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5년도에 학원운영을 시작했다. 그때는 나도 젊었고 학원생들도 어렸다. 영어를 가르치는 나는 영어가 언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모두가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분야라는 걸. 그 당시 내 교육관은 '동그란 그릇을 지닌 아이에게 네모의 교육을 시키지 않고 네모난 그릇을 지닌 아이에게 세모난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였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당시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되고 중학생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면 영어는 더 이상 언어가 아니다. 점수를 잘 받아야 하는 주요 과목이 된다. 언어가 주는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아이들은 문장을 분석해야만 한다.
모든 개개인은 다르다. 한 가지 개념을 배우면 한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심지어 열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한 가지 개념도 채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이다.
사람을 학생으로 바꿔보자. 개념을 배우면서 바로 이해하고 문제 해결까지 가능한 학생은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매우 편리한 학생이다. 또 이런 학생은 어떤 선생님과 공부해도 좋은 결과를 얻는다. 문제는 한 가지 개념도 흡수가 잘 되지 않는 학생이다. 어느새 나는 초심을 잊고 어떻게든 학생에게 가르치고 문제를 풀게 하려고 하는 선생이 되어있었다.
명령문을 배우는 수업시간이었다. "명령문은 내 앞에 있는 상대방에게 말하는 문장이야. 그래서 주어를 생략하고 동사원형으로 문장이 시작돼." "그럼 You open the window. 를 명령문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대답이 없다. 나는 다시 설명한다. "명령문은 눈앞에 있는 상대방에게 말하는 문장이야. 그래서 주어를 생략해. 그리고 동사원형으로 문장이 시작돼. 그럼 위 문장에서 주어가 뭐야?"
"You요."
"그래. 그럼 동사는 뭐야?"
"open이요."
"맞아. 그럼 명령문으로 만들면?"
"Are you?"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이는 중학교 1학년이다. 중학생이지만 학교 수업을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초등학교 때에도 계속 그랬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이지만 나는 아이가 마치 초등2학년 학생인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면 쉬운 부분은 잘 따라오다가 조금 전처럼 벽에 부딪힌다. 아이는 좀처럼 벽을 넘지 못한다.
아이와 내가 4-5년 전에 만났다면 영어란 언어의 재미를 공부했겠지만 지금은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위의 수업을 5-6번 반복한 후에야 아이는 평서문을 명령문으로 바꿀 수 있었다. 부정명령문은 따로 6번 더 했다.
아이와 수업하고 나면 나는 진이 빠졌다. 90분 내내 쉬지 않고 설명하는 고등부 수업보다도 더 힘들었다.
시험기간에는 퇴근시간이 늦어진다. 그 말은 퇴근 후 여가시간이 아주 적어짐을 뜻한다. 책을 읽거나 글을 조금이라도 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잠들기 전 유튜브를 보다 인터뷰 영상을 하나 보았다.
"내가 가수로서 살아가는 삶의 마지막, 최종 종착지는 나의 세대보다 더 나은 아티스트, 더 좋은 아티스트가 태어나기 위해서 서포트해주는 게 내 마지막 종착지라고 나 스스로가 마음을 옛날부터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꼬를 통해서든 아니면 그 어디에 있든 여러분들이 어디서 공부를 하든 여러분들이 어떤 꿈을 가직고 있든 지금의 나보다 더 훌륭하고 더 멋진 인간이 되길 바라고 또 아티스트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에서 도움이 되고자 만든 트레이닝 센터입니다."
비투비라는 그룹의 한 멤버인 이창섭이 한 말이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이 말을 들으면 나는 낮에 수업했던 아이가 떠올랐다.
초심을 잃은 나는 선생의 본분을 잊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서포트해줘야 하고 아이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지 어제보다 얼마나 더 나은 아이가 되었는지를 잊고 있었다. 그저 어제 배운 문법을 그대로 기억하는지 또 새로운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지난번 시험보다 얼마나 점수를 올릴 수 있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 나에게 수업을 받는 아이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매 순간 새로운 벽에 부딪히면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을지. 새벽에 나는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다음날 나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아이가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혹여라도 공부를 덜 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할까 봐서였다. 대신 설명을 조금씩 천천히 하고 여러 문장을 예시로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더 많이 하고 질문을 적게 하자 아이의 표정이 서서히 환해졌다.
수업의 결과는 같았다. 아이의 이해는 여전히 느렸고 시험범위만큼 진도를 나가려면 아직 멀었다. 하지만 아이는 '명령문'은 잘 만든다. 어제보다 나은 아이가 되었고 그만큼 자신감도 생겼다. 내가 아이를 닦달한다고 아이의 점수가 100점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명령문'을 이해한 아이는 곧 'To부정사'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몇 번의 반복이 이루어져야 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복은 내가 서포트해줘야 하는 것이고 그 수업을 통해서 아이는 어제보다 나은 영어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와의 수업이 힘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