 새벽에 나는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다음날 나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아이가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혹여라도 공부를 덜 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할까 봐서였다.  대신 설명을 조금씩 천천히 하고 여러 문장을 예시로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더 많이 하고 질문을 적게 하자 아이의 표정이 서서히 환해졌다.


수업의 결과는 같았다. 아이의 이해는 여전히 느렸고 시험범위만큼 진도를 나가려면 아직 멀었다. 하지만 아이는 '명령문'은 잘 만든다. 어제보다 나은 아이가 되었고 그만큼 자신감도 생겼다. 내가 아이를 닦달한다고 아이의 점수가 100점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명령문'을 이해한 아이는 곧 'To부정사'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몇 번의 반복이 이루어져야 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복은 내가 서포트해줘야 하는 것이고 그 수업을 통해서 아이는 어제보다 나은 영어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와의 수업이 힘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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