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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헌터 Aug 30. 2020

구름이 솜사탕이라고 불리는 이유

트레킹 3일차 데우랄리에서 대휴식

1일차 마큐 ~ 지누단다(1,740m)

2일차 지누단다 ~ 도반(2,500m)

3일차 도반 ~ 데우랄리(3,200m)

4일차 데우랄리 ~ ABC(4,130m)

(하산) 5일차 ABC ~ 시누와(2,340m)

(하산) 6일차 시누와 ~ 포카라(850m)


점심을 먹기 전에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해발 3,200m라니... 아직 1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오늘 트레킹 일정이 끝났다. 데우랄리의 롯지는 유료 와이파이를 제공하지 않았고, 현지 유심을 끼운 스마트폰은 실내에서 전혀 터지지 않았다. 롯지 밖에서 하늘 높이 스마트폰을 들고 어렵게 전파를 잡거나, 포기하고 주머니에 넣은 채, 동네를 산책하고 돌아오면 운 좋게 밀린 카톡이 들어와 있을 뿐이었다.


전 세계 트레커들이 몰리는, 히말라야의 롯지 풍경... 이제는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의 얼굴이 어색하다


시간이 남는데 우리는 더 걷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괜히 불안해졌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내가 참 쳇바퀴 같은 삶을 바쁘게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면서... 휴대폰도 없이 긴 시간을 보내려고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오늘은 정말 그냥 내키는 대로, 휴대폰에 얽매이지 말고 쉬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찰나 주문한 점심이 나왔다. 일단 먹고 보자.


호기심에 주문한 피자, 맛있었다

피자 한 판을 후딱 해치우고, 내키는 대로 띵가띵가 시간을 보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래도 부지런히 쉬었다.


1. 낮잠

밥 먹고 주방에 앉아 책도 보고, 고프로와 휴대폰을 충전하고 있으니 졸음이 쏟아졌다. 디펜드라는 낮잠도 너무 많이 자지 말라고 했다. 컨디션 난조와 고산병은 어떤 형태로든 찾아올 수 있나 보다... 점심을 먹고 충분히 소화시킨 다음, 30분 정도 낮잠을 청했다. 개꿀이었다.



2. 음악 감상

네팔에 오기 전, '디제잉'을 취미 삼아 몇 달간 연습했었는데, 이때 큰 맘먹고 구입했던 헤드셋을 챙겨 왔다. 사용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헤드셋의 음질은 이어폰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깊고 풍부하다. 디제잉 공연한답시고 연습실에서 한창 헤드셋으로 노래를 듣던 시절이라, 이렇게 쉴 때 좋은 노래를 들으면 더 행복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다. 챙기길 정말 잘한 물품 중 하나였다. 


히말라야에서 들었던, 잊지 못할  비욘세의 'I was here'


문제는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노래를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올 줄 알고, 미리 음원 몇 개를 다운로드 받아놓긴 했었다. 그중 윤종신의 '오르막길(feat. 정인)'과 비욘세의 'I was here'을 수 십 번을 들은 것 같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감히 추천하고 싶다. 묵혀두고 있는 헤드셋과 비욘세의 'I was here' 음원을 꼭 챙겨가길 바란다. 가사의 감동과 눈 앞의 광경이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아떨어진다. 다음 날 늦은 밤, ABC 롯지의 벤치에 앉아 달빛에 비친 안나푸르나 봉우리들과 별들을 감상하며 혼자 심취해 들었던 'I was here'은 내 평생 잊지 못할 한 곡이다.

I was here을 비스누에게 들려주는 중


3. 동네 산책

동네라고 해봐야 데우랄리의 롯지들 뿐이다. 롯지가 아닌 주거시설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이름 모를 맞은편의 높은 산세를 감상했다. 한별이는 숙소에서, 디펜드라도 주방에서 자고 있어서 비스누와 둘이 다녀왔다. 넉넉잡아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비스누와 둘이 길게 이야기한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비스누가 전업으로 이렇게 트레커들의 짐을 들어주는 포터 일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포카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시간이 날 때면 이렇게 디펜드라를 도와서 같이 이렇게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비스누와 대화를 하다 보니, 내가 뭐라고 이런 사람을 하루에 10불, 15불씩 주고 '고용'을 해서 여행을 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이 사람들을 고용해서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네팔보다 더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난 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디펜드라와 비스누가 한국에 놀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온다면 그땐 내가 한국의 산을 데려가 줄텐데...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비스누의 월급은 나보다 10배는 적을 것이고, 돈을 모을 수 있는 여력은 그보다 더 적을 것이다. 내가 네팔 왕복 비행기를 90만 원 정도에 샀는데, 비스누에게 한국을 오라고 하는 것은 나에게 비행기 값으로 900만 원을 내고 네팔을 가라고 제안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동네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을 돌려 돌아가다 보니, 저 멀리 롯지 밖에서 한별이가 잠에서 깬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옆에 내가 없어서, 혹시 산책을 갔나 싶어 자기도 막 나오던 참이었다고 한다. "다 똑같이 생긴 롯지 밖에 없어. 산책 안 가도 돼." 했더니 한별이도 발걸음을 돌렸다. 주방으로 돌아와 남은 수다를 떨고 사진도 찍고, 여태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을 돌려봤다. 

구름을 솜사탕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한참을 주방에 있다가,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다. 멍하니 여태 걸어왔던 길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내 눈앞에서 마술을 부리듯이 구름을 만들어내고, 이내 계곡들 사이로 구름을 숨겼다. 설탕을 넣으면 아무것도 없던 나무젓가락에 실오라기 같은 솜사탕이 조금씩 달라붙듯이, 하늘은 열심히 구름을 만들어냈다. 마치 수 천 마리의 거미가 힘을 모아, 선이 아니라 면의 거미줄을 한꺼번에 직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구름 공장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만끽하다 보니 데우랄리에서의 밤도 어느새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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