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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고통을 즐기는 방법

밀란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by 알스카토 Aug 16. 2017

    애 셋 데리고 갯벌 체험을 했다. 갯벌 노동은 처음인지라 입장권을 구입하며 장갑은 필요한지, 호미와 통은 어디서 준비해야 하는지  물었다. 매표소 아저씨는 웃으며, ‘다 필요 없고, 그냥 1시간 동안 생고생하고 온다고 생각하면 돼요’라고 답했다. 정직한 아저씨였다. 쪼그려 앉아 조개를 캐다 보니 사타구니 주변과 손목 근육이 아팠다. 막내는 콧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매달려 있었다. 둘째는 움직이는 소라게를 본 뒤로 패닉에 빠졌다. 첫째만 조금 즐거워하나 싶더니 금세 지쳤다. 우리 가족은 1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가장 먼저 갯벌에서 빠져나왔다. 이 얼마나 무의미한 시간이었던가. 돈과 시간을 쓰며 노동력을 제공했고, 가져온 조개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탄생은 삶의 지축이 흔들리는 사건이다. 하지만 삶의 속성을 바꾸진 못한다. 인생은 무의미한 일의 반복이라는 속성. 아이가 있건 없건 갯벌 체험 같은 무의미한 일은 계속 있다. 물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착각에 빠지기 쉽다. 아이들은 아직 규칙과 의미의 세계 속에 머물러 있으며, 부모는 그 세계의 신이다. 부모는 산타클로스가 존재하는 세계 속의 산타클로스인 셈이다. 아이들에게 규칙을 부여하고 의미를 도출해주는 역할을 반복하다 보면, 뭔가 의미를 되찾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아이들도 자라 무의미한 삶의 실체를 알게 될 테고, 아이를 독립시킨 부모는 잠시 머물던 의미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다시 무의미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쉽지 않은  과정이다. 아이들과 격렬한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이 셋 가진 부모치곤 너무 염세적인 태도 아니냐고. 아니, 반대다.      


    밀란 쿤데라의 장편 소설 <무의미의 축제>는 역시나 무의미한 삶을 이야기한다.

 ‘저기 보이는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자기 의지로 여기 있는 건 아니란다. 물론 지금 내가 한 말은 진리 중에 제일 진부한 진리야. 너무 진부하고 기본적인 거여서 이제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귀 기울이지도 않을 정도지.’ (P.132) 

그렇다. 너무 진부하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는 14년 만의 장편소설에서 진부함을 반복하지 않는다.

 ‘다르델로.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요.....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P.147)     

   

     다르델로와 카클리크가 있다. 다르델로는 <캉디드>에 등장하는 팡글로스 박사 같은 인물이다. 멍청할 정도로 낙천적이다. 여자 앞에서 기교 섞인 농담을 하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카클리크는 반대다. 그는 이런 스타일이다.

 ‘말한다기보다 휘파람을 부는 것 같은 작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거기에 존재하면서도 들리지는 않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건 절묘한 솜씨가 필요한 거라고!’(P.24)

 장광설로 미인을 끄는 건 다르델로지만, 미인을 데리고 가는 것은 카클리크다.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를 그 사람은 전혀 몰랐고 지금도 몰라. 자, 이게 다르델로의 어리석음이 어떤 장르냐고 한 네 물음에 대한 내 대답이야.’(P.25) 

무의미와 가치 없는 삶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그게 카클리크가 다르델로보다 여성들에게 더 호감을 얻는 비결이다. 결국 난 지금 지극히 염세적인 내 태도가 사실은 카클리크식 육아법의 출발이라고 말하는 중이다.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인가. 바람둥이 카클리크는 ‘지루한 거 말이야. 그거보다 나쁜 건 없거든. 바로 그래서 내가 여자를 자주 바꾸는 거야. 그렇게 안 하면 좋은 기분일 수가 없어.’(P.85)라고 말하자, ‘“아 좋은 기분!” 라몽은 이 두 단어로 무슨 계시라도 받은 양 탄성을 질렀다.’(P.85) 핵심은 좋은 기분이다. 

‘무한히 좋은 기분, unendliche Wohlgemutheit말이지. 조롱, 풍자, 빈정거림이 아니야. 오로지 무한히 좋은 기분이라는 저 높은 곳에서만 너는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거라고.’(P.99) 

아이의 탄생이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진 못한다. 쿤데라가 말했던 진부한 진리도 바꾸진 못한다. 여전히 우리는 허무주의 시대를 산다. 대신 아이들은 ‘좋은 기분’ ‘무한히 좋은 기분’을 만들어낸다. 그거면 충분히 저마다 무의미의 축제를 즐길 수 있다.      


‘마들렌이 유명한 옛날 인물들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틀리게 발음하는지 아니면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에는 조금도 흥미가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려고 일부러 패러디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알랭은 그것이 거북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와 같이 있으면 재미있었고,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벽에 걸린 보스, 고갱, (또 누구인지 모를 이)의 복사판 그림들이 만들어주는 그 자신만의 세계에서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P.82)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의 방점이 ‘무의미’에 찍혀 있는지 아니면 ‘축제’에 찍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고, 이러한 태도는 무의미한 삶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  

    

   갯벌에서 우리 부부는 고생했지만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고, 첫째도 갯벌을 신기해했으며, 둘째도 소라게를 발견하기 전까진, 갯벌 트랙터를 보며 즐거워했다. 막내는 모르겠다만. 좀 더 일찍 갯벌을 빠져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돈 내고 사서 고생하는 무의미한 갯벌에서 약간의 ‘좋은 기분’을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초반 20분은 즐거웠다. 아니 15분쯤..) 다양한 경험을 해야 아이의 정서가 발달하고, 부모와의 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고 어쩌고 따위의 억지 의미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바로 이 깨달음이 밀란 쿤데라가 전수해준 카클리크식 육아법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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