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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 동맹

< 살아내는 중 10 >

by 모카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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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프라이팬 위에서 계란의 운명은 정해집니다.

껍질이 깨지고, 기름은 튀고, 노른자는 흘러내리거나 굳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저는 반숙을 좋아하고

그는 완숙을 좋아합니다.

계란 하나 굽는데도 뒤집는 시간이 다릅니다.


호밀빵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손으로 툭 찢어서 뜨거운 수프에 푹 찍어 먹고

그는 칼로 단정하게 잘라 버터에 바릅니다.

공식 같은 것은 없습니다.

레스토랑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오빠, 그냥 뜯어먹어."

"칼 있는데 뭐 하러 손을 대. 잘라먹으면 되지."


계란과 빵 앞에서

우리의 성격,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런데요, 또 웃기는 건

어느새 먹다 보면 제가 칼로 자르고 있고,

그가 빵을 찢어서 먹고 있습니다.


방법을 고수하다가도 결국 섞입니다.

그게 재미예요.


반숙을 먹든, 완숙을 먹든,

찢어 먹든, 발라서 먹든

결국 같이 먹는 게 중요합니다.

감각과 형식은 섞이고

서로에게 조금씩 물들다가 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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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그 마음이 진짜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 있어요.


예를 들면, 차의 문제입니다.


차를 고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단아하면서 우아한 차면 좋습니다.

그는 연비, 마력, 출력, 가격, 승차감..

모든 기능과 옵션을 확인한 뒤에야 외관을 봅니다.

차를 고르는 우선 기준도 감각과 기능으로 엇갈리고 충돌합니다.


우리는 차를 살 때 즈음, 늘 재고 고르고

밀고 당기다가 반전을 맞이합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학년 선생님이

새 차를 산다고 멀쩡한 차를 가지겠냐고 합니다.

그것도 공짜로요.


참고로

제가 평소에 장난처럼 밑밥을 반복해서 깔았습니다.

"혹시 차 바꾸면 나한테 넘겨요."

그냥 한 말인데, 정말 그런 일이 생기는 거죠.


공짜 앞에서는요,

모든 취향과 기준이 둘 다 무너집니다.

빨간색이든 회색이든

둥글든 각이 졌든

공짜는 공짜입니다.


정말 좋은 차를 공짜로 선물처럼 받는 것인데

굳이 새 차를 사느라 돈을 쓸 일이 없는 거죠.


계란과 빵 앞에서도 엇갈리는 우리가

공짜라는 단어 앞에는

놀랍도록 재빠르게 연대합니다.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것을 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것을 함께 받아들이고

함께 수용하는 것이지요.


그 공짜 차를 타는 것도

13년째입니다. 그래도 쌩쌩하고 고칠 데가 없는

효자 차입니다.


둘 다 누구도

차를 바꾸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것으로 충분하고 만족합니다.

다음 차도 공짜로 생기길 바라야 할 것 같아요.


함께 마주 보며 앉아서 먹고 마시고

같이 나란히 타고 달린다는 것은

함께 늙어가는데 동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조금 흐물흐물해도

조금 단단해도

조금 빼걱거려도

같이 있는 마음에서 완성됩니다.





목돈은 몇 배로 늘어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동학년 선생님이 제게 차를 넘긴 것은 한 번이 아닙니다.

또 한 분의 동학년 선생님이 이 차 전에도 공짜로 넘기셨지요.

지금 타고 있는 차는 두 번째 공짜 차입니다.


신혼 때 우리 차를 샀다가 팔고, 지금까지 공짜 차를 타고 있는 셈이에요.

이 자리를 빌려 전**, 이** 두 분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감사의 값은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받은 것에 감사함은 잊을 수 없습니다.

차도 공짜로 받는 우리 부부.

하나님께 받는 은혜 때문에 치러야 할 계산서가 많습니다.

정산을 잘 하는 지혜로움을 발휘하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아이 없이 살아가는 중년 부부입니다. 누군가는 선택으로, 누군가는 상황으로 부모가 되지 못합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지요. 아마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녀양육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연재글은 '아이 없음'에 대한 내용보다 아이가 없어도 살아지는 중년부부의 일상 기록입니다. 저출산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삶의 결이 닮은 분들에게 닿기를 소망합니다.

*자립청년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xabay

#부부 #차 #계란 #호밀빵 #공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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