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새로운 문: 나의 두 번째 난임병원 방문기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바람이 물씬 풍겨온다. 모두가 설레하던 3월이었다. 봄이로구나 드디어,
그러나 계절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나의 4번째 시험관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기존 병원에서는 3주 후에 병원을 다시 방문하라는 안내가 왔다.
4번째 시험관 결과는 1차 피검사 이후, 결과를 기다릴 새도 없이 바로 생리가 나왔다. 이때 정신적, 신체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였다. 이유는 채취를 하고 바로 신선이식(채취 후에 바로 배아 이식)을 진행했기에 몸이 무리를 많이 한지라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았다. 기분 전환을 위한 산책과 같은 거동조차 나에겐 조금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실패'에 대한 생각만이 자꾸 크게 떠올랐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 병원은 더 이상 아닌가 보다.
일단, 병원을 옮겨보자
시험관 3차가 지나고 4차도 되지 않자 당시 나에게 남은 감정은 '분노'와 '이성' 그 어딘가 사이였다.
지금은 많이 잔잔해진 감정들이지만... 몇 개월 전만 해도
도대체 내 몸은 무슨 문제가 있길래 계속 착상조차 되지 않는 걸까?
vs
화낼 시간도 없다.. 다른 대책을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은 생각의 싸움뿐이었다.
평소같이 이날도 엄마의 전화가 울렸다. 난임휴직을 한 이후로는, 자주 친정엄마와 통화를 하는 살가운 딸인데.. 이날은 받지 않았다. 그날만큼은 선뜻 받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와 나 모두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슬픔을 받아줄 수 있는 여력조차 없었다.
생리통으로 알싸한 배를 붙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또 하나의 새로운 문: 병원전원을 결심하다.
앞선 회차에서도 언급했지만, 병원전원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나름대로 있었다. 많은 생각들과 고민에 휩싸인 채, 일단 시험관 카페에 도와달라고 내 고민에 대한 글을 무작정 써 내려갔다.
시험관 4차 연속 착상 실패,
도와주세요
순식간에 댓글이 많이 달렸다.
어떤 이들은 시험관 카페가 '감정 낭비'이니 들어가지 말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내가 정말 힘들 때 도움을 받았던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이곳이 좋고, 힘이 되어준 익명의 분들께 늘 감사하다.
댓글에 대부분은 내가 난소기능저하(난저)가 있긴 하나, 현재 내 나이가 어린 편이기에 '나 자체의 문제' 보다는 '배양기술 문제'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즉, 배양기술이 더 앞서는 C계열의 병원으로 전원 하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나와 같은 병원에서 C계열의 병원으로 전원 하여 좋은 배아가 잘 만들어졌고 임신까지 성공한 분들도 댓글을 달아주셨다.
글을 읽고 힘을 얻어, 얼른 C계열의 병원으로 예약을 하였다. 원래는 인기 있는 교수님들은 예약을 한 달씩 기다리지만, 운이 좋게 비어있는 딱 한자리를 얻어 일주일 뒤에 원하는 교수님으로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변화를 좋아하지 않은 나'에게 이러한 선택은 대단한 결단이었다.
그래서 드는 또 하나의 생각은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정말 신이 있다면 '진짜 이젠 병원을 옮길 시기가 왔고 그래서 하늘이 인도해 주는구나'라고 느꼈다.
인생의 다양한 문이 있다면, 나의 시험관 두 번째 챕터이자 새로운 문이 하나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 하나의 새로운 문을 열 때가 되었다.
어서 와 전원은 처음이지?
기존병원에서 미리 전화로 예약을 넣어두어 전원서류를 가져간다고 하였다.
그러니 바로 "C병원으로 가시나요?"라고 물었다. 조금 놀라서 '네'라고 대답하였다.
실제로 C병원으로 전원 하는 사람들이 많나 보다.
약속된 시간에 원무과에 남편과 함께 가니 신분증 검사와 함께 전원서류를 주었다.
난임검사, 인공수정 2차, 시험관 4차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꽤 전원서류가 두툼했다.
나의 10개월 남짓한 첫 번째 난임병원의 시간들이
두 권의 서류뭉치로 남겨졌다.
서류를 들고 일주일 뒤, 새로운 병원으로 갔다.
난임병원을 꽤 오래 다녀서 웬만한 시술은 다 겪어봤는데, 새로운 병원에 오니 마음도 재정비되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게 되었다.
익숙하게 돌아다녔던 병원을 다시 더듬더듬 헤매면서 진료실을 찾고 초음파실을 찾는 내 모습을 보면서 작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두근거리며 새로운 교수님을 만나는 대기시간이 새삼스럽게 떨리기도 하였다.
교수님을 만나자 나의 새로운 주치의가 되실 교수님은 환한 미소로 말씀을 하셨다.
어서 오세요. 시험관 오래 하셨네요.
이제 C병원 왔으니 되어야겠죠?
인사치레일 수도 있는데... 그 순간 그분의 말씀이 참 위로가 되었다.
맞아요. 저 오래 했어요. 이제 되고 싶어요
마음속으로 크게 외쳤다.
적극처방으로 유명하신 현재 나의 주치의 교수님은 나의 과거의 데이터 자료를 보시면서, 등급이 높은 질 좋은 배아를 넣는 것이 임신 성공의 1순위라고 말씀해 주셨다. 질 좋은 배아를 위해 골고루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며 수면습관을 키워주는 기본적인 식습관이 중요하다고 말씀 주셨다.
더불어 약처방과 함께 기존에 먹는 영양제를 우리에게 물어보시고, 필요한 영양제를 추가해 주시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말씀 주셨다. 말씀에 대해 메모를 하며, 이 병원에선 꼭 성공해서 나가리라 다짐하였다.
처음 해본 전원이어서 긴장도 많이 하고 걱정도 컸었다. 마치 새로운 문 앞에서 서있으면 문뒤로 어떤 것들이 펼쳐지지 모르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그 새로운 문을 용기를 내어 밀고 나가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고 그 세상에서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병원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잘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