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안 쪽 도어록이 현관문에서 살짝 분리됐다. 당연히 문은 잠기지 않았지만, 보조열쇠가 있기 때문에 수리하기 귀찮아서 손잡이가 덜렁덜렁 거리는 상태로 몇 달을 지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야근 후 집에 왔는데 지쳐 쓰러지는 대신 오늘따라 쌓아둔 아이들의 응가가 버리고 싶어졌다.
응가를 모아둔 폐기물 봉투를 현관문 밖으로 꺼냈는데 이게 웬 일 오늘따라 현관문이 잠긴다.
‘저절로 고쳐진 건가? 오늘은 왠지 운수가 좋은걸? 야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응가 버릴 힘도 있고’
라고 생각한 게 문제였을까? 힘내어 응가를 버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뿔싸… 문이 안 열린다!
비밀번호는 틀림없다. 그런데 걸쇠가 스르륵 넘어가며 문이 열림을 알리는 기계음이 들리지 않는다.
밤 11시 넘어서 억지로 문을 열려는 모양새는 누가 보면 수상한 짓을 하고 있다고 오해받기 딱 좋아 보였다.
‘주님 오늘 밤은 제 집을 터는 걸 허락해 주세요.’
속으로 기도하며 한참을 밀고 당기며 밀당을 시도했지만 영화에서 슬픈 예감이 틀리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오늘의 비련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나인가 보다. 관객이 즐겁기 위해서는 배우는 얼마든지 구르고 굴러야 한다.
몇 번을 더 시도하다 슬슬 절망감이 나를 감싸려던 찰나, 현관문 앞에 붙어있는 열쇠집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부터는 이것만이 구원해 줄 수 있다.
술 마셔서 비밀번호를 기억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나 말짱한 정신을 가지고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가엾은 나를
연결음이 넘어가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애써 차분하게 말하려 노력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전화 속 상대는 상황을 전혀 이해 못 하는 듯하다.
도어록이 안 쪽에서 분리됐는데 바깥에서 안 열린다고 하니 그럴 만도
보통은 안에서 연락하는 게 정상이겠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참고 견딘 나도 참 나다. 영화 한 편 찍으려면 평범한 일상으로는 분량이 나오지 않을 것을 염려한 것마냥 알아서 인생의 굴곡을 만든다.
한참을 설명한 후에야 내가 밖에 있고 현관문은 잠겨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인지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나를 구조해 주기로 약속을 받았다.
약 20분을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안에서 아이들은 울고 난리가 났다.
어머니가 문 앞에 있는데 들어오지 않으니 그 작은 머리들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야옹, 야옹, 야옹 “
우리는 몹시 사랑하는 사이라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해도 의미를 알 수 있는데 꼭 이렇게 말했다.
’ 문 앞에 서있는데 왜 들어오질 못하니..? 들어오질 못하니…!’
기다리던 기사님이 오셨다. ‘문이 열리네요, 낯선 아저씨가 들어오죠’
현관문 앞에서 어머니를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들은 기사님을 보자마자 쏜살같이 호다닥 사라졌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집을 나갈까 봐 두려워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어찌나 빠른지..
야밤에 내 집에 들어가기 위해 소위 생쇼를 하게 된 원인은 다소 싱겁게도 나사가 빠져서였다.
원래 4개인 나사가 왜인지 2개가 사라져서 2개만으로 지탱하다가 결국 장력에 져버린 것이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한 판 이겼던 순간처럼 인간이 기계를 이긴 셈이다.
“나사가 2개가 없네요…?” “제가 안 뺐는데...”
“당연히 안 뺐겠죠, 일부러 빼는 사람이 어딨어요” 내가 생각해도 나사 빠진 소리였다.
한밤중에 터뜨린 병크의 값은 6만 원. 내 하루 일당을 연가보상비로 환산하면 6만 원이 채 안되는데
오늘 하루 종일 일한 대가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오늘 하루는 왠지 운이 좋았다. 야근 뒤에도 힘이 남아 있었고, 아이들의 응가 봉투를 버릴 기력조차 있었다.
평소보다 유난히 힘이 넘치고 유달리 운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운수 좋은 날> 현진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