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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헌터 Aug 30. 2020

안나푸르나의 목구멍을 향해 걸어가다

트레킹 3일차 도반 ~ 데우랄리(3,200m)

1일차 마큐 ~ 지누단다(1,740m)

2일차 지누단다 ~ 도반(2,500m)

3일차 도반 ~ 데우랄리(3,200m)

4일차 데우랄리 ~ ABC(4,130m)

(하산) 5일차 ABC ~ 시누와(2,340m)

(하산) 6일차 시누와 ~ 포카라(850m)


어느덧 트레킹을 시작한 지 3일 차다. 이제는 롯지에서 자고 일어나는 것도, 걷고 먹고 걷는 일상들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 어젯밤 어질러놨던 짐을 정리하고, 아침을 먹는다. 세수와 양치질 정도만 하고 나서, 우리는 어제보다 더 따듯한 옷을 입고 길을 나선다. 


아직 컨디션 좋은 한별이, 내일은 고산병 증세로 고생한다 'ㅅ'


오늘의 목적지는 데우랄리(3,200m)이고, 출발지인 도반에서 반나절 정도만 걸으면 된다. 고산지대에 적응을 하기 위해 트레킹 시간은 줄이고 데우랄리 롯지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으며, 충분한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도반을 출발하며 나는 살면서 와보지 못한 해발고도를 경험할 예정이다. 대학생 때 운 좋게 백두산 정상(2,744m)을 가본 적이 있었다.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가면 90% 까지는 관광버스로 올라갈 수 있다. 버스에 모든 짐을 내려놓고 두어 시간 정도만 편하게 걸어갔는데도 숨 쉬는 것이 조금 어색하고 불편했던 기억이 나서, 조금 긴장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맞닥뜨릴 풍경이 기대되어 얼른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도반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크기의 폭포를 만났다. 높이에 한 번 놀라고 넓은 폭에 두 번 놀랐다.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가 녹아서 생긴 물이 흘러서 폭포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걷다 보니 확실히 어제에 비해 숨이 더 쉽게 가빠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걸었다. 


조금 더 걸으니 '히말라야 호텔'이 나왔다. 롯지 간판에 '히말라야'라고 적힌 곳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점점 베이스캠프에 가까워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말라야 호텔은 해발 2,900m 정도로 도반과 데우랄리 사이에 위치해있다. 처음에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 히말라야 게스트하우스가 최종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롯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 곳에서 자고 ABC까지 바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우리는 히말라야 호텔을 지나쳐서 계속 걸었다.


데우랄리로 향하는 길 중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바위 아래 그늘


출발한 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안개는 걷히고 따듯한 햇살이 우리 등을 비춰주었다. 데우랄리까지는 깊은 협곡을 지나야 한다. 양 쪽으로 치솟은 높은 산들은 당장이라도 암석들을 협곡으로 내던질 것처럼 웅장하게 서있었다. 빙하가 녹아 만든 계곡물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자연에 압도되어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어제 이 시간 즈음 느꼈던, 트레킹 여행을 선택한 것에 대한 회의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데우랄리로 가는 협곡의 풍경들


그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움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훨씬 줄어들었다. 각자 자신의 발걸음을 바라보며 사색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길 옆에 무심히 누워있는 바위들은 날카롭고 거친 상처들이 가득했다. 하나같이 돌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크기의 바위들이었다. 사람들이 걷는 길과 계곡 사이에 이렇게 큰 바위가 위태롭게 넘어져있는 것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걷다가 깨달았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움인 것을. 오직 바람과 중력, 햇살과 눈비 같은 자연력으로만 이 바위들은 산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여기까지 굴러왔을 것이다. 병풍처럼 쌓아 올린 높은 봉우리들을 이 협곡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내 눈에만 부자연스럽고 신기했던 것이지, 사실 이 자연 속에서도 인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협곡을 지나가는 헬리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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